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였는데…싱글맘 되자 단역배우로 복귀한 배우 근황
(Feel터뷰!) 영화 '도그 데이즈'의 윤여정 배우를 만나다
1월 26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윤여정 배우를 만났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예능까지 ‘윤여정’을 거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TBC 방송사 탤런트 공채 3기로 데뷔 후 1966년 연극판부터 경력을 쌓아 온 윤여정은 1971년 드라마 [장희빈]과 영화 <화녀>로 악인의 지평을 열었다.
<화녀> 속 식모 명자를 연기해 그해 흥행 1위를 물론 제4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0회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듬해 1972년 김기영 감독의 <충녀>까지 연이어 출연했지만. 1972년 결혼 발표 후 1984년까지 미국에 살았다. 1985년 이혼 후 캐스팅되지 않는 절망 속에 김수현 작가의 도움을 받아 <어미>로 복귀할 수 있었다.
데뷔 후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1980년대부터 전형적인 어머니, 여성상을 벗어나 독보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필모그래피가 하나씩 완성되어 갔다. <미나리>를 통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 배우란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예기치 못한 인연을 맺게 되며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와 변화를 따스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그리는 영화다. 윤여정은 반려견 완다와 외롭게 살아가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를 연기했다. 거침없는 매력과 인생 명언을 선보인다. 민서의 옷, 신발 등이 모두 애장품이었다. 처음부터 윤여정을 염두에 두고 쓴 캐릭터라 맞춤옷 같았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힘든 자연스러운 캐릭터다.
그야말로 츤데레, 꼰대 같지 않은 진짜 어른이다. 까칠한 말투 속에 깃든 따뜻한 마음을 경력 59년 차 77세의 관록으로 표현해 낸다. 젊은 세대의 롤모델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롤모델도 없고 롤모델인적도 없다며 겸연쩍어했다. 이야기 도중 너무 많은 후배가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거들자 “그거 우스운 거다. 난 지금까지 쭉 있었는데 갑자기(?) 롤모델 같은 거 애초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자기 인생대로 살면 되지 각자 인생이 다른데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좇을 필요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인생은 본인이 개척해 가야 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롤모델은 어머니지 싶었다. “누가 지금까지 일했는데 건물도 없냐고 물어보더라. 그냥 그 돈으로 백 샀다고 말해 버린다. 내가 올해 77세다. 그 나이에 수입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우리 엄마 딸로서 손색없다. 서른넷에 과부 되고 한국전쟁 때 넘어오셨다. 아무것도 없이 공무원 시험을 봐서 애 셋을 먹여 살렸다. 대단한 존재, 나의 전부다”라며 “아카데미상을 조금 일찍 받았으면 어머니가 좋아하셨을거다. 돌아가실 때 재산 물려줄 생각 말고 다 쓰고 가시라고 했다”며 존경을 드러냈다.
완다와의 호흡을 묻자 “완다는 7개월 된 아이라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호흡이 아닌 투쟁이었다”며 동물과 연기하기 힘들다는 말을 증명했다. 기절해서 쓰러져 있는 장면에서 자길 밟고 가지 않았던 게 아직도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가족같이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후 온 식구가 뛰쳐나가 찾았지만 결국 못 찾았던 경험 때문에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다고 씁쓸히 고백했다. 반려인에게 상실은 여러모로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응한다.
김덕민 감독과는 전우애로 뭉친 사이라고 귀띔했다. 19년 동안 조감독만 해서 데뷔작은 꼭 함께할 거라고 결심했다고. 스스로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한 번 인연 맺은 사람과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타입 같았다. 단단한 마음으로 초월한 겉모습과 달리 극 중 민서처럼 상처받고 외로울 때가 있는지 묻자 “늙으니까 노여움이 많아진다. 믿었던 아이를 도와주려고 일을 줬는데 배신하면, 이 나이에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끝이 나지 않겠구나 싶고 실망스럽다”며 여린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김덕민 감독하고는 오래전부터 만나온 사람이다. 효율적으로 일하게 해주고 늘 배우 쪽에서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사람을 잘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결심과 감독의 전우애가 들끓었었던 현장이었다. 그럴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는 거다”라고 화통하게 말했다.
다만 “오래 일해서 주문하면 원하는 온도를 맞추는 기술자가 된 거다. 감독이 뭘 원하는지 알면 편한데 장황하게 설명하고 형이상학적인 주문을 하면 어렵다”며 연기 방식을 토로했다.
<미나리>로 상 받으니까 주인공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지만 솔직히 당황스럽다고 솔직 대답했다. 평소 해보고 싶은 역할을 고를 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 상상해 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상 탔다고 이제야 주인공으로 섭외 들어오니 씁쓸했다”고. 그러면서 “출연료를 많이 준다든지, 유명 감독이라든지, 이것저것 고려하고 싶어도 그런 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오직 시나리오면 시나리오, 감독이면 감독만 본다”며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윤여정은 “젊었을 때, 미녀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었다. 멜로는 안 해봐서 멜로에 대한 향수도 없고 로망도 없다. 다만 어떤 순간에 할아버지를 만나 동지애를 느꼈다면 그것도 나름의 멜로라고 생각해봤다”며 쿨하게 답했다. 조금 더 지나 어쩌면 멜로 영화도 들어올지 모르겠다.
