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통사찰 축제] 활짝 피어난 수련·희망 품은 꽃등… 화답하듯 꽃비 내리다
부처님 오신 날 남양주 봉선사
◆부처님 오신 날 깨운 봉선사 아침 수련
산달에 다다른 마야부인은 친정으로 가던 중 아름다운 숲 룸비니 동산을 지났다. 그는 가마에서 내려 꽃을 구경하다가 가장 탐스럽게 꽃이 핀 아소카 나무(무우수)를 향해 다가갔다. 팔을 들어 꽃가지를 잡는 순간 산기를 느낀 마야부인은 곧 아이를 출산했다. 태어난 아기는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아기는 한 손으로는 하늘을,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를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며 삼계가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말씀하신 그분이 바로 싯다르타 왕자,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은 운악산 봉선사는 온 사위가 울울창창한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필자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 남동부의 룸비니 동산을 가본 적이 없어 꽃이 만발한다는 그곳과 봉선사의 연꽃 정원을 견주기는 어렵다. 그런데 세상 모든 어린이의 집을 도는 성탄 전야의 산타처럼, 부처님도 탄신을 맞아 세상 모든 절집에 찰나의 발자국을 남기신다면 봉선사 산문을 드실 때 퍽 즐거우실 것 같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에 이르기까지 너르게 펼쳐진 봉선사 연못 정원은 부처님이 오신 이 계절, 물에 띄운 연등처럼 주변을 밝히는 수련으로 더욱 아름답다. 밤이면 웅크린 채 잠드는 수련의 꽃봉오리는 아침 해가 들면 활짝 꽃잎을 펼친다. 봉선사 수련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알고 이른 아침부터 만개했다.
◆석가모니 낳은 마야부인 오셨네!
부처님 일곱 걸음을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경내로 향하는 길, 새삼 자신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선언한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긴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스승의 날과 맞물렸다. 부처라 하면 세상의 숱한 스승 중에서도 최고 존엄의 자리에 계신 스승이 아닌가. ‘빨간 날’이라고 절집 최대 축제를 고대하며 한껏 달떴던 마음은 수련, 꽃창포, 붓꽃 등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낱낱의 얼굴들을 보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꽃 같은 얼굴들에서 부처를 본다. 부처님의 낙토 안에서 모두가 스승이고 부처다.
수련의 그윽함에 빠져있다가 신명 나는 사물놀이 소리에 이끌려 경내로 들어섰다. 태평소를 선두로 덩실덩실 춤추며 앞장서는 사물놀이패 뒤로 커다란 황산(黃傘)이 보였다. 필시 귀하신 분이 행차하는 것이리라. 가까이 가보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봉선사 마야부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신도가 마야부인으로 분해 석가모니불을 모신 큰법당까지 행차하는 행사다. 꽃나무 아래에서 옆구리로 싯다르타 왕자를 낳았다는 부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주변의 환호를 받으며 큰법당으로 들어섰다.
◆아기부처 탄생 봉축하는 이들로 붐빈 큰법당
큰법당 마당은 지붕처럼 드리운 연등 아래 수많은 대중을 품었다. 수백 개 연등이 큰법당과 하늘 사이에 융단처럼 깔렸다. 헌화할 장미꽃을 들고 부처님 탄생을 봉축하러 온 불자들은 법당 앞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법당 중앙 문 앞에선 아기부처상을 물로 씻기는 관불식이 치러졌다. 한 사람, 한 사람 탄생불을 정성껏 씻기며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고 제 번뇌를 정화한다. 그 갸륵한 마음들이 한데 모여서인지 큰법당에 모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얼굴이 다른 날보다도 더욱 온화해 보였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
큰법당 주련의 한글 게송이 석가 탄신 축가의 노랫말처럼 읽힌다. 편액도 주련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쓰인 큰법당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봉선사 주불전이다. 1970년, 당시 주지였던 운허스님이 중건했는데 익히 알려졌듯 스님은 불교대중화에 힘쓴 독립운동가로 한문에 까막눈인 나 같은 중생을 위해 부처님 말씀을 한글로 풀어 설파했다. 봉선사를 처음 방문한 이라면 일찍이 절에 들어설 때 운악산 봉선사라고 한글로 세로쓰기 한 일주문 편액에 눈길이 갔을 것이다. 조선 최초로 한글로 번역, 편찬된 불교서적인 '석보상절'을 간행한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위패를 모셨던 절이 봉선사라서 한글과는 참 각별한 인연이구나 싶다. 지은 지 반세기를 넘긴 큰법당은 근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전통 목조양식을 정교하게 재현해 완성도와 조형미를 인정받아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꽃처럼 화사한 비로자나삼신괘불도, 찬불가 은은하게 퍼져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할 말 많은 큰법당이지만 부처님 오신 날 가장 눈길을 끄는 성보는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다. 괘불도는 부처님 오신 날이나 큰 법회 때 만날 수 있는 대형 불화다. 괘불도가 큰법당 앞에 걸리자 절마당은 꽃이 군락을 이룬 듯 화사해졌다.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1735년(영조 11)에 상궁 이 씨가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 씨의 명복을 빌며 시주해 제작한 것으로 화면 위쪽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을,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그려 넣었고 6구의 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주악천인 등이 화면 아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시원시원한 필선에 화사한 색채, 역동적인 짜임새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된 이 괘불도는 천이 아닌 30장의 종이를 붙여 제작되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크기는 세로 877㎝, 가로 458㎝로, 진품은 2015년 보존 처리를 마치고 봉안했으며 부처님 오신 날 걸린 괘불도는 행사용으로 마련한 모사본이다.
