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녹색병으론 못 이긴다”...대기업 틈 파고든 60대 소주회사 회장

대전=노현영 기자 2026. 4.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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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래 선양소주 회장 인터뷰
연예인 모델 포기하고 직접 모델로...SNS 타고 반향
“술도 음식”...백색병으로 시각적 차별화·맛에 투자
소진공 협업 ‘착한소주 990’...“20년 사회공헌 연장선”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주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오승현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면 승부해서 답이 나오겠습니까. 무조건 틈새를 공략해야 되는 겁니다.”

칠순을 앞둔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보라색 페도라에 분홍빛 재킷을 걸친 채 소주잔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평소에도 화려한 옷차림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그는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서 하루에 한 개 꼴로 콘텐츠를 올린다. 지난해엔 스튜디오도, 조명도 없이 단골 어묵집에서 제작비 30만 원으로 광고 포스터를 만들었다. 전업 유튜버 못지않은 행보에 지난 한 해 콘텐츠 누적 조회수는 2억 5000만 뷰를 넘어섰다. 대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소주 시장에서 남들과는 철저히 다른 길을 택하며 ‘메기 효과’를 불러일으킨 노련한 승부사의 반란이다.

충청권 대표 소주 업체인 선양소주를 이끌고 있는 조 회장은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 소주가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한 국내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의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지역 소주 업체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양소주마저 똑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녹색병 대신 백색병을 들고 ‘싸게 취하는 술’이 아니라 ‘맛있게 마시는 술’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꺼냈다. 그는 “전 국민이 다 아는 녹색병을 쓰면 상표를 떼는 순간 내 술인지 남의 술인지 구분이 안 된다”며 “그런 식으로는 결코 대기업을 상대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조 회장은 소주를 단순한 술이 아닌 음식으로 규정하고 맛과 차별화에 집요하게 공을 들였다. 그는 “소주도 음식인데 오감을 만족시켜야 한다”며 “부드럽게 넘어가고 아침에 부담이 덜해야 진짜 좋은 술”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일반 소주보다 산소 함량을 3배 이상 높인 산소숙성공법을 자체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고, 원액과 원료의 품질을 높여 14.9도의 국내 최저 도수 소주를 만들었다.

이 같은 철학은 제품 확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선양소주는 지난해 편의점 GS25와 협업해 국내 최초로 오크통 숙성 원액을 블렌딩한 ‘선양 오크’를 선보였다. 이달에는 말차 소주까지 출시하며 새로운 콘셉트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해외 수출용 과일 소주 역시 인공향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맛 자체에 집중해 개발돼 현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베트남 현지 식당에서 선양소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직접 맛을 따져보고 고르는 현지 소비자들이 선양의 품질을 인정한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해외 수요가 늘면서 선양소주는 미얀마에 생산 공장을 지으며 글로벌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조 회장이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선 것도 대표적인 차별화 전략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핵심은 진정성”이라며 “연예인 모델보다 친근한 할배가 직접 술을 들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와닿지 않느냐”며 웃어보였다. 제품 경쟁력 강화에 마케팅 비용 절감까지 더해지면서 실적도 개선됐다. 선양소주의 지난해 매출은 525억 원으로 전년 대비 9.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4배 이상 늘어난 67억 원을 기록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 행보는 최근 화제가 된 ‘착한소주 990’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선양소주는 이달 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제안으로 1병에 99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착한소주 990’을 선보였다. 골목 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 제품은 전국 슈퍼마켓에 990만 병만 한정 공급된다. 사실상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지만 조 회장은 “어차피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는 모델·제작·매체비가 거의 들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며 ”약 20년간 선양소주가 쌓아온 사회공헌의 진정성이 이어지는 행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소리나 소주나 대중을 상대로 사람을 이어주는 본질은 같다 아이가.” IT 벤처기업가 1세대로 벨소리와 컬러링 사업을 통해 세상을 연결했던 그는 이제 소주 한 잔에 사람 사이의 온기를 담는다. 2004년 베트남 여행 중 우연히 매물 소식을 접한 선양소주를 인수하고 흰색 와이셔츠를 벗어던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주는 누구나 편안하게 마음을 나누고 즐기는 술이잖아요. 만드는 사람부터 편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 복장도 자유롭게 입고 다닙니다.”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이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주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오승현 기자

대전=노현영 기자 nonsto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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