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카페에서 충전하면 전기 도둑? 한국 과학고 졸업생이 만든 것
트립빌더 김명준 대표
길을 걷다 갑자기 휴대폰이 꺼진다면? 눈앞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휴대폰을 충전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선 자연스럽다.
반면 해외에선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특히 일본에선 금물이다. 일본에서 카페나 식당의 콘센트로 휴대폰을 충전하면 ‘전기도둑’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다. 트립빌더에 물어보면 된다. ‘콘센트 충전이 가능한 근처 카페 알려줘. 이용해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트립빌더는 여행자의 상황과 성향을 고려한 맞춤 여행을 돕는 인공지능(AI) 기반 관광 플랫폼이다. 관광지, 맛집, 숙소를 추천하고 여행 도중 생기는 돌발 상황에 대안을 제시한다. 트립빌더의 김명준(24)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반년 만에 3000명이 가입한 여행 동아리
김 대표는 지금까지 30여개국을 여행했다. 여행을 즐기는 부모님과 함께 어릴 때부터 여행을 떠난 덕분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어머니는 부산이 고향이에요. 모두 관광 특화 도시였죠. 명절 같은 연휴에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제주와 부산을 여행했어요. 해외여행도 많이 갔습니다. 1년에 3번 정도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탔죠. 여행은 우리 집의 가장 큰 문화였습니다.”
2019년 유니스트(UNIST)에 입학해 여행 동아리 ‘트래블 메이커’를 만들었다. “이공계 대학이라 여행 동아리가 없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여행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동문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쌓아온 다양한 여행 경험을 살려 동아리원에게 ‘개인 맞춤’ 여행 정보를 제공했어요. 설문으로 여행 가치관이나 스타일을 파악해 여행지를 추천하는 식이었죠.”
‘개인 맞춤 여행 정보 제공’ 서비스의 수요를 확인한 김 대표는 창업을 꿈꿨다. “30명의 회원으로 시작했던 동아리는 6개월 만에 회원 수 3000명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전교생의 10%가 가입한 수준이었죠. 개인 성향에 딱 맞는 여행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고 창업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여행 동아리가 현 트립빌더의 모태인 거죠.”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에너지화학·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탄탄하게 이공계열 진로를 밟아오던 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태양전지, 촉매연구 등 다양한 화학 분야를 연구했는데요. 이 분야는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반면 스타트업은 구상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현실로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이 맞는 동아리원 12명이 모였다. “여행자의 성향을 분석해 관광지, 맛집, 숙소 등 맞춤 여행지를 추천하는 기술을 만들었어요. 당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유행하던 시기라 적극적인 시장 테스트가 어려워 데이터 구축이나 AI 기술 개발에 집중했어요.”
◇인생 여행지 알아서 찾아주는 AI 여행 비서
2021년 설립된 트립빌더는 개인에 맞는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여행성향테스트’는 여행 ‘준비’와 ‘과정’에 대한 설문을 통해 그에 맞는 성향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5분 이내 100가지 성향 분석이 가능해 여행 전 자신의 스타일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개인별 상황을 학습한 AI가 관광 일정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일종의 ‘AI 여행 비서’다. 출시 한 달 반 만에 2000명의 이용자 수를 기록했다.
기존에도 여행지를 추천하고 맛집과 숙소를 알려주는 서비스는 있었다. “관광 업계에선 로그 데이터를 활용해 여행자의 성향을 분석했어요. 로그 데이터는 컴퓨터 시스템, 서버 등에서 발생하는 활동을 기록한 세부 정보를 모두 포함합니다. 예컨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연필을 사면 지우개 구매를 추천하는 창이 뜨는데요. 이는 ‘연필을 산 사람이 지우개를 구매하는 경향이 높다’ 같은 구매 로그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여행은 물건 구매나 영상 시청 기록처럼 짧은 기간 내 많은 데이터를 쌓기 어려워요.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로그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활용도가 떨어지는 비현실적인 방안이었어요.”
김 대표는 소셜 빅데이터 기반으로 AI를 학습시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네이버 블로그, 구글 지도 등 산재된 여행 정보를 모아 하나의 소셜 데이터로 만듭니다. 여기에는 후기 같은 이용자의 자세한 경험담이 많이 담겨있어 양질의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하기 좋아요.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이용자는 검색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SNS를 돌아다니며 ‘야경 보기 좋은 장소’를 일일이 검색하지 않아도 돼요. 트립빌더에 한 번만 물어보면 되니까요. 질문을 입력하면 질문의 핵심 키워드를 뽑아 이와 관련된 가장 유사한 정보를 포함해 답변합니다.”
여행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않더라도 문제없다. 트립빌더는 긴급 상황에서 더욱 유용하다. “아무리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도 여행에선 변수가 많아요. 야외 활동 위주로 하루 일정을 짰는데 비가 내려 급하게 실내 일정으로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가장 흔해요. 걱정 없습니다.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 중인데 경로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갈만한 실내 여행지 추천해 줘.’ 하면 1분 안에 알려주거든요. ”
의외로 여행회사는 경쟁자가 아닌 트립빌더의 고객이다. “저희 솔루션을 도입한 여행 기업은 유저들의 성향을 기반으로 자체 관광 콘텐츠와 일정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관광 콘텐츠를 홍보할 만한 마케팅 채널이 부족해요. SNS 위주의 홍보 방식이 전부이죠. 중소 관광기업은 개성 있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가졌어도 마케팅 규모 등의 문제로 세상에 알려지기 어렵습니다. 저희 기술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세상에 선보이면, 중소기업과 상생할 기회가 될 거예요. 여행자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요.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 울산스마트관광도시조성사업에 참여해 여행성향분석, AI 맞춤관광추천 등 기술과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했다. 여러 중소기업·대기업과 협업 중이다. “올해 말 반려동물 동반 숙박 플랫폼과 협업한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에요.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문화가 생기면서 반려동물과 같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많이 찾는데요. 지방 소도시에선 숙박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요. 저희 기술과 반려동물 숙박 플랫폼 콘텐츠가 결합하면 반려동물 동반 여행자들이 겪는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거예요.”
트립빌더의 서비스로 여행자의 ‘시성비’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시성비란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한다. ‘시간=돈’으로 계산한다. “여행할 때 특히 시성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시간을 보내도 아쉬운 게 여행이니까요. 낭비하는 시간 없이 알찬 여행을 즐기게 도와주고 싶어요.”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이 사용하는 여행 플랫폼
AI 여행 비서로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엠와이소셜컴퍼니(MYSC)’가 주최하는 ‘2024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참여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관광산업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난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를 통해 전주 한옥마을 실증 사업의 기회를 얻었다. 디데이에서 전시관을 운영하며 200명이 넘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체험 박람회를 운영했다.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여행 플랫폼을 꿈꾼다. 서비스 지역과 대상을 전 세계로 확장할 예정이다. 두바이 ‘자이텍스(GITEX)’, 싱가포르 ‘스위치(SWITCH)’ 등 세계 박람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트립빌더의 서비스 단 하나로 누구나 완벽한 여행을 떠나게 하고 싶어요. 올해 말 다국어 서비스를 오픈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현지인처럼 한국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트립빌더를 이용하게 하고 싶어요. 글로벌 허브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다가도 접속할 수 있는 여행 플랫폼을 꿈꿉니다.”
/이연주 에디터, 주서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