中, 북한 차지해도 괜찮나? 임종석 ‘두 국가론’의 맹점 [최병천의 인사이트]
(시사저널=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통일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1989년 평양 축전에 한국외대 학생이었던 임수경씨를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보냈다. 당시 전대협은 학생운동의 중심이었고, 대중적 영향력도 상당했다. 임종석은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이었다.
최근 임종석 전 실장은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로 시작하는 연설을 했다. 핵심 논지는 평화 공존을 위해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헌법 3조의 영토 조항도 개정하고, 통일부도 없애자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먼저 보수언론과 윤석열 대통령의 비판은 '과도한 색깔론'이다. 올해 초 북한은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교전관계'로 재규정했다. 영토 조항의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고 주요 대남조직들을 폐지했다. 보수언론과 여당은 북한 입장이 바뀌어서 임 전 실장 입장도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를 종북 정치인으로 보는 발상이다. 매우 무리한 색깔론이다.
임 전 실장의 주장을 선의로 이해하면, 핵심은 '평화공존'에 대한 고민이다. 평화공존을 위해 두 국가론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상의 뿌리는 '통일'과 '평화'가 실제로는 모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 3조에 의하면, 국가로서의 북한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즉 북쪽은 '미수복 지역'이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인데 한반도에는 엄연하게 '두 개의 실체적 국가'가 존재한다. 한국 헌법은 통일과 평화의 모순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국제정치학적 문제 간과할 수 없어
한국 현대사에서 '통일이 될 뻔한' 시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950년 한국전쟁 직후다. 북한군은 '낙동강 이남'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통일했다. 다른 한 번은 유엔군 참전으로 9·28 서울 수복 이후 '압록강 인근'을 제외하고 남한군이 대부분을 통일했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통일의 꿈은 실패했다. 두 번의 통일 시도는 모두 '무력·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임 전 실장은 평화공존이 통일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제기한 것이다. 무리한 통일 노력이 평화를 깰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두 국가론을 제기한 핵심 문제의식이다.
유사한 주장은 약 10년 전부터 진보 내부에서 소수의견으로 존재했다. 이들 주장을 편의상 '두 개의 국가론'이라고 표현하자. 두 개의 국가론은 왜 부적절한 주장일까?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의 급변 사태 때 대한민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어진다. 북한은 핵을 가진 나라이고, 정치·외교적으로 중국과 더 가깝다. 급변 사태 시 중국이 무력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북한에 '친중 괴뢰정권'을 세우고 간접 통치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두 국가론'을 주장하려면, 북한 영토가 영구적으로 중국에 귀속되는 것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나라가 제아무리 경제성장률이 높고, 부자 나라가 되더라도 추가로 구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영토다. 그게 지리의 힘이다. 오죽하면 국가의 3요소를 주권, 국민, 영토로 보겠는가. 두 국가론은 북한 영토 전체를 영구적으로 포기하자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둘째, 두 국가론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한국과 북한 '두 나라'만의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다. 한반도의 분단, 한국전쟁의 발발과 휴전, 한반도 평화체제 가능성은 모두 국제정치학의 연장에서 사고해야 한다. 한반도 분단은 일본 패망 즈음, 미국의 38선 제안을 소련이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아니면,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고 통치할 기세였다. 시간적 선후로만 보면 분단이 먼저였고, 남과 북의 정부는 나중에 생겼다.
한국전쟁의 발발 역시 국제정치학과 맞물려서 작동했다. 국공내전에서의 공산당 승리와 미국의 소극적 대처, 미국의 애치슨 라인, 소련의 핵 개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김일성 지원이 맞물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듯 한국전쟁 역시 내전이자 동시에 국제전이었다. 한반도는 소련·중국의 대륙세력과 미국·일본의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단층선이다. 한반도는 세력권과 세력권이 충돌하는 접경지대다. '냉전의 최전선'은 한반도가 갖는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특징이었다. 분단, 농지개혁, 한국전쟁, 군사독재, 한국의 경제 기적은 모두 냉전과 맞물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관점에서도 부적절하다. 평화의 사전적 정의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다. 평화는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역사적 국면에 따라 달라졌다. 냉전 시기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한미동맹의 제도적 실체다. 탈냉전 시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및 6자 회담이었다.
'평화적 분단 관리'가 현실적 정책 목표 돼야
2024년 현재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동북아 정세의 특징은 미·일의 상대적 쇠퇴, 중국의 급부상, 러시아의 부활 그리고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보환경에서 두 국가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아무런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두 국가론 문제의식이 갖는 긍정성은 평화공존이 통일보다 더 우선하고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세 가지 차원에서 부적절하다. 하나, '북한 영토'를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둘, 국제정치학적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셋, 최근의 안보환경 변화에 무심하다.
지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자주국방,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이 모두 중요하다. 단, 북·중·러 군사동맹을 부추길 우려가 있는 '한·미·일 군사동맹'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 군사동맹과 군사협력은 다르다. 군사협력의 경우, 지소미아 협정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해 '세력균형'을 중시하되, 일본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북 정책을 중심으로 보면, 통일과 평화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통일은 북한 혹은 중·러의 지정학적 변동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포기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통일은 흡수통일밖에 없다. 단, 흡수통일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 흡수통일은 정책 목표가 아니라, 언젠가 발생할 '어떤 상황'에 가깝다. 당장 중요한 것은 평화공존이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일도 자제하는 게 낫다. '평화적 분단 관리'가 정책의 기본목표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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