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여행 작가가 안내하는 지구와 그 너머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현재까지 이번 세기에 가장 사랑받은 과학 대중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저자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2003년 첫 출간 이후의 과학적 성과를 반영해 여러 부분을 업데이트한 덕에 ‘2.0’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적 골격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 책의 성격과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각 부와 챕터의 구성은 순서와 제목까지 동일하다. 심지어 본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도 같다. 역자 또한 동일한데, 문장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더 매끄럽고 읽기 쉬워졌다고 느낄 독자가 많을 성싶다.
![카시니 탐사선이 촬영해 NASA가 2006년 제공한 이미지. 토성의 많은 위성 중에 에피메테우스와 스모그로 뒤덮인 타이탄, 그리고 토성의 A고리와 F고리가 보인다. [AP=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10/joongangsunday/20260110002204540qkre.jpg)
저자 빌 브라이슨은 개정판의 영문 원서가 출간된 지난해 10월, 영국 언론 가디언 인터뷰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변화를 묻는 질문에 ‘태양계 내 위성 숫자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점’을 꼽았다. 대중적이고 소박한 시야를 잊지 않은 셈이다.
그는 미국 중서부에서 자라 영국에서 기자로 경력을 쌓은 여행기 작가이다. 그의 20여 권 책 중 과학 관련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바디: 우리 몸 안내서』뿐. 나머지는 대부분 여행기이며, 출세작은 1995년 출간한 『발칙한 영국 산책』(Notes from a Small Island)이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미덕은 저자가 본질적으로 탁월한 여행기 작가라는 데서 나온다. 자기가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중년이 되어서야 깨달은 그는, 이것저것 묻고,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지?”란 질문을 통해 이해와 공감을 추구하는 글을 쓰고자 했다고 한다. 이 책의 글은 그의 여행기들처럼 활기차고 엉뚱하며, 친근하고 유머러스하다.
우주와 지구, 생물을 하나로 엮어 보여주면서도 역사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19세기 중엽 저술한 『코스모스』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계보를 잇는 셈이다. 한데 이 책을 엄밀한 학술서나 진지한 역사서로 읽는 건 적절치 않다. 유머러스한 미국 여행기에 미국 사회에 대한 학술적 분석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브라이슨의 강점은 과학을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본 경험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데 있다. 대중서를 쓰는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의 모른 채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분야의 최고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배우고, 그들의 설명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확인을 거듭하는 저자의 방식은 독자를 대신해 지적 여행의 고된 작업을 수행한 셈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답변을 얻어내는 대목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즐겁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의아한 서술도 눈에 띈다. 행성 개념이 정착 중이던 19세기 전반에는 세레스(Ceres)도 엄연한 행성으로 취급받았으며, 원시 지구가 대충돌을 겪어 달이 형성되는 사건은 몇 주가 아니라 며칠, 어쩌면 수십 시간 만에 벌어졌다. 그럼에도, ‘과학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경험을 이토록 폭넓게 제공하는 책은 쉽게 찾기 힘들다. 원판과 2.0판을 대조해보는 독서 모임을 가져봐도 즐겁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관수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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