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덩치들은 옷을 벗지 않는다, 오직 진심만 드러낼 뿐('오버 더 톱')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2. 11. 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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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톱’ 상남자들의 우직한 승부, 시청자 마음 녹일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싱어게인> 제작진이 새롭게 내놓은 팔씨름 서바이벌 예능 <오버 더 톱>은 최근 방영한 예능 중 가장 전위적이다. 팔씨름 때문이 아니다. 소재를 가리고 보면 일반적이다. <싱어게인>처럼 일반인들과 유명세가 있는 출연자들이 1등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익숙한 서바이벌 예능이다.

3회차가 진행되는 동안 본선 진출자 100명을 가리는 예선전에서 팔씨름 대회 특유의 승자조와 패자조로 나누는 더블 얼리미네이션 방식이 도입하긴 했으나, 본선 진출자를 절반으로 단칼에 줄이는 단판 데스매치, 또 25명을 추리기 위해 예고된 팀별 대항전 등등 큰 틀에서 보면 기존 서바이벌쇼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위적이라 못 박은 이유는 참가자도 관람객도 모두 남자인, 남자들을 위한 예능이기 때문이다. 이 쇼는 아예 정체성을 '맨즈 챔피언십'이라고 못 박고 출연 자격도 15세 이상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제작진의 의도야 TV조선의 트롯쇼처럼 남성편, 여성편으로 나누고자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대중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비자인 여성에 대한 고려는 딱히 염두에 두지 않고, 제목에서부터 오직 팔씨름만 보고 달리는 이탈리안 종마와 같은 기개가 보인다. 유튜브 생태계에선 최근 격투 콘텐츠들을 비롯해 활황이지만, 방송가에선 아예 사라지다 못해 금지된 강함, 마초적 승부와 같은 남성성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사실상 <오버 더 톱>이 지난 몇 년을 통틀어도 유일하다. XTM이 사라진 이래로 이런 접근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최근 <강철부대>를 비롯한 특수부대 콘텐츠도 있었다. 하지만 <오버 더 톱>은 1:1로 맞붙어 단 몇 초 만에 승부가 결정이 나는 원초적인 본능에만 집중한다. 남성의 성상품화에는 비교적 관대한 방송 예능계의 관례에 따라 젊은 '몸짱' 출연자들을 수시로 벗기던 프로그램들과는 아예 접근이 다르다. 아무도 옷을 벗지 않을 뿐더러 출연자의 평균 체형과 외모가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성 기준은 당연하고 몸짱의 범위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간단히 말해 대부분 아저씨거나 덩치들이다.

오직 관심은 '누가 더 강한가' 뿐이다. <오버 더 톱>은 강함을 가리는 동시에 팔씨름이 대중적으로 생소한 스포츠인 만큼 팔씨름 대회의 룰과 방식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국제 규격 암 레슬링 테이블 위에서 한 경기당 주심과 부심 2명의 심판이 경기를 주관하고 실제 대결 과정에서 파울의 유형, 기술의 종류와 상성, 등등 팔씨름이란 스포츠를 안내한다.

또한 국내 톱랭커들의 소개를 통해서 동호회로 시작해 지난 10여 년간 나름 번듯한 단체로 성장한 국내 팔씨름 시장을 방송 프로그램 안에 담는 스토리텔링도 보인다.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선수들의 서사가 펼쳐지고, 팔씨름이 단순히 파워로 승부하는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기술의 존재와 상성 등의 배경 지식은 새로운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국내 대회의 10배 이상의 상금이 걸린 만큼 국내 프로 팔씨름 파이터들은 대부분 출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의 발견과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라는 점이 꽤나 흥미롭다. 이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홍대 앞 자생하는 인디 문화였던 언더 힙합 씬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메인스트림으로 길어 올린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떠오른다.

그런 한편 외연을 확장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또한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형이 왜 여기서 나와?"의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이곳에서 볼 줄 몰랐던 배우 김재원, 개그맨 문세윤을 비롯해 하승진, 최준석, 정다운, <뭉쳐야 찬다> 멤버 등 여러 유명 스포츠 스타, 셀럽들을 의외의 현장에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작은 취향을 향유하고 소개하는 콘텐츠는 자칫하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려다 외면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나, 시청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서 축제처럼 느껴진다. 고무적인 부분은 그럼에도 팔씨름 팬들과 커뮤니티 사이에서 무척 호응이 좋다는 점이다. 이는 제작진이 팔씨름을 방송을 위한 소재 정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깊은 이해를 갖고 준비했다는 방증이다.

한편 불안 요소도 존재한다. 제작진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팔씨름 경기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편견을 단번에 깨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으나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 테이블 위에 한정된 찰나의 상황이다 보니 벌써부터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특정 선수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캐릭터 플레이를 보다 정교하게 풀어내거나, 천재적 재능이 프로의 벽을 넘을 수 있는지 등의 관전 포인트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한편의 서사물이어야 하는 서바이벌쇼의 드라마가 밋밋해질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 팔씨름을 소재로 한 마동석 주연의 영화 <챔피언>이 있다면 미국에는 실베스타 스텔론의 1987년 작 <오버 더 톱>이 있다. <록키>시리즈에서 권투를 팔씨름으로 치환하고 할리우드 특유의 아버지 서사를 얹은 가족영화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가져온 동명의 서바이벌 예능 <오버 더 톱> 또한 팔씨름에 진심인, 팔씨름에 인생을 건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영화처럼 이 서바이벌쇼가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 스토리가 될 것인가. 얼핏 무용해 보이는 것에 천착해온 상남자들의 우직한 승부가 과연 시청자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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