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X번 찍었지?” 약도 없다는 정치병…도대체 누가 퍼트리는 걸까 [Books]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자들의 정치적 경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하루 전날 국경 보안 강화책을 발표한 대선 경쟁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국경을 지워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정신 장애’라는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국경 보안 정책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가 그만큼 극명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두 후보의 투표 결과는 박빙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간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현대사회 곳곳 만연해 있는 양극화의 작동 방식을 파헤친 책이다.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철학자이자 컨설턴트인 바르트 브란트스마가 지난 10년 간 갈등과 양극화, 극단과 중립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점점 더 극단을 향하게 되는 분열의 원리를 밝히고, 이를 토대로 양극화와 극단주의 대신 사회적 결속과 문명화된 공존의 기회를 잡는 법에 대해 설파한다.
책은 그동안 우리가 외면하다시피 했던 양극화의 주체에 주목한다. 예컨대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의 양극화를 강화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 프란치스코 교황,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 9·11을 일으킨 비행기 납치범들, 서구 저널리즘, 현지 이슬람 성직자들, 극우 정치인들…. 브란트스마는 “이 사람들 모두가 개입돼 있지만 책임자를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며 “그간 양극화 관리를 위해 실질적이고도 그만큼 복잡한 시도들을 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에 따르면 양극화는 5가지 역할에 의해 작동한다. 양극화된 이슈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하는 지도자층을 일컫는 주동자와 사회적 불만이나 두려움을 바탕으로 주동자의 목소리에 동조하며 갈등을 확산시키는 동조자, 갈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침묵하는 다수를 일컫는 방관자,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재자, 그리고 양극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희생양이다.
여기서 브란트스마가 주목한 것은 놀랍게도 주동자, 동조자가 아닌 방관자다.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주동자는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주동자의 적수는 반대편 극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주동자가 노리는 것은 양극화 압력에 민감한 중간 그룹이다. 대체로 중간 그룹은 절대 다수인 경우가 많다. 즉, 이들을 자기 쪽으로 데려와야 주동자가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 방관자는 갈등을 해결하려 하는 중재자들도 외면하기 때문에 암묵적인 동조로서 양극화에 가담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책은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가장 첫 번째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극단적인 입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한쪽이 아닌 양쪽의 목소리를 듣고, 감정적인 논쟁보다는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자는 것이다. 특히 중재자들이 지속적인 대화와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고, 양극화 논쟁 속에서 중립적인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도록 돕는 일종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양극화 과정에서 사실상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다수의 방관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양극화의 희생양들을 보호해 양극화가 권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수 없도록 막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미 대선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한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행위다. 양극화의 주동자로서 동조자들을 더 부추기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양극화를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차별·불평등·폭력의 원인이라고 딱지를 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양극화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양극화는 우리 스스로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덫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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