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시아 베스트 바 in 홍콩] ③ 홍콩의 밤을 적시는 명품 칵테일
왜 홍콩일까.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 로즈우드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베스트바 50’ 시상식에서 불과 지난해 문을 연 홍콩의 ‘바 레오네’가 올해 1위로 순위에 진입하는 파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바 문화의 원조는 영국이기에 영국의 색채가 진하게 밴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 바 문화를 선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구가 완전한 세계화를 이룬 지금 예전같은 도시 격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 있는 것은 홍콩에도 있으며 도쿄에도 있다. 그럼에도 칵테일로 낯선 도시의 밤을 적시려는 여행객들의 지표가 되어주는 ‘아시아 베스트 바 50’은 최근 4년 연속 홍콩을 최고의 바를 가진 도시로 인정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 홍콩은 꾸준히 아시아 최고 수준의 바들을 배출해내는 것일까.
다양성
이날 시상식 이후 베스트바 50 명단에 오른 홍콩섬의 바들을 헤집고 다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타고난 것을 이기는 것은 힘들다. 홍콩은 태생이 글로벌 도시다. 다양성 DNA가 도시 전역에 흐른다. 정통 영국식 바, 디테일한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하는 일본식 바, 멕시코식 바, 이탈리안 바, 퓨전 바 등 인구 800만명의 도시가 담아내는 바 문화의 스펙트럼은 그 어떤 아시아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넓었다.
접근성
도시 규모가 작다는 점도 여러 바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바 호핑'을 하기엔 최적화된 ‘DNA’다. 아시아 바 트렌드를 보여주는 홍콩의 바들은 대부분 홍콩섬 소호 지역에 몰려있다. 소호를 중심으로 셩완, 센트럴쪽에 바가 분포되어 있는데 이 동네들은 걸어서 20분 이내면 서로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바가 레스토랑보다 매력적인 건 칵테일로는 배가 부르지 않아 하룻밤에도 여러 곳의 바들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홍콩 경찰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홍콩의 경찰력이 막강하다. 이는 곧 치안이 우수해 여행자가 안심하고 홍콩의 밤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금
타고난 자가 노력까지 하면 답이 없다. ‘바 문화’에 있어 다양성과 접근성, 역사, 완벽한 치안을 자랑하는 홍콩은 2008년 알콜 도수 30도 미만의 술에 부과했던 40%의 세금을 폐지했다. 홍콩 정부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와인 페스티벌(와인앤다인)을 가을 시즌 외국인들을 유인하는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키울 수 있었으며 또 이 ‘노력’ 덕분에 홍콩 내에서도 30도 미만의 칵테일을 다양하게 제조해 병입 판매할 수 있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특급호텔의 교과서' 만다린오리엔탈 홍콩은 진 대신 일본식 소주를 베이스로 한 25도 짜리 '오리엔탈 김렛'을 출시하기도 했다.
다양성, 접근성, 트렌드, 완벽한 치안과 세금까지. 주당들에게 홍콩이라는 도시는 존재 자체로 축복이다. 술을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어도 이상할 게 없다. 다음과 같은 놀라운 바과 칵테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칵테일은 꼭 맛보세요
코아(COA)의 앤초하이볼 : 2024 아시아 베스트 바50 4위
무덥고 습한 홍콩의 여름 날씨에 오아시스 같은 칵테일을 만날 수 있는 바. 코아는 트렌디한 바가 밀집한 소호지역에서 1순위로 가봐야 할 곳이다. 2017년 문을 연 이후 2021년부터 3년 연속 아시아베스트바 50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오너 바텐더 제이 칸은 멕시코 여행을 하다 영감을 얻어 홍콩에 아가베(용설란) 베이스의 스피릿을 파는 바를 열기로 결심했다. 바에는 일반 마트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크래프트 데킬라, 메즈칼 병들이 가득하다. 데킬라와 메즈칼 메뉴만 41페이지가 넘는다.
데킬라라는, 위스키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지는 장르를 선택한 것에 대해 제이는 “바를 찾는 사람들에게 아가베 스피릿의 다양한 매력을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컨셉으로 처음 바를 운영할땐 힘들었지만 결국 최고의 바가 됐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고객을 ‘소비자’로 여기지 않고 우리집에 놀러온 귀한 친구로 대하는 편안한 호스피탈리티가 코아의 최대 장점이다. 애주가로 알려진 배우 하정우는 걷고 난 뒤 시원하게 술을 마시기 위해 걷는 도중 물을 섭취하는 것을 제한한다고 했는데 코아를 방문할때도 반드시 10분 이상 걷고 난 뒤 첫잔으로 시그니처 메뉴인 ‘앤초 하이볼’을 주문해야 한다. 용설란을 구워 만든 메즈칼 특유의 톡 쏘는 스모키함과 소금에 절인 과일, 구아바 주스 등이 소다에 섞이며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단언컨대 지구상에서 가장 상큼하고 시원한 하이볼이다.
세이보리 프로젝트의 타이비프샐러드 :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50 19위
좋은 술의 정의는 무엇일까. 어떤 술이 단 한잔만으로 만족감을 준다면 그건 사실 별로 좋은 술이 아닐 수도 있다. 주당들에게 진정한 좋은 술이란 한잔이 두잔이 되고 세잔이 되어도 질리지 않는 술, 계속 다음 잔을 당기게 하는 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호의 세이보리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딜리셔스가 아닌 ‘세이보리(Savory)’한 맛을 내는 칵테일을 지향하는 신개념 바다. 자극적인 맛, 지나치게 달콤한 맛은 지양하고 은은하고 세련된 풍미가 있는 칵테일을 만든다. 자극적인 칵테일을 마시면 쉽게 혀가 지쳐 다음 잔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바에서 ‘타이비프샐러드’라는 이름을 가진 칵테일을 주문했다. 럼을 베이스로 한 이 칵테일은 신기하게도 태국식 소고기 샐러드 뉘앙스가 한잔의 칵테일에 그대로 살아 있다. 피넛과 코코넛, 라임에서 오는 태국식 샐러드 풍미와 칵테일 잔 위에 올려진 소고기 육포의 조화로움을 맛보고 있으면 이 곳이 바 인지 레스토랑인지 헷갈릴 정도다. 더위에 음식을 먹는 것조차 지쳤다면 세이보리 프로젝트의 칵테일들로 다양한 풍미를 마시면서 느껴보면 어떨까.
바 레오네의 네그로니+훈제 올리브 : 2024 아시아 베스트 바 1위
바 레오네는 올해 아시아베스트바50에서 최고의 바로 선정된 홍콩섬 소호 지역의 신성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오너 바텐더 로렌조 안티노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홍콩에서 바 레오네를 차리기 직전 그는 서울 광화문의 포시즌호텔에 있는 바 찰스H에서 바텐더로 활약해 한국의 바텐더들과도 인연이 있다. 로렌조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바텐더 커리어를 마치고 홍콩으로 가 지난해 이탈리안 컨셉의 바를 차렸다.
바에 들어간 순간 이탈리아의 축구, 영화 등의 포스터가 벽면에 가득하다. ‘정통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당’같은 느낌의 바다. 이탈리안 바에 왔으니 첫잔은 클래식한 이탈리안 칵테일인 네그로니를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레오네에서 만큼은 칵테일에 음식을 곁들여 보길 바란다. 직접 만든 훈제 올리브와 모르타델라 샌드위치는 홍콩 바 신의 음식 중에 가장 맛있고 든든하다.
홍콩=심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