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도입땐 무슨 일 벌어질까…‘자살 캡슐’로 불거진 죽음의 자유 논쟁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10. 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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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 미국인 여성 ‘자살 캡슐’ 첫 사용
버튼 누르면 질소 투입…저산소증 사망
스위스 조력자살 허용되는 나라이지만
정부 “자살 캡슐 사용은 불법” 입장 강조
‘죽을 권리’ VS ‘자살 방관’ 논란 확산돼
‘자살 캡슐’ 사르코(Sarco)를 개발한 호주 출신 의사 필립 니슈케가 캡슐 안에 들어간 모습.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지금까지 이어진 수천·수만년의 인류 역사는 탄생과 죽음의 반복이었습니다. 짧게는 십수년, 길게는 100년 이상의 생을 다하고 소멸된 이들의 빈 자리는 얼마 안 가 새로운 탄생이 채워갔습니다. 자살 역시 인류의 동반자였습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을 배제하더라도 수많은 유명인들이 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극단 선택 시도가 한 번에 그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남긴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39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총 다섯 번의 극단 선택 시도를 했습니다. 앞선 네 번 시도에서 모두 실패한 그는 다섯 번째 시도에서 마침내 자신의 생에 마침표를 찍는 데 성공합니다. 종이 한 장 차이인 죽음과 삶에 대한 인류 성찰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인간이 죽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최근 스위스가 자살의 도덕적·윤리적 문제를 두고 전 세계 논쟁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64세의 미국인 여성이 스위스 최북단 샤프하우젠주의 한 숲속 오두막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때 이른바 ‘자살 캡슐’로 널리 알려진 조력자살기계 ‘사르코(Sarco)’가 처음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사르코는 캡슐 모양의 기계로, 사용자가 내부에 들어가 누운 뒤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스가 주입돼 사용자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식으로 가동됩니다.

사르코에 들어가 질소가스 투입 버튼을 누른 이 여성은 약 2분 만에 의식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가 사망하는 데까지는 이후 약 5분이 더 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여성은 사망 전 사르코의 스위스 도입을 추진한 안락사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 측 변호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기에는 여성이 본인 의사에 따라 사르코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두 아들과도 합의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여성은 사르코 사용 전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가졌고 정신 상태가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와 사법기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사르코가 정당한 사용 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불법으로 규정하고 가동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을 모두 체포했습니다. 경찰 체포 이후 스위스 검찰은 이들에게 자살 선동 및 방조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검찰은 이번 미국인 여성 자살 과정에서 다른 범죄가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안락사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가 개발한 자살캡슐 ‘사르코(Sarco)’
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자살을 특정 조건 아래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 형법 제115조는 ‘이기적인 동기 없이’ 타인의 자살을 돕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의료적 조력자살뿐만 아니라 비(非) 의료인이 돕는 조력자살도 합법화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조력자살은 안락사와는 조금 다릅니다.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반면, 조력자살은 환자 스스로가 약물을 복용하거나 기계를 작동해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자살을 범죄로 보지 않는 법적 구조로 인해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사용된 사르코 도입 역시 안락사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사르코는 호주 의사이자 안락사 운동가인 필립 니슈케가 개발한 기계로,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평화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개발됐습니다. 캡슐 안에 들어간 사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30초 안에 공기 중 산소량이 21%에서 0.05%로 급감합니다. 저산소증으로 사용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구조입니다. 사르코 사용 희망자는 사전 심리평가나 테스트를 통해 정신 상태를 먼저 확인받아야 합니다. 정신적·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사르코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스위스이지만 정부와 사법기관은 아직은 사르코를 합법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사르코가 안전 관련 법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고, 질소 사용을 규정한 화학물질 관련 법률에도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바우메-슈나이더 스위스 내무부 장관은 사르코가 법적·도덕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이번에 사르코를 이용한 죽음을 선택한 미국인 여성도 생전 다양한 질환 진단을 받고 사망 전 약 2년 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과학자 플로리안 윌렛은 “이번 죽음은 평화로운 상황에서 신속하게 진행됐다”며 “존엄한 죽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사르코 개발자 니슈케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나무가 울창한 스위스의 한 숲에서 여성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며 “사르코는 여성이 그토록 원했던 존엄한 죽음을 선사하는 데 사용됐다”고 적었습니다.

사르코를 처음 사용한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자살 논쟁이 전 세계적으로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아직 법적·도덕적·윤리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은 만큼 합의안 도출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르코와 같은 ‘자살 기계’에 반대하는 측은 관련 기술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만큼 완벽한 규제안과 안전한 관리법이 마련될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 사르코와 같은 기계 사용이 일반화되면 죽음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미화할 수 있고,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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