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중훈의 데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육사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온 아버지는 아들의 연기 도전을 강하게 반대했다.
“우리 집에 웬 딴따라가 나왔냐”며 매를 드셨고, 어머니가 말리는 틈을 타 숨으며 맞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박중훈은 중앙대 영화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막상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혹시 문화공보부에 아는 분 없느냐”며 도움을 청했다가 또 한 번 독립심 없는 놈이라며 큰 꾸중을 들었다.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 합동영화사 이황림 감독 밑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며 기회를 엿봤고, 1985년 영화 깜보로 데뷔하게 됐다.

이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가 흥행하면서 박중훈은 스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아들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며 매 영화 개봉 때마다 극장에 직접 전화해 “박중훈 나오는 표 있나요?”라며 예매를 시도하곤 했다.
매진 소식에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모습은 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박중훈을 아꼈던 안성기

"중훈아, 내가 왜 너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는 줄 아니?"
박중훈이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버지는 영화 행사 때마다 안성기를 찾아가 두 손을 꼭 잡고 “제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수년간 묵묵히 부탁을 전해왔던 것이다.

이 조용한 응원은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안성기는 이후 박중훈에게 선배이자 형, 때로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 중 박중훈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또 한 번 안성기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중훈이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이 콤비는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수많은 명작을 함께 만들어냈다.
특히 라디오 스타로 나란히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하며 국내 영화사에서도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겼다.
박중훈은 “사람들은 과녁에 꽂힌 화살만 보지만, 사실 중요한 건 활이다”며 안성기를 향한 깊은 신뢰를 전하기도 했다.

지금도 두 사람은 양재천을 함께 달리고, 영화계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좋은 길잡이이자 기댈 수 있는 친구로 30년 가까이 함께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

박중훈과 안성기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를 넘어선 진짜 ‘인생 콤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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