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올리브영 1위를 지킨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의 이야기
뷰티 브랜드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곳들이 많죠. 제가 아이소이를 대단하게 보는 건 꾸준함 때문입니다. 2009년 태어나서 15년 동안 한 번도 뒷걸음질 치지 않고 성장했어요.
연 매출 550억원(2023년 기준). 화장품 대기업과 비교하면 크지 않아요. 하지만 강력한 스테디셀러 제품이 있습니다. 아이소이의 ‘블레미쉬 케어 업 세럼(잡티 세럼)’. 2011년부터 지금까지 올리브영 세럼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누적 매출액도 세럼 1위입니다.
이 브랜드를 만들고 키운 이진민 대표. 카피라이터 출신입니다. 금강기획(현 이노션)과 제일기획을 거쳤어요.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애니콜 카피로 30대 중반 제일기획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이틀을 달았죠. 2000년엔 “선영아, 사랑해”라는 카피로 유명한 마이클럽을 이끌기도 했고요.
광고인은 어떻게 화장품 회사 대표가 됐을까요. 어떻게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왔을까요. 서울 논현동 아이소이 사옥으로 이진민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Chapter 1. 감각은 체력에서, 촉은 현장에서 오는 것
이진민 대표를 여기까지 오게 한 힘, 출발은 오기였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반장 선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건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남학생에게 반장 배지를 줬대요.
음각된 부반장 배지의 ‘부副’ 자를 어린 이진민은 크레용으로 메웠습니다.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그때부터 시작됐어요. 아버지는 그런 그를 격려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당당하게 살면 된다”면서요.
직장을 선택할 때 기준은 세 가지였대요. 누군가를 보조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세월이 갈수록 멋있어지는 일을 하겠다. 남녀 차별 없이, 일로만 승부하는 곳에 가겠다.
금강기획과 제일기획. 그는 인정받는 카피라이터였어요. 삼성카메라 케녹스 광고로 런던 광고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금사자상을 타기도 했죠.
물었습니다. 창의적인 카피를 뽑는 감각은 어디에서 오냐고요. 그는 “내가 타고난 건 체력”이라며 웃더군요. 자신은 ‘농업적 근면성’으로 카피를 쓰는 사람이었다면서요.
“천재성 있는 사람들이 물론 있어요. 하지만 오래 가진 못하는 것 같아요. 매번 번뜩일 순 없으니까요. 반대로 성실한 사람은 매번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어요.”
그는 공부를 많이 했대요. 이진민 대표가 일을 시작한 건 1986년. 광고 회사라고 남녀 차별이 없었을까요. 자기 카피를 설득하려면, 완벽한 이론과 탄탄한 조사가 필요했대요.
여자 후배들과 스터디 모임을 했어요. 월급을 털어 광어회를 사면서요. 일본 광고를 번역하고, 광고회사 오리콤의 잡지를 돌려봤지요.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대요.
“여자는 설득할 수 없으면 바보가 돼. 어떤 카피를 쓰던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돼. 작더라도 진짜 보석을 만들자.”
카피를 쓰는 또 하나의 비결, 현장입니다. 휴대전화 광고를 맡으면 용산전자상가를, 용인의 아파트 분양 광고를 맡으면 그 인근 부동산을, 지칠 때까지 누볐어요.
“소비자와 상인의 언어로 들어야 해요. 사람들은 어떤 휴대폰을 사고 싶어 하는지,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아파트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휴대폰이 좋으냐고 묻는 그에게 한 상인이 말했대요. “그래도 한국에선 한국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겠냐”고요. 그때 떠올랐대요. ‘한국 지형은 70%가 산지’라던 교과서의 배움 말이에요.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카피가 탄생한 순간이었죠.
“카피를 뽑으려면 그 제품을 모조리 이해해야 해요. 자외선차단제를 홍보한다고 해볼까요? 자외선은 왜 나쁜가부터 자외선 차단이 어떻게 가능한지, 소비자는 어떤 생각으로 자외선 차단체를 고르는지까지 다 조사해야 해요.”
꼼꼼한 조사 뒤엔 영감의 시간입니다. 이진민 대표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들려줬어요.
“엄청나게 조사를 하고 나서 일부러 딱 잊어버려요. 잊어버리고 완전히 상관없는 책을 집어서 읽어요. 그러면 막 떠오르듯이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어요. 제 고민과 연결되는데, 완전히 참신한 단어들이요. 그 단어들을 조합하면, 낯설면서도 핵심을 꿰뚫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Chapter 2. 천연 화장품 시장을 독일에서 발견하다
사업의 촉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현장에서 얻은 확신입니다.
아이소이의 역사엔 세 번의 중요한 결정이 있더군요. ‘천연 화장품’을 만들기로 한 것, 자사몰을 주요 판매 채널로 삼은 것, 그리고 올리브영에 입점한 것. 이 모든 주요 결정 뒤엔 ‘현장의 확신’이 있었어요.
천연 화장품 시장을 발견한 것도 그랬습니다.
지금에야 화장품 유해 성분에 모두가 민감하죠. 아이소이가 태어난 2009년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화장품 성분 분석 앱 ‘화해’가 시작된 게 2013년. 그보다 4년이나 먼저 태어났으니까요.
