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유명해진 ‘高尺キム先生(고척 김 선생)’과 김혜성의 사과문

사진 제공 = OSEN

한국에서 온 부재중 전화

선수 A의 얘기다.

KBO 리그에서는 AAAA급 기량을 뽐냈다. 국제 대회 성적도 좋았다. 덕분에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제법 긴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식사 같은) 사적인 자리도 가끔 가졌다.

간혹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서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힐끗 번호를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여러 차례 신호가 오지만, 수신 버튼은 눌리지 않는다. 반사적으로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온 번호다.

모른 척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넘겼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된다. 결국 당사자가 입을 연다.

“아이 참. 자꾸 전화가…. 신경 쓰이죠?”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발신자는 한국에 있는 가족(형제)이었다. 작은 사업을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일시적으로 자금 흐름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하소연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콜이라고 했다.

“아~.” 끄덕끄덕. 자세한 게 궁금하다. 하지만, 더 묻기는 곤란하다. A는 눈치가 빠르다. 이내 추가 설명을 보탠다.

어릴 때 집안이 넉넉지 않았다. 야구하는데 드는 돈이 버겁다. 자연스럽게 선택과 집중이 이뤄진다. A 하나 밀어주기도 힘들다. 나머지 형제는 어쩔 수 없다.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다.

그런 마음의 짐이 크다. 그래서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성공한 뒤로는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사업 자금도 통 크게 내줬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리 만만한다. 부어도 부어도, 밑 빠진 독이다.

결국 부재중 전화만 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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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카드를 쓰는 이유

B의 경우도 있다. 역시 해외 진출 선수다.

소비 습관이 독특하다. 나름대로 상당한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씀씀이는 꽤 검소한 편이다. 그럴 수도 있다. 알뜰한 게 틀린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독 백화점 쇼핑을 즐긴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2~3번씩은 다닌다고 한다. VIP급 대우를 받을 정도다.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다. 직접 묻기는 어렵다. 나중에야 사정을 듣게 됐다.

결혼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아이도 생겼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했다. 총각 때처럼 부모가 은행 계좌를 관리한다.

아주 빠듯한(본인이 느끼기에) 생활비 정도만 받는다. 필요한 것은 백화점 카드로 사야 한다. 그나마 그 결제는 매달 해주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남은 돈은 저축이나, 투자를 해주겠지?’ 그렇게 짐작했다. 물론 일부는 그렇게 한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다른 형제(자매 포함)들을 위해 상당 부분을 나눈다. 사정은 역시 A와 비슷하다.

‘너 하나 스타 만들기 위해, 가족들이 다들 힘들게 지냈다. 이제는 갚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부모가 내세운 논리였다.

시집온 아내는 무슨 죄인가. 차마 시댁에 뭐랄 수는 없다. 남편은 닦달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화풀이하듯 백화점 쇼핑에 몰두한다. 그게 B의 푸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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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매체들의 비상한 관심

고척 김 선생이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화제였다.

특히 일본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다저스 아닌가.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절친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챙기는 후배다. 그러니 미디어의 눈길이 간다.

또 있다. 자신들의 우쭐함을 충족시켜 줄 호재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메이저리거라고 다 같은 레벨이 아니다. 감히 일본 출신들과 비교하지 마라. 그런 투로 느껴진다.

딱히 반박은 어렵다. 그래도 너무 의도적이다. 몇몇 매체가 그런 ‘장사’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

포스트시즌 때는 ‘벤치만 지킨다’며 비아냥거린다. ‘대주자, 대수비로만 뛴다.’ ‘기껏 1이닝짜리다.’ 그런 제목으로 이목을 끈다.

그러다가 이번 일에도 호들갑을 떤다. 전후 상황을 상세히 다룬다. 어느 매체는 아예 속보로 다룬다. ‘추태’라는 어휘까지 등장한다.

야후 재팬의 ‘많이 본 뉴스’ 랭킹에도 오른다. 기사 하나에 댓글이 100~200개씩 달린다. 의외로 우호적인 것들이 꽤 있다. 심지어 한국의 형사법에도 조예가 깊다.

“혜성 선수가 불쌍하다. 어린 시절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kar********)

“열심히 하는 선수인데. 데뷔 때 기뻐하는 모습도 기억에 있고. 잘 이겨내고 내년에 출전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 (yma********)

“부모의 채무다. 자식이 변제할 의무는 없다.” (gqa********)

그렇다고 해도 뻔하다. 이런 뉴스를 소비시키는 의도 말이다.

“다저스에서 받는 연봉이면, 대신 갚아줘도 충분할 텐데” (suk********)
"한국은 정말 시끄러운 나라군.” (lal********)

이런 식의 반응이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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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멈출 때

그나마 다행이다. 늦었지만, 해결 국면을 맞았다.

21일 방송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SBS '궁금한 이야기Y'가 자리를 마련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마주 앉았다.

혜성 아버지 “12월 20일 전까지 해서 5000만 원 주는 걸로. 전국 방송에서 보고 있는데, 거짓말을 하겠어요?”

고척 김 선생 “(5000만 원이면) 너 싸게 막았어.”

혜성 아버지 “그래요. 싸게 막았어요.”

고척 김 선생도 만족스럽다.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긴다. “혜성아, 미안하다. 네 아버지 때문이다.”

다음 날(22일)이다. SNS 하나가 공개된다. 또 다른 당사자(김혜성)의 글이다. 반성문 혹은 사과문의 형태다.

“11월 6일 공항에서의 제 미숙한 언행과 이후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로 인해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당시 행동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장에 계셨던 김 선생님, 취재를 위해 자리에 계셨던 기자분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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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앞서 말한 A나 B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스타가 된다. 거액을 만진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칫 골치 아픈 일도 따라온다.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2주 동안이었다. 큰 논란이 일었다. 야구팬만이 아니다. 거의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다. 유튜브 하는 변호사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수많은 팩트 체크가 이뤄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잘못 따지고…. 그야말로 극한의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멈출 때다. 당사자들은 약속을 지키면 된다. 정해진 날짜에 갚고, 더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김혜성은 그라운드에서 얘기하라. 사과문대로 하면 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괜찮은 스포츠맨’이 돼라. 그게 실망한 팬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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