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의 아버지'의 놀라운 