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남편이랑 연락 안돼서 시청에 갔더니 "이혼 도장이 찍혀있었다는" 여배우

1978년 데뷔, 화려한 전성기와 인생의 굴곡

정애리는 1959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나 1978년 KBS 5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0대 시절부터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1980년대에는 ‘사랑과 진실’, ‘제1공화국’, ‘배반의 장미’ 등 김수현 작가와의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인기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MBC 연기대상 TV부문 최우수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며 3세대 트로이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첫 번째 결혼과 갑작스러운 이혼—구청에서 알게 된 충격

1985년, 인기 절정의 시기에 첫 번째 결혼을 선택한 정애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잠시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 실패 후 연락이 점점 끊기기 시작했고,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주변을 통해 남편이 미국에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공식적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딸과 함께 구청에 방문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혼이 이미 처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혼 신고가 직권으로 기재된 것이었고, 정애리는 충격과 허탈함을 동시에 겪었다. 이후 친권과 양육권은 정애리에게 돌아갔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야 했다.

두 번째 결혼과 재이혼—어머니의 간절한 권유

오랜 시간 홀로 딸을 키우던 정애리는 2011년 ‘민들레영토’ 창립자인 지승룡 대표와 재혼했다. 하지만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로 3년 만에 다시 이혼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애리는 어머니로부터 “네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 조심스럽지만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전, 딸의 행복을 위해 용기를 내어 이혼을 권했다. 정애리는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아셨던 것 같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조언이 가슴에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건강 위기—복막염과 난소암, 그리고 극복

두 번째 이혼 이후에도 정애리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2016년, 갑작스러운 복막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던 중 산부인과 진료에서 난소암 1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2기로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정애리는 즉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병행했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질 정도로 힘든 항암 과정을 견뎌냈고, 단백질 섭취 등 건강 관리에 집중하며 결국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경험을 통해 정애리는 건강의 소중함과 삶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배우로서의 꾸준한 활동—‘국민 양어머니’의 길

정애리는 개인적인 시련 속에서도 연기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유혹’, ‘웃어라 동해야’, ‘SKY 캐슬’, ‘내사랑 치유기’, ‘사랑의 불시착’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깊이 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빛냈다. 특히 ‘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 등에서 보여준 양어머니 역할로 ‘국민 양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까지도 ‘마우스’, ‘설강화’, ‘이로운 사기’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중견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봉사와 사회 활동—나눔의 아이콘

정애리는 연기 외에도 봉사와 사회 공헌에 힘써왔다. 월드비전 친선대사, 연탄은행, 국제구호단체 ‘더 투게더’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매달 1,000만 원 수준의 정기 후원과 300명의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간증 프로그램 MC, 라디오 진행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딸과의 유대, 그리고 삶의 원동력

정애리는 첫 번째 이혼 후 딸을 홀로 키우며 모녀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쌓았다. “내 딸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밝히며,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된 후 아버지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애리는 “이제 와서 아이가 아빠로 인해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중견 배우의 품격

정애리는 40년이 넘는 연기 경력 동안 선역과 악역,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캐릭터를 소화해왔다. 미모와 인기에 의존하는 배우에서 벗어나, 경험과 연기력으로 중견 배우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책 출간, 전통차 브랜드 모델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FAQ

Q1. 정애리는 첫 번째 이혼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A1. 남편의 연락 두절 후, 딸과 함께 구청에 방문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혼이 이미 처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서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Q2. 두 번째 이혼 과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A2.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오기 전, 딸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이혼을 권유했습니다.

Q3. 정애리가 겪은 건강상의 위기는 무엇이었나요?

A3. 2016년 복막염으로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 난소암 1기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Q4. 정애리는 연기 외에 어떤 사회 활동을 하고 있나요?

A4. 월드비전 친선대사, 연탄은행, 국제구호단체 이사장 등으로 봉사와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간증 프로그램 MC, 라디오 진행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