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는 오늘날 OTT를 통한 TV 시리즈, K-POP 등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만 흥행하는 것이 아니라 팝컬쳐에 한정해서 보면 그야말로 세계구급으로 종합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괜히 미국에서도 한류의 도래를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과거에는 아시아권의 몇몇 국가들에 한정되어있었고 한 시대에 한 작품 정도만이 돌아가면서 히트치는 형태와 다르게 2020년대에 들어서는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인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영향이 커서 이제 서구권에서도 한국 이미지가 이쪽으로 정립되는 듯합니다. 컨트리볼 같은 곳에서도 점점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 문화 분야의 이야기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 한류의 영향으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주하는 외국인도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거리와 일상생활 공간에서 외국인을 만나거나 어울리는 일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 통계를 보면, 2023년 3월 말 기준 한국의 체류 외국인은 233만 5천595명. 전체 인구(5163만 명)의 4.2%로, 다문화사회(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이 5% 이상인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국적과 체류 목적도 매우 다양합니다.
체류자 수 상위 15개국만 살펴볼까요? 중국, 베트남, 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몽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일본, 미얀마, 캐나다 등입 니다. 체류 자격은 재외동포(대부분 중국)와 취업(외국인 노동자)이 가장 많고, 유학과 결혼 이민이 뒤를 잇습니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도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세계화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급격한 변화입니다.
“친절하지만 언어 장벽·차별도” 이주민이 본 한국 민낯

이 가운데 최근 국민일보가 보도한 이주민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 입니다. 문화강국 한국을 찾아온 이주민은 "한국인은 놀랄 만큼 친절하지만, 외국어 서비스가 아쉽다"고 말했지만, 뿌리 산업에 일하러 온 이주민은 여전히 ‘이 새끼’ ‘빨리빨리’ 같은 한국말을 가장 먼저 배우고 있었습니다.
이주민들이 보는 한국은 이들이 한국에 온 목적과 배경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그들의 비자가 한국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는 ‘과도기’인 격이었습니다. 이들의 말 속에서는 인구소멸의 불똥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주민을 포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가 드러났습니다.
이주민들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교류가 점점 잦아진 결과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세계 청년이 선망하는 콘텐츠를 가진 나라였고, 개발도상국 시민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경제 강국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비자로 한국에 머무는 이들에게 "어떡하면 한국에 외국인들이 더욱 많이 찾아와 머물겠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이주민들은 한국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행정·문화 지원을 강화하고, 더 쉽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로 숨 가쁜 한국"

한국을 찾은 네팔인 노동자 중 상당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네팔 노동자교회’에서 신앙의 첫발을 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다른 용건 때문에 찾아옵니다. 이 교회의 이종만 목사는 "밀린 월급을 받아 달라고 교회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이 교회 예배당에서 만난 샤라다 까르끼(25)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까르끼는 지난해 비전문취업비자(E-9)로 한국에 와 호박과 고추,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강원도 홍천의 한 농장에 취업했습니다.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임금(월 210만원)이 만족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까르끼는 "친척의 소개로 한국을 알게 됐는데 일은 힘들어도 벌이가 괜찮아 한국에 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네팔의 서점에서 일할 땐 벌이가 한국에서의 반의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까르끼는 한국에서 비자 체류 기간(약 10년)을 꽉 채워 일한 후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집도 짓고 병원비도 낼 만큼 돈을 모은 후 여기에서 배운 기술로 고향에 농장을 차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카트만두 서쪽에 있는 그녀의 고향 ‘팔파’는 전통의상 ‘디카토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풍족한 지역은 아닙니다. 까르끼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그러졌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반년 동안 제때 받지 못한 임금이 350만원에 달했습니다.
이 목사가 체불임금을 받아줬지만, 까르끼는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머무르던 ‘컨테이너 기숙사’에서도 나와야 했습니다. 임금 체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폭언도 있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툰 까르끼는 ‘새끼’라는 한국말만은 명확하게 발음했습니다. 그 외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치토치토(빨리빨리)"라고 말했습니다. 단 기간에 과중한 업무가 몰리곤 하는 농장업무의 특성이 단어에도 녹아 있었습니다.
네팔 노동자들에게 한국 이주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까르끼를 비롯한 많은 네팔인이 이런 이유 때문에 일터를 떠나 교회나 교회가 제공한 숙소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곤 합니다. 최근에도 10명 안팎의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비자 발급과 유지의 어려움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까르끼는 "앞으로는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 전문 기술이 있는 쪽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외국인 수용성..

한국 생활 6년 차인 네덜란드인 아이고바트(31)은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여행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2019년 6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후 결혼 비자(F-6)를 발급받아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을 ‘세계 속의 도시’라고 했습니다. 빠른 변화가 한국의 특징이라 했습니다.
아이고바트은 "10년 전엔 아무도 한국을 몰랐지만, 요즘은 한국을 다 알지 않느냐"며 "내가 이곳에서 그 변화의 일부가 되는 게 재밌다"고 말했습니다. 게누그텐은 2014년 성균관대 어학당을 3개월간 다니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거리에는 10년 전보다 많은 외국인이 보이고, 새로운 외국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며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외국인들과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고바트은 한국의 외국인 수용도가 높진 않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관공서나 은행, 통신사 등 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곳들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접근성이 낮았다는 아쉬움입니다. 특히 웹사이트를 영어로 이용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서류를 작성하려 할 때, 허용된 공란은 그의 이름보다 짧았습니다. 예금과 보험에 가입할 때 단순히 이름을 기입하기 위해 직접 기관을 방문해야 했던 경험이 여러 차례입니다. 그는 "온라인으로는 안 되니 무조건 사무실을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고바트은 외국인을 환영하고 개방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보다 실질적으로는 일자리 접근성이 높아졌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고바트은 "외국인들이 (사회에) 통합되거나 이민을 오거나 일자리를 얻는 것을 쉽게 만들면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주민과 동행’ 말뿐… 여전히 얕보고 곁눈질

실제 한국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요? 여전히 국적, 피부색, 신분과 직업에 따른 편견과 차별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줄임말인 ‘외노자’는 온라인 공간에서 경멸하는 명칭으로 쓰입니다. 흑형(흑인), 짱깨(중국인), 똥남아(동남아시아), 개슬람(아랍·이슬람권) 등 외국인 노동자의 출신국이나 외모, 종교 등을 노골적으로 낮춰보는 혐오 표현도 거침이 없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제조업과 농축산, 어업 등 기초 산업 분야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도 그렇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니로샨은 한국에서 12년을 일한 ‘용접의 달인’이지만 "10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인 "나의 두 번째 나라" 한국에서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을 단지 ‘돈 벌러 온 빈곤국 사람’,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밖으로 빼돌리는 집단’으로만 여긴다면, 이주노동자들도 실제로 한국사회를 그렇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받으며 ‘노예 계약’으로 불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들 상당수는 본국에서는 상당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 인력이기도 합니다. 경제 논리로만 봐도 서로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외국인 이주자들에게 충분히 품을 내어줄 정도로 발전하고 성숙한 나라가 됐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처우와 복리를 적극 개선하는 것, 나아가 최소한 체류기간 동안이라도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생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