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드론 띄워 적국 안보불안 유발… 저비용·고효율 新도발 [디펜스 포커스]

박수찬 2023. 2. 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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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中 ‘회색지대 전략’… 간접공격 감행
美 격추 中 정찰풍선, 韓 침범 北 무인기
정면충돌 피하면서 ‘공격 가능’ 힘 과시
상대국 안보 불신·갈등 촉발 심리 전술
러도 크름반도 합병 때 구사 ‘무혈 승리’
中, ‘영유권 갈등’ 남중국해서 불법 조업
군용기 ‘카디즈’ 침범 韓대응 떠보기도
배후 규명 힘든 해킹공격도 압박 일환
“韓정부, 전략적 대응책 모색해야” 지적

우리가 흔히 아는 전쟁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줄타기를 펼치는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등이 주로 쓰는 회색지대 전략은 해킹 등 실제 분쟁으로 번지지 않을 방법으로 의도와 동기가 불분명한 간접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5일 미 본토에서 미군에 격추된 중국의 정찰용 기구(풍선)나 지난해 12월 서울 상공을 침범했던 북한 소형무인기처럼 낮은 비용으로 큰 전략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오직 유용성과 국익만 따질 뿐, 법·도덕은 고려되지 않는 회색지대 전략은 한국에도 상당한 위협이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한국을 상대로 저지른 소형무인기 침투 도발은 '회색지대'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2017년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가 추락해 강원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   뉴시스
◆기구·드론·해킹까지… 다양한 방법 쓰여

중국은 회색지대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국가다. 최근 미 본토에 나타난 중국의 정찰용 기구는 중국이 벌이는 회색지대 전략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는 평가다.

정찰용 기구는 인공위성이나 정찰기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지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오랜 기간 조용히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첨단 장비를 다수 보유한 중국이 굳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기구까지 동원해 정보를 수집해야 할 필요성은 낮다. ‘민간 기상관측용’이라고 주장해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중국이 미 본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항상 미국의 약점을 공격하려 시도해 온 중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호전적”이라며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최근의 태도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중국은 해킹으로도 미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중국 청두(成都)에 기반한 해커 집단 ‘APT41’이 미국 내 소상공인 융자기금과 실업보험기금을 포함한 코로나19 보조금 2000만달러(약 260억원)를 훔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해킹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는지는 확인이 매우 어렵다. 미국을 흔들면서도 정치적 후폭풍은 피하는 셈이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대만해협에서도 등장한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직후 중국은 한동안 민간용 드론을 진먼다오(金門島)와 그 부속 섬에 계속 투입했다. 민간용 드론을 이용해 차이잉원 대만 정부의 ‘안보 무능’을 부각, 내부 갈등을 조장하려는 회색지대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해상 민병대와 불법조업 선단을 동원해 주변국의 어업권을 침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와 이란, 북한도 회색지대 전략을 활용한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정면충돌 없이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용병 조직 ‘와그너’ 그룹을 통해 아프리카 등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북한은 미국 등을 상대로 해킹을 지속하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 해군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민간 선박을 나포하고, 예멘·시리아·이라크 등에서 시아파 무장 조직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용 기구(풍선)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공군 소속 전투기에서 쏜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한반도도 ‘회색지대 전략’ 표적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도 회색지대 전략에 노출되어 있다는 우려가 크다. 북한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에 걸쳐 소형무인기를 남쪽으로 보냈다. 2014년 경기 파주시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청와대 상공을 비행했고, 지난해 12월 서울 상공을 침범한 무인기는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했다. 한국에서 방어 태세가 가장 잘 갖춰진 수도권을 값싼 무인기로 돌파함으로써 북한군의 역량을 과시하고 우리 정부와 군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 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내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해킹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북한 해커 조직 ‘김수키’는 최근 카카오의 포털사이트 ‘다음’으로 위장한 피싱 메일을 통해 이용자들의 비밀번호를 확보하려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출석 요구 안내 통지문을 사칭한 해킹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외교안보·통일·국방 전문가 892명에게 피싱 메일을 보냈다. 같은 해 10월에는 카카오 계정관리 서비스로 위장해 탈북민 아이디·비밀번호 탈취를 노렸다.

일각에서는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지난해 12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실시된 정찰위성 시험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도 북한 회색지대 전략의 일부라고 본다.

중국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군용기를 지속적으로 투입, 한국군의 대응 상황을 떠보며 카디즈 무력화를 추구하는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이제는 무인기와 해킹 등 비대칭적 수단을 앞세운 회색지대 전략에 맞설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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