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재업 518 광주 사태에 대해.arabo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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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삭돼서 보니까 시신 사진 있다고 알바 신고해서 삭제시켜버리네

대체 글 내용의 뭐가 맘에 안들었던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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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에 제주도 뺀 한반도에 계엄이 선포된 뒤 12월 12일부로 땅크보이가 권력을 잡았다.

79년 12월 18일, 계엄사령관은 정치는 군의 영역 밖이며 계엄은 빠르게 해제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개헌 분위기가 무르익고 80년 2월 9일에 신민당과 민주공화당은 직선제를 주요 골자로 한 개헌안을 합의했다.

2월 29일, 한국대통령중존재감JOAT, 핵물리학자 등 여러 정치범들이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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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체제가 붕괴된 후 4월이 되자 서울대에서 학생회가 부활했고

학생회는 처음에 교련 폐지를 주장했다가 역풍 쳐맞을까봐 계엄 전면 철회로 주장을 바꿨다.

4월 30일, 계엄사령관은 대학생 시위가 점점 커지자 계엄군을 서울 각지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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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IMF의 원흉이 '행정부 주도 개헌 중지' '계엄 해제' 등을 촉구했고, 반신반인의 정당이자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핵물리학자도 동의했다.

사실상 국회 전체가 계엄 해제에 동의하고 있었고 곧 그렇게 될 것처럼 보였다. 

5월 15일, 총리가 직접 내년에 선거 실시해 정권 이양하고 계엄도 곧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땅크보이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빌미로 어떤 행동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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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다.

사실 원래는 국회 해산이랑 즈그들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비상기구 설치까지 하려고 했는데 합참의장이랑 국무총리가 대놓고 반대해서 못했다.

저녁 7시, 식물 대통령은 계엄 확대를 수용한 뒤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같은 시각, 전군 부대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7시 35분, 찬반 토론 없이 8분 만에 일방적으로 비상계엄 확대가 의결되었다.

10시 30분 즈음부터 정치인과 학생단체 체포, 그리고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가 시작되었다. 

이미 이 시점에 국회는 계엄군으로부터 봉쇄되어 그 기능을 잃었고, 당연히 계엄이 국회에 통보되는 일도 없었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5.17 내란'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반헌법적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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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는 건 광주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에 따라 5월 17일 10시 40분부터 전남대 총학생회의 체포 시도와 함게 계엄군 진주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미 서울의 여러 대학으로부터 연락이 끊겼기에 무슨 일이 터졌구나 하고 알게 된 총학생회는 무등산을 통해 광주 밖으로 도망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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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10시, 전남대에는 휴교령이 이루어졌음에도 여러 학생들이 교문 앞에 서 있었고, 항의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자 장교 한 명이 대학생 한 명을 잡아 곤봉으로 구타를 시작했다.

교우가 구타당하는 걸 본 전남대생들은 장교를 향해 돌을 던졌고, 그 시점부터 계엄군의 폭력과 연행이 시작되었다.

이는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를 못 가게 된 것도 모자라서 쳐맞기까지 한 대학생들은 그대로 전남도청, 즉 금남로 앞으로 향했고, 전투경찰들 역시 진압을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냥저냥 독재 정권 시대에 있던 평범한 시위라고 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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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5월 18일 오후 4시, 전남대 시위 때문에 광주에 추가로 전개를 시작하던 계엄군들이 광주 시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차량을 통해 전달했고, 방송 단 1분 후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 전원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계엄군이 달려들어 남녀노소 구분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모조리 곤봉으로 구타하고 연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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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압에는 시위대와 비시위대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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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를 하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교실까지 뒤져가며 사람들을 잡아갔고,

노인들이 말리자 노인들을 구타하고 연행해 갔다.

모텔에서 자고 있던 외지인, 신혼부부, 심지어는 경찰 간부까지 폭행 및 연행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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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사망자가 안 나올 수가 없었고 머리에 곤봉을 수 차례 가격당한 김경철 씨가 사망했다.

안타까운 건 김경철 씨는 시위대도 아니었다....

처남이 전라남도 영암 간다길래 배웅 나갔다가,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 와중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 사태에 휘말려 사망했다.

김경철 씨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이 비극을 만들어 냈다.

이따위로 시위 진압을 했으니 광주 시민들도 나름대로 각목을 들고 맞서보려고 했지만 전부 진압당하고 31사단 헌병대로 끌려갔다.

그렇게 5월 18일의 진압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광주도 평온에 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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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월요일이 되었다.