이 대표가 이 시장에 눈 뜬 건, 자신의 피부 때문이었어요. 여드름을 가라앉히려고 오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랐대요. 모세혈관 확장증과 아토피에 걸렸죠. 물만 닿아도 아팠고, 진물까지 났어요.
지인의 추천으로 한 독일 화장품을 알게 됐습니다. 불가리아 장미 오일이 들어간 제품이었죠. 그걸 바르니 얼굴이 진정됐고, 이 대표의 공부 본능이 시작됐대요.
독일과 이탈리아의 화장품 박람회를 돌아다녔습니다. 10년 동안 독일 제품을 수입하며 성분을 공부했고요. 불가리아 장미 오일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직접 봤어요. 꽃잎을 물과 함께 증류한 뒤 잠시 냉각하고 또 한 번 증류. 장미꽃 3000송이에서 1g의 오일이 추출됩니다.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건, 확신이 생겨서예요. 자신만큼이나 피부가 민감한 이들이 많다는 걸 독일 화장품을 수입하며 알게 된 거죠.
“저는 늘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광고 일을 그만두고 ‘마이클럽’에 간 것도 그게 여성 포털이기 때문이었어요. 아이소이를 낼 땐, 천연 화장품이 꼭 여성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아이소이. 성분을 내세우며 광고를 시작했어요. 잡지와 신문 지면에 한가득 성분만 적어넣었죠. 펄 파우더가 유행이던 당시의 화장품 시장에선 파격적인 광고였어요.
Chapter 3.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자사몰이 필요하다
아이소이는 런칭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탄탄한 이익 구조는 자사몰에서 나와요. D2C(Direct to Consumers)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아이소이는 자사몰을 통해 직접 소비자를 만나왔습니다.
이진민 대표가 D2C의 매력을 발견한 건 마이클럽 시절입니다. 여성 포털을 표방했던 마이클럽, “선영아, 사랑해”로 방문자가 폭주하기 시작했어요. 트래픽은 올라가는데 매출 낼 모델은 없었죠.
투자 유치를 위해선 매출이 필요했던 이 대표, 제품을 팔아보기 시작했어요. 남대문에서 가방이며 귀걸이를 떼어다 온라인에서 판 거예요. 첫 달에 1억5000만원 매출을 낼 정도로 장사가 잘됐대요.
“깜짝 놀랐어요. 원가하고 택배비를 빼면 나머지가 다 마진이더라고요. 유통 수수료가 거의 들지 않는 채널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알게 된 거죠.”
원가 높은 불가리아 장미 오일을 제품에 넣은 것도 D2C 덕분입니다. 유통 수수료를 줄이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시중엔 쇼핑몰 솔루션이 많습니다. 템플릿을 고르고 콘텐츠를 채우면, 쇼핑몰이 뚝딱 만들어져요. 그런데 아이소이는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합니다. 게임 회사 출신의 CTO를 영입해 가면서요. 메시지를 전하려면, 그 쇼핑몰만의 특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큰 길 백화점이라고 생각해 볼까요? 자사몰은 골목을 걷다 만나는 작은 소호 가게 같은 거예요. 그 가게만의 개성이 묻어나야 하죠. 그러려면 쇼핑몰 솔루션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소이의 자사몰. 조금 다르긴 합니다. 지금도 들어가면 ‘민낯을 드러내자’ 캠페인이 전체 화면을 뒤덮고 있습니다. 판매 페이지는 탭을 눌러야 진입할 수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홍보와 판매가 반반쯤인 것 같아요. 브랜드 초기엔 메시지가 70% 이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알리는 게 판매보다 더 중요해요. 그래야 계속해서 자사몰의 메시지를 보려고 고객들이 들어오니까요.”
Chapter 4. 올리브영, 미디어로서의 잠재력을 알아보다
아이소이가 연 매출 5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한 것. 올리브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2011년 올리브영에 입점한 아이소이. 그야말로 올리브영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줄곧 올리브영 세럼 부문 1위를 놓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모든 화장품 브랜드가 올리브영 입점을 갈망하죠. 2011년의 올리브영은 그렇지 않았어요. 전국 매장이 갓 100개를 넘었죠. 당시엔 백화점이 화장품의 최고 유통 채널이었어요.
이진민 대표. 2011년에 올리브영 담당 MD를 만나고 가능성을 느꼈대요. MD가 천연 화장품의 잠재력을 제대로 읽어내고 있었다는 거죠. 그 MD가 지금의 이선정 올리브영 대표입니다.
올리브영에서 1위를 지킨다는 것. 적잖은 프로모션이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소이는 올리브영을 통한 홍보 비용만은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광고 채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올리브영은 미디어예요. 화장품에 관심 많은 타깃들에게 우리 제품을 잘 보여주고, 설명까지 해줘요. 훌륭한 광고 채널이죠.”
올리브영 판매로 이익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대신 따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 않아요. 전국 티퍼런스 매장 두 곳에서 아이소이를 판매할 뿐입니다. 이 회사의 임차료가 2018년 3억9600만원에서 2022년 3억원으로 오히려 하락한 것도 그래서예요.
꾸준하게 여성들을 위해
긍정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아이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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