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다구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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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다구리란 말로 요약하겠다." 혁신위원장 윤희숙이 국민의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 요즘은 아예 인용부호를 떼고도 쓰이는 내로남불처럼, 다구리도 표준어에 준하는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다구리'가 작은 따옴표를 탈출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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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다구리란 말로 요약하겠다.” 혁신위원장 윤희숙이 국민의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이 알지만 공식석상에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전문용어(?)가 신문 제목으로 뽑혔다. 다구리는 ‘뭇매’를 뜻하는 속어. 동사 ‘치다’ 혹은 ‘놓다’와 결합해 여러 명이 비정상적으로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폭력을 가할 때 쓰인다. 이 단어를 종종 듣거나 썼던 입장에선, ‘드디어’라는 감개무량과 ‘진짜 써도 되나’ 하는 격세지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 어원을 알긴 어렵다. 다만 용례를 찾으려 뉴스 검색을 해 봤다. 1981년 동아일보의 교도소 관련 기사에 다구리가 ‘단속에 걸리다’는 뜻의 은어로 소개됐다. 1982년 박범신의 조선일보 연재소설 ‘태양제’에선 폭력 두목의 폭행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당시엔 ‘적발’과 ‘몰매’의 의미가 혼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청소년 은어를 다루는 사회부 기사, 게임 장면 속 다중 격투를 소개하는 기사 등에서 간간이 쓰였다. 그러다 윤희숙에 이르러 음지를 탈출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한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일물일어설)고 했다. 그 개념을 차용하면 윤희숙의 단어 선택은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다. 다구리의 뉘앙스는 ‘뭇매’와 ‘몰매’ 이상이다. 정당한 대결에서 못 이기니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비겁, 정공법으로 승기를 못 잡으니 암수·기습을 감행하는 비열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익명의 다수에게 ‘다구리’ 당해 차례로 축출 혹은 무장해제 당했던 이 당의 개혁파 대표·비대위원장의 수난사를 떠올리게 한다.
□ 요즘은 아예 인용부호를 떼고도 쓰이는 내로남불처럼, 다구리도 표준어에 준하는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다구리’가 작은 따옴표를 탈출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금과 같다면 다구리는 꽤 오래 이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남을 것 같다. 정당 이름에 멸칭이 붙으면, 그걸 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국민의힘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차떼기’를 탈출하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면 된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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