오전 9시, 시민들이 금남로로 모이기 시작했다.

5월 18일의 시위에서는 대다수가 전남대 학생들이었지만 폭력적인 진압을 직접 목도한 시민들이 시위에 가세하면서 4천명까지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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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수부대는 더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곤봉만 휘둘렀다면 오늘은 총검까지 휘둘러 가며 사람들을 끌고 갔으며,

무슨 일인가 싶어 건물에서 밖을 쳐다보던 자국민을 향해 '내려다보면 쏴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경을 하는 자가 있으면 예외없이 쫓아가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경찰조차 공수부대에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시위 해산을 감정에 의탁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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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잠깐 소강 상태로 들어갔으나 계엄군이 점심 먹으러 가니까 귀신같이 수가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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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은 더욱 잔인하게 시위대를 진압했으며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천안문 탱크들도 탱크보이는 안 밀었는데 대단한 발상이다.

그러자 이제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이 한 군데의 시위를 진압하면 시위대는 사방으로 퍼져나가 다시 집결하는 방식으로 진압을 어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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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광주 터미널에서의 시위 열기가 가장 강했는데, '나는 공산당이 싫다, 하지만 계엄군이 하는 짓이 북괴군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학생과 광주를 지키자'고 어떤 여성이 소리치자 여러 사람이 모인 탓이다.

계엄군은 진짜 칼로 사람들을 쑤셔대기 시작했는데 터미널에서만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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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50분경 장갑차가 시위대를 밀어버리려고 다시 등장하자 이번에는 불을 질러서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장갑차 안에 있던 공수부대원이 기어코 총을 쐈고, 고등학교 3학년이 3발을 맞고 쓰러졌다.

발포에 놀란 시민들이 고등학생을 향해 달려가자 장갑차는 ^런^을 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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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일하던 도중 광주공원에 들려서 시위 구경하던 야가다 잡부 김안부 씨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땅크보이의 고향인 경상남도 차량 번호판을 단 화물트럭이 불타오르는 일도 있었다.

아무튼 잔혹한 진압과 시위는 자정이 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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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새벽, 위에서 사망했던 김안부 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비가 그치고 아침이 되자 다시 시민들은 시내로 몰려들었다.

이제 광주 전역에 계엄군의 폭력진압을 모르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무려 20만명이 운집했다.

마찬가지로 계엄군은 그제와 어제와 같이 곤봉으로 패고, 칼로 쑤시는 등의 방식으로 진압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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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시위 때 계엄군이 총을 쏘고 칼로 쑤셨기 때문에 광주에는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이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나르던 버스기사와 택시기사까지 계엄군이 곤봉으로 물반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단단히 빡친 운전기사들이 버스와 택시를 시위대의 맨 앞에 세워서 계엄군의 저지선을 무너트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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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루탄 딸깍과 계엄군 바리케이드에 버스가 좌초되자 바로 곤봉찜질 당하고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최루탄을 피하려고 그대로 버스를 탈출하는 바람에 경찰이 치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어쨌건 이때까지 광주 사태에 대한 언론보도는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부상자들은 계엄군 아래에서 정성껏 치료를 받고 있다'는 북한식 보도가 전부였고

그로 인한 결과물이 싱붕이들도 잘 아는 다음 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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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앞에 서도 진압당하는 걸 본 광주시민들은 디바 각폭궁마냥 차량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광주역에서 트럭 한 대가 주유소 들이받고 전복되는 바람에 계엄군 한 명이 사망했다.

밤 11시 20분 경, 궁지에 몰린 광주역의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위협사격 집단발포를 실시해 4명이 죽고 6명이 다쳤다.

결국 광주역에 주둔하던 제3공수여단은 5월 21일 새벽에 철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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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군 쳐죽이라고 세금 냈더니 오히려 자기들한테 쏘고 있는 얼탱없는 상황이 광주 전역에 전해지자 이젠 광주세무서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렇게 5월 20일이 끝났다. 

(시신사진이었던것)

5월 21일 새벽에 공수여단이 철수하자 시민들이 광주역을 점거했는데 거기서 발견된 건 총맞은 시신이었다.

그 날은 석가탄신일, 즉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더 더 더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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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계엄군은 광주의 전화선을 끊어버렸고 20사단이 증파되어 광주로 내려갔으나 지휘차량이 탈취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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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가 되면 금남로에만 5만명이 모였다.

