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와 '보존'으로 나뉜 부산 아미비석마을의 운명..피란민 애환 서린 곳

백창훈 기자 2022. 8.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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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아미동2가 231-181번지'번지 모습.20228.19/뉴스1 백창훈 기자

(부산=뉴스1) 백창훈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인 피란민들이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지어 생긴 무허가 마을, 일명 부산 서구 아미비석마을이 '철거'와 '보존'이란 운명에 놓였다. 수십년간 살을 부비며 살아온 민심도 엇갈리고 있다.

같은 비석마을이라도 구청장 공약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처한 구역의 주민이 있는 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면서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는 구역의 주민도 있다. <뉴스1>이 비석마을의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철거 앞둔 서구 '아미동2가 231-181번지'…전세 보상금이라도

19일 낮 12시쯤 철거를 앞둔 부산 서구 아미동2가 231-181번지 일대.

경사지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 수십 채가 모인 이곳은 주민이 몇 없어 조용했다. 대부분의 출입문은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지 굳게 잠겨 있었다. 마을 앞 작은 텃밭은 주인이 몇 달째 관리하지 않아 엉망이었다.

출입문이 반쯤 열린 일부 주택을 통해 단칸방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고, 외부엔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본인 묘터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보였다.

근처 슈퍼마켓 사장 김모씨는 "나라에서 이곳을 주차장으로 만들려 한다. 곧 있으면 철거될 거라 주민들이 보상금을 받고 이사했다. 보상이 적다고 버틴 일부 주민만 아직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2가 231-181번지'번지 모습.20228.19/뉴스1 백창훈 기자

서구는 이 일대 주택 31동을 허물고 구청장 1호 공약 사업인 '천마산 관광모노레일 사업'을 위한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을 준비 중이다. 주차장은 지하 3층~지상 2층, 총 연면적 7441.5㎡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당초 이곳에는 34세대 62명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구가 주차장 조성을 위해 원주민들에게 이주 보상금을 줬고, 41명이 이를 받아들여 둥지를 옮긴 상태다.

구의 일방적인 통보와 턱없이 적은 보상액에 불만을 느낀 13세대 21명만이 아직 이곳에 살고 있다. 한 세대가 받는 평균 보상액은 4000만원이지만 철거되는 집의 크기가 제각각이라 최소 800만원을 받는 세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주민은 "이사비 등을 빼면 수중에 남는 돈도 없다. 최근 집값이 많이 올라 이 보상금으로는 제대로 된 전세방 하나 구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또 "무허가로 지은 집이지만 수십 년째 한 해 두 번씩 평균 40만~60만원씩 구에 변상금을 지불하고 있다"며 "주민 평균연령은 80대로, 고령층인 만큼 아파트 전세금 정도는 지원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주 문제로 주민과 수년째 갈등을 빚어온 구는 최근 이곳을 철거할 업체를 미리 선정하는 등 건축물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

다만 구는 주차장 조성 목적으로 철거 업체를 공모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구 관계자는 "주민이 떠나면서 남은 빈집이 범죄 우발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어 주거정비의 일환으로 철거를 준비 중"이라며 "실질적인 작업도 주민이 모두 이주한 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남은 주민들은 적정한 이주보상금을 받기 위해 부산시의 재결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토지보상법에 따라 구와 협의에 실패하면 시 토지수용위원회에서 보상금을 재감정한다. 재감정 결과도 수용 못하면 국토부 산하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이의재결을 할 수 있다.

◇ 또 다른 비석마을 '아미동2가 231-178번지'…유네스코 등재에 훈기

부산 서구 '아미동2가 231-178번지' 일대 모습.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한 주택이 보존돼 있다.2022.8.19/뉴스1 백창훈 기자

반면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비석마을인 아미동2가 231-178번지 일대(1만8261㎡)는 거주민이 많아 왁자지껄하는 등 철거를 앞둔 구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을 골목 벽에는 미관을 위해 벽화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비석마을임을 알리는 관광안내지도와 과거 마을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전시돼 있었다.

이 구역은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기획 중인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 한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선 우선 문화재청 잠정목록 등재가 필요한데, 문화재청이 '피란수도 부산'에 속한 9개 유산에 대해 종합보존관리계획 수립을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한 후속 조치로 구는 최근 아미동2가 231-178번지에 대해 보존과 관리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가 비석마을인지 명확히 경계가 나눠지지 않았던 것을 이번 보고회를 통해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지구단위계획 수립과 함께 구가 무허가인 이 일대 거주민은 철거지역에 사는 주민과 달리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방침이다.

아미동 비석마을은 구한말 일본인 거류민단이 들어오면서 이곳에다 화장장과 공동묘지를 조성했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피란, 부산시내 판자집 철거정책과 함께 산으로 산으로 떠밀려온 사람들이 삶의 희망을 꿈꾸며 일궈온 마을이다.

이 마을은 바로 옆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부산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로, 한국전쟁때 피난 온 사람들이 마을을 꾸렸다. 그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어서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석마을 골목에서는 지금도 그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모노레일 사업 전부터 비석마을 일부를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이어서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했다. 이후 시에서 유네스코 등재 지역으로 비석마을을 선정했는데,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구역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항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철거되는 지역 역시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생활상이 충분히 묻어 있다"며 "이를 도시재생이라는 성과로 둔갑해 원주민을 내쫒으면서까지 유산과 구분 짓는다는 게 안타깝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데, 두 문제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정부기관이 필요하고, 또 묘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un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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