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으로 아들 잃고 교육에 헌신... 미움 대신 용서로 품다

허윤희 기자 2024. 10. 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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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별세
이대봉 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 평창동 서울예고 내 서울아트센터 개관을 앞두고 도암홀 객석에 서 있다. 학교 폭력으로 숨진 아들의 모교를 인수하고, 사재 200억원을 털어 설립한 대형 문화 공간이다. /고운호 기자

학교 폭력으로 막내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가해 학생을 용서하고, 도산 위기에 처한 학교 재단까지 인수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내 아들의 꿈이 자라던 학교라 그냥 문 닫게 놔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회를 설립해 36년간 형편 어려운 인재들을 지원했고, 사재 200억원을 털어 지난해 서울예술고등학교 내에 대형 문화 공간인 서울아트센터를 열었다.

폭력을 용서와 더 큰 사랑으로 승화한 이대봉(83) 참빛그룹 회장이 1일 별세했다. 1941년 12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고교 1학년 때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신문 배달, 부두 하역, 고물상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1975년 동아항공화물 설립을 시작으로 참빛가스산업 등 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건설·관광·레저 등 분야에 14개 계열사를 둔 그룹사를 일궈냈다. 베트남에도 진출해 그랜드 프라자 하노이 호텔, 하노이 휘닉스 골프리조트를 운영해왔다.

일밖에 모르던 그가 장학 사업에 매진하게 된 사연이 극적이다. 1987년 뉴욕 출장 중 비서가 전화를 했다. “서울예고 성악과 1학년에 다니던 막내 대웅이가 선배들한테 맞다 심장마비가 와 병원에 실려갔다고,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했어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돈은 원하는 대로 드릴 테니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지요. 그런데 이미 냉동실에 들어간 뒤였어요.”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학교를 다 부숴버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영안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니 눈물만 났다”며 “내 죄와 업보가 많아 이렇게 된 건가 싶고, 복수를 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담당 검사는 선처할 수 없다고 했다. “검사 생활을 18년 넘게 했지만 자식을 때려 죽인 사람을 용서해 달라는 부모는 없었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가해 학생을 위한 구명 운동까지 했다. 풀려난 가해 학생은 서울대에 진학했다.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 애를 보면 혹시라도 내가 무너질까 봐서.”

아버지를 ‘대장’이라 부르며 제일 잘 따르던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대웅이가 노래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다. 성악 발표회도 성공적으로 끝내 찬사를 받았는데 이를 시샘한 선배들이 학교 뒷산으로 불러내 건방지다며 복부를 여러 차례 때렸다”고 했다. 서울예고 학생들은 돈을 모아 음표 모양의 작은 비석을 교내에 세웠다. 대웅군 사건 이후로 학교에 학폭도 급감했다고 한다. 그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받는 교육이 학폭 예방 교육이고, 제 아들 추모비가 서 있으니 전교생이 그 사연을 다 안다”며 “아이들이 죄를 짓기 전에 죄를 안 짓도록 가르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이대봉 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아트센터 개관을 앞두고 도암홀 객석에 앉아있다. /고운호 기자

아들이 죽은 이듬해 그는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했다. 지난해까지 35년간 3만여 명의 학생들을 지원했다.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해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의 이사장이 됐다. 작년 5월엔 서울예고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 평창동 교내에 서울아트센터를 설립했다.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설 수 있는 무대와 1084석 객석, 최첨단 음향 시설을 갖춘 대형 문화 공간이다. 둘째 며느리인 주소영 서울예술학원 사무처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울아트센터 개관 후 장학 사업을 더 확장하셨다. 올해부터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재학생 15명씩, 30명을 선정해 장학금도 수여한다”며 “돈이 없어서 우리 학교에 못 들어오는 학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사업차 진출한 베트남에서도 장학 사업에 앞장서 왔다. “월남전 때 우리가 잘못한 게 많아서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다”고 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베트남 보국훈장, 2012년 베트남 정부 보훈훈장 등을 받았다. 독립운동가 자녀들과 독거 노인, 치매 노인들도 도왔다. 생전 그는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울분이 용솟음치지만 용서의 힘이 복수의 힘을 앞선다고 믿는다”며 “열심히 장사해 번 돈으로 어려운 분들 도와드릴 때가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은 부인 윤봉자씨와 아들 이대만 참빛그룹 부회장, 며느리 강정애 디지솔루션 사장, 주소영 서울예술학원 사무처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 발인은 5일 오전 5시.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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