누군가 계엄군 측과의 협상을 주장했고 '군의 사과, 사망자 및 체포자의 명예회복'을 조건으로 타협하자는 여론이 생겨났다.

이에 시위대는 대치 중인 공수부대 지휘관에게 가서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고 시위대 중 4명이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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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잘 진행됐고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철수하라, 그리고 이 내용을 직접 발표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도지사는 승낙했다.

그러나 10시 45분에 헬기타고 런을 함과 동시에 정오가 지나도 철수하지 않는 계엄군을 보고 시위대는 속았다고 판단해 흥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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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원들 중 일부가 버스 2대를 가져와 계엄군이 위치한 도청 일대를 빙빙 돌았다.

계엄군은 즉각 조준사격을 실시해 버스 기사가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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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시위대에서는 탈취한 해병대 장갑차를 이용해 각폭을 시도했고 계엄군 한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12시 55분, 시위대 대표는 계엄군에게 약속대로 퇴각을 요구했으나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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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시 정각이 되었다. 전남도청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시위대는 애국가를 불렀다.

그 순간, 시위대를 향해 수백 발의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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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은 공포탄이었기에 시민들이 숨었다가 다시 나왔다. 그러자 이제는 진짜 조준사격이 시작됐다.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가 시작된 것이다.

10여분의 사격 후, 1천명의 시민들이 다시 금남로를 향했고 그 중 일부는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으나 즉각 저격수들에 의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시민 몇이 뛰어나와 쓰러진 사람들의 태극기를 주워 애국가를 부르면 다시 저격수가 총을 쐈다. 이러한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임신 8개월 만삭의 임산부조차 머리에 조준사격을 당해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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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의 어느 사태가 떠오른다면 결코 착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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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헬기까지 동원해 사격을 실시해 최소 54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총상을 입자 이제는 시민군의 조직이 시작됐다.

광주 내부에서는 이미 무기가 싹 다 회수되었기에 화순, 나주, 영암, 심지어는 해남과 완도까지 가서 경찰서와 무기고를 점거하여 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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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구하기 위해 광주 시위대가 전남 각지로 흩어졌기 때문에 이제 시위는 전라남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전남에 배치된 계엄군은 광주 사태를 진압하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에 이곳에서 유혈 진압은 이뤄지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이렇게 무기를 파밍한 시민군은 계엄군과 시가전을 벌였고 계엄군은 일단 군을 후퇴시킨 뒤 포위 진압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 알리지 않고 지 혼자 튀었기 때문에 전경 일부가 시민군에 포위되는 일도 있었으나 전경이 총을 쏜 건 아니기 때문에 무사히 돌아갔다.

오후 8시, 무주공산이 된 전남도청을 시민군이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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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시민군은 계엄군을 몰아냈다는 승리에 흥분해 거리로 나왔다.

가끔 군 헬기가 나타나 방송을 하기도 했지만 즈그들이 사람 패고 찌르고 총 쏴서 일 키운 거에 대한 이야기는 입꾹닫 했기 때문에 오히려 분노만 부추겼다.

이 사이에 시민군은 자체적으로 조직화가 이루어졌고, 이 때 등장한 짤방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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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듯한 우유통이다.

하지만 시민군이 예상했듯 계엄군은 진압을 포기한 게 아니었고, 철수 시점부터 바로 광주를 포위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가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광주에 진입하다가, 또는 광주에서 전라남도로 돌아가다가 계엄군에게 총을 쳐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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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광주<->화순을 오가는 미니버스가 총격을 받고 1명을 제외한 탑승객이 모조리 몰살당했던 학살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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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계엄군과 계엄군이 싸우는 지랄까지 시작되기도 했다.

심심해서 총을 갈기다가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총을 맞고 죽기도 했다.

하다하다 보병학교 교도대가 계엄군을 시민군으로 착각해서 수류탄 던지고 찐빠를 내다가 10명이 죽기도 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을 시민군으로 오해한 기계화학교 병력 120명이 교전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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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교전으로 사망자가 나온 계엄군은 화가 잔뜩 나서 인근 민가로 들어가 안에 있던 사람 4명을 쏴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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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은 시민군대로 협상파와 강경파가 의견 충돌을 하다가 결국 강경파가 이겨 저항을 지속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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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5월 27일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시작됐고 잘 훈련받은 정예 계엄군을 일개 시민군이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군은 도청에서 항전하다 전부 진압당했다.

진압 이후에도 민간인을 향해 발포는 이어졌기 때문에 15살 여중생이 추가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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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광주 사태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