봉축법요식 전, 괘불도 부처님 앞에는 육법공양이라 해서 등, 향, 꽃, 과일, 차, 쌀 등 여섯 가지 공양물이 올려졌다. 이후 삼귀의례를 시작으로 봉선사 교구장 호산스님의 봉축사와 내빈 축사, 봉축 법어, 봉축발원문, 사홍서원, 관불 및 헌화 등의 순서로 봉축법요식이 치러졌다. 축가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수미산합창단, 연꽃미소합창단, 상월결사 청년합창단이 맡았다. 청아한 찬불가가 봄바람처럼 오소소 퍼져나갔고 큰법당 아래 모든 중생의 마음은 모자람 없이 충만해 보였다.
◆소찬에도 맛있다 연발, 잔칫날 공양간 풍경
봉축법요식은 경건하게 진행되었지만 사찰 안팎은 제법 성대한 잔치 분위기가 났다. 청풍루 앞마당에는 연등, 합장주, 풍경 등을 만들고 꾸미는 체험 부스가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크고 작은 생활용품을 사고파는 나눔장터도 열렸다. 고적했던 산사도 오늘만큼은 야단법석한 축제장이라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뛰고 놀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1년 중 단 하루, 오늘 오신 부처님도 외람되지만 귀여운 아기부처다.
점심공양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표정은 아이들보다 더 설레어 보인다. 잔치에 음식이 빠질 수 없으니, 부처님 오신 날 절밥은 그 자체로 복이고 덕이다. 공양은 청풍루에서 150m쯤 떨어진 육화당에서 온종일 행해졌는데 공양을 기다리는 줄이 청풍루 앞 찻집 봉향당까지 길게 늘어서 ‘웨이팅’만 기본 1시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받은 점심공양은 식사를 수행으로 여길 수 없을 만큼 성찬이었다. 공양주 보살들이 열무김치와 상추, 콩나물무침에 고추장을 더한 비빔밥에 미역국, 그리고 절편을 내줬다. 꿀맛이다. 허겁지겁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야 끝없이 밀려드는 봉축 인파의 배를 불리는 보살들의 노고를 헤아린다. 아니, 헤아릴 길이 없다. 그들의 공덕은 무량하고 부처님의 축복은 끝이 없다.
◆한 자리 한 자리 이야기 깃든 봉선사 볼거리
봉향당도 오늘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다. 봉향당은 평소에도 필자와 같은 객들이 몰려드는, 연못 전망 근사한 절간 찻집이다. 봉선사 아메리카노 한 잔은 다음으로 미루고 부처님 오신 날에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봉선사 관람포인트들을 여여하게 둘러본다.
봉향당 앞에 서면 절을 수호하는 550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보인다. 정희왕후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노거수지만 푸르고 강건하다. 봉선사는 969년 고려 광종 때 운악사로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세조가 광릉에 묻힌 후 정희왕후가 능침사찰로 중창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덕분에 봉선사를 둘러싼 숲은 왕실림으로 50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연의 질서로 일구어지며 보존될 수 있었다. 다만 봉선사의 옛 전각들은 전쟁의 화마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960년대부터 재건된 결과이다.
느티나무 우측 청평루 앞마당 가장자리에는 범종루가 있다. 봉선사 동종은 흥천사종, 보신각종과 함께 조선 초기 3대 대형 동종으로 꼽히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조의 아들 예종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주조를 명했으며 동종에는 세조의 덕과 공로를 찬탄한 내용이 적혀있다.
범종루와 청풍루를 지나면 성모마리아를 닮은 길고 가는 선의 관세음보살상을 만난다. ‘마리아 관음상’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서울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을 만든 조각가 최종태 교수의 작품이다. 부드럽고 청묘한 이 관세음보살상은 봉선사의 다정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표상한다. 왕실림이기에 엄숙함과 폐쇄성이 있는 광릉숲에서 봉선사는 여러 모로 너른 품을 가진 다정한 절이다. 6·25전쟁 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봉선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된 1926년생 산신각까지 둘러보고 나면 경내 산책은 충분히 한 셈이다.
마야부인을 알현하느라 서둘러 나왔던 연못가를 다시 돌아보는데 물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필시 부처님이 내린 꽃비였으리라.
글·사진=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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