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안돼 투잡,쓰리잡 뛰는 상인들…'공실폭탄' 동대문이 죽어간다
[땅집고]“저녁 10시가 되면 근처 식당으로 알바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쇼핑몰로 다시 나와요. 그렇게 안 하면 생활이 안 되는데 어쩌겠어요.” (동대문 밀리오레 상인 김모씨)
지난 15일 찾은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복합 쇼핑몰. 지상 7층까지 상가로 운영 중인 밀리오레는 3층 위로는 공실률이 50%가 넘는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공실률은 더 높아진다. 6층 상가의 경우, 점포 216곳 중 5곳 만이 영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 15곳은 문을 열었지만 종업원이 없다. 밀리오레 상인 윤모씨는 “투잡, 쓰리잡 뛰러간 사람들이 가게 불만 켜놓은 것이다”며 “코로나 전에는 점포가 70% 차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지금은 10~20% 빼고 공실이다”고 했다.
일부 점포에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같은 층 대부분이 공실이라 찾는 손님이 없다. 그나마 영업이 잘 되는 건물 1~2층 의류매장도 곳곳이 비어 있다. 1층 점포를 제외한 대부분 점포가 월 임대료가 없는 ‘렌트프리’임에도 상가는 텅 비었다. 한 구좌당 약 25만원의 관리비를 점주가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해도 들어오려는 임차인이 없다. 밀리오레 복합상가 점포 가치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점포 80%가 공실…에스컬레이터 운행도 중단”
국내 패션 1번지인 동대문 쇼핑몰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내국인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쇼핑몰로 바뀐 데 이어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밀리오레, APM, 굿모닝시티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집합상가 기준으로 서울 도심권에선 동대문 일대 공실률이 12.1%로 가장 높다. 남대문 일대 집합상가 공실률(1.7%)과 비교하면 7배 이상이다. 최근 코로나 엔데믹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동대문을 찾는 관광객은 과거보다 현저히 줄었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더 이상 동대문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의류 SPA 브랜드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박정수(29) 씨는 “10년 전에는 여기서 옷을 샀지만, 이제는 외국인을 제외하면 찾는 사람이 없다”며 “가격 대비 품질이 좋지도 못하고 굳이 찾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동대문 의류산업 생태계 붕괴 직전…“상권 활성화 대책 시급”
굿모닝시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건물 전체 공실률이 8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1층에도 공실이 많고 2층부터는 아예 불이 꺼져 있다. 에스컬레이터도 작동이 안돼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2020년부터 3년째 운행을 중단했다. 대형 쇼핑몰에서 에스컬레이터 옆 상가는 ‘목 좋은 입지’로 알려졌지만, 이곳 만큼은 예외다. 운행을 멈춘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손님은 1시간에 두 명 뿐이었다. 굿모닝시티 의류 상인 이모씨는 “에스컬레이터가 꺼진 지 3년이 지났지만 관리비는 하나도 안 낮춰준다”며 “영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다.
‘K패션’의 성장을 이끈 동대문 의류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엔데믹 이후 동대문 상권회복 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의류를 중심으로 한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면서 패션타운이 밀집한 동대문 상권이 외국인과 일부 내국인 수요로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밀리오레와 같은 테마 상가 트렌드는 완전히 철이 지났다. 지방에 있는 밀리오레도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다”면서 “동대문패션타운에만 31개 상가, 2만5000여 도소매 점포가 있어 동대문 상인들의 생존이 달린 상권 활성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