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종달리 아이들이 함께 운영하는 무인 책방 '책약방'

예쁜 이름처럼 마을 풍경도 온화한 제주 종달리에는 특별한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종달초등학교 앞,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책약방이지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공간에 책과 그림, 글씨가 가득합니다. 마치 아이들의 방처럼 말이죠.

어떻게 이곳에 무인 책방이 열리게 되었을까요? 책방 곳곳에 가득한 손길들은 누구의 것일까요? 브릭스 매거진에서 책약방을 운영하는 양유정 책방지기에게 들어보았습니다. 겨울이면 오후 6시만 지나도 캄캄해지는 제주에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책방 하나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네요.
종달리 무인 책방 책약방

Q. 책약방을 소개해 주세요.

사람 대신 책이 지키는 책방이자, 모두가 지키는 책방. 쓴 약 대신 달콤한 그림책을 처방합니다.

Q. 책약방을 무인 책방으로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책방으로 생활이 될 만큼의 수입을 얻기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책방 문을 열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세 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책 이외 다른 것을 판매하는 일 없이 운영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장애와 관련한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책을 매개로 복지와 상담이 마을 단위로 퍼져 이루어지는 공간을 한켠 꿈꾸며 시작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데다, 책방이 있는 곳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보니, 매일 책방 문을 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 없이 무인으로 꾸리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지만, 두렵기도 하고 용기도 나지 않아 조심스레 뒷문만 열어두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뒷문을 알려주라고 주변 가게에 부탁해 두었어요.

책약방의 이곳저곳

그런데 어느 날 책방 앞 종달초등학교 김명선 교장선생님께서 만약 책이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일 테니 당신이 변상해 주시겠다고 앞문도 열어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씀에 용기를 내어, 24시간 열린 책방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밤의 책약방 | 책약방 제공

Q. 큐레이션은 어떤 기준으로 하시나요?

종달리는 제주 올레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곳입니다. 무엇을 시작하거나 끝날 땐 망설임과 두려움이 함께 생기는데요.

시작과 끝을 앞둔 시간에 잠시 머물면서,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책을 선별합니다.

그 외, 제주 작가와 출판사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제주에서 책방을 하는 사람의 소임이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책약방 서가에서

Q. 옆 종달초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은데, 따뜻하고 귀여운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나시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주말에 내내 머물며, 학교 운동장에 놀러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과 간식도 나누어 먹고, 함께 소리 내어 그림책도 읽고, 놀잇감을 가지고 놀다 보니 어느 샌가 아이들이 책방을 스스로 꾸미고 정리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 ‘책방지기 1호, 2호, 3호’ 등 역할을 주니, 이 아이들이 어느새 이곳의 책방지기가 누구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저를 가리키지 않고 스스로를 칭하더라고요. 문 앞에 “좋은 추억은 쌓고 나쁜 추억은 익고 가세요”라고 맞춤법이 틀린 안내문이 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써 붙였어요. ‘책약방 사용법’을 만들어 사람이 없다고 이곳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알리는 안내문을 만들기도 했고요.

책약방에서 | 책약방 제공

Q. 책약방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책약방은 그림책 『구덩이』 같은 곳입니다. 그림책 『구덩이』에선 한 아이가 한없이 구덩이를 팝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가만히 들어가 앉습니다. 어느새 구덩이에서 꼬물거리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나도 구덩이에서 나옵니다.

때론 힘겹고, 지친 날들이 반복될 때가 있어요. 주저앉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날들도 있습니다. 구덩이의 시간은 깜깜하고 어두운 시간이 아니었어요. 그저 멈추어 버린 시간도 아니었고요. 아이 곁에 나란했던 작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었듯, 그 시간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는걸요. 구덩이 위에는 여전히 파란 하늘이 있지요!

수잔 발리의 『오소리의 이별 선물』
아쉽게도 책약방에서 그림책 『구덩이』가 똑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에디터는 양유정 책방지기의 권유로 상실에 관한 그림책 중 하나인 『오소리의 이별 선물』을 구입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현명하고 나이가 많은 오소리가 세상을 떠난 후, 남은 동물들이 그를 추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오소리는 떠났지만 그의 지혜와 솜씨는 친구들에게 남아 계속 이어집니다. 이별과 상실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오소리의 이별 선물』의 메시지가 어쩐지 『구덩이』와 닮아 있기도 하네요.
책약방

책약방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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