본이 아니 게 같은 날 <소풍>이 개봉해 나문희, 김영옥과 실버파워를 경쟁하게 되었다. 두 배우와는 [디어 마이 프렌즈]로 인연 맺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따로 또 같이 ‘엄마’ 역할을 맡아 만나지 못한 배우들을 노희경 작가가 모아주어 고맙다고 강조했다. 다들 나보다 선배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말했다.
윤여정의 연기 인생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이었다. 그때는 일류와 이류 갭이 큰 시대였다. 학교 등록금을 달라고 말할 수 없어 돈 벌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반세기 전 이야기니까 감안하고 들으라고 재차 강조하며, ‘라떼는 말이야’가 계속되었다. 꼰대의 가르침은 없었다. 그저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듣고 싶을 정도였다.
<도그데이즈>의 ‘민서’가 배달 라이더 ‘진우(탕준상)’에게 하는 말들이 요즘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았던 거니까. 어른들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난 절대로 그런 말 안 한다. 나 혼자 집에 가서 욕하고 말지.. 고생을 안 해봐서 뭘 알긴 하니 하면서.. (웃음)” 장난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말까지도 귀담아듣게 되는 마력을 타고나셨다.
“더운물 나오는 집도 없었고, 재벌이란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에는 그냥 부잣집이라 불렀다. 격차도 없었고 명품도 없었지만 행복했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여우주연상과 신인상을 받고 잘나가던 시절, 돌연 결혼과 이혼으로 10년 공백기를 맞았다.
“첫 영화에서 상을 타니까 자만했었다. 어쩌다가 배우를 하게 된 거다. 옛날에는 적령기가 지나면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았고, 결혼하면 연기는 당연히 그만두는 거였다. 이혼하고 38세에 돌아오니 쉽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배우 수업을 해왔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당시 김기영 감독이 돌아오라고 매달렸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10년 만에 돌아와 일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아무도 찾지 않았다. 윤여정은 “열심히 했다. 그때 내가 연기를 못하는 걸 처음 알았고 허명(虛名)임도 깨달았다”라며 먹고살기 위해 연기했고, 스스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지나고 보니 인생수업이었다고 반추했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배우가 많지 않은 현실. 김수현 작가는 은인이다고 털어놨다. “이혼 후 2년 동안 암묵적으로 배제 당하는 게 느껴졌었다. 김수현 작가가 오로지 재능만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제가) 여의치 않자 먼저 손 내밀어 주었다”라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민서는 프로젝트에 도움을 받으려고 급조된 강아지와 다정한 사진으로 환심을 사려는 민상(유해진)에게 일침을 가한다. 수의사 진영(김서형)에게는 있지만 당신에게 없는 게 있다고 응수한다. 그게 무엇일지 끝까지 밝혀주지 않아 관객 각자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윤여정은 “그게 나도 궁금했다”며 김덕민 감독을 불렀고 현장에서 “마음”이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대하려는 자세, 눈빛, 말투가 총체적으로 닿아야 나눌 수 있는 무형의 가치다. 생계를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고 해도 진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윤여정은 없지 않았을까. 평생 배우로 살아왔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겸손. 윤여정은 배우를 업으로 삼길 잘했다며 앞으로 보다 돌아볼 것이 많은 노배우가 된 현실을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현역에 있고 싶은 포부도 드러냈다.
현장에서 무언가 부딪혀서 상처가 났지만 말 안 하고 꾹 참았다고 했다. 나중에 게 된 김덕민 감독에게 생색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옛날에는 작은 일로 호들갑 떨면 촬영 지연시키고 굉장한 민폐였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촬영은 마쳐야 했다”며 배우의 책임 의식을 꼬집었다.
윤여정은 늘 외로웠다며 “늙어가는 게 외로운 거다. 외로움을 즐기기는 힘들어도 혼자 있는 게 좋다”고 일상적으로 말했다. 나이 들어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지만, 그것도 꼭 따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주는 큰 상징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흘러가듯 살고 싶은 의지처럼 보였다.
끝으로 자신의 삶은 마종기 시인의 시 ‘이슬의 명예’ 한 구절로 압축했다. “후회도 낙남도 변명도 아양도 없이 한길을 살다 보니 외진 길이 되었을 뿐”을 직접 낭송했다. 영화 속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작가가 나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은 말일뿐이라며 “살다 보면 누구든 눈에 거슬리지, 왜 안 그러겠냐. 그래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데 감 놔라 배 놔라 해봤자 오지랖일 뿐이니까. 충고도 조언도 싫다”고 손사래 쳤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이란 말의 인간화를 본 것 같아 45분이 짧게 느껴졌다. 세계가 인정한 타이틀의 유세도 없이 오롯이 기세 하나만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윤여정이지 싶었다.
글: 장혜령
사진: CJ ENM
- 감독
- 김덕민
- 출연
- 윤여정, 유해진, 김윤진, 정성화, 김서형, 다니엘 헤니, 이현우, 탕준상, 윤채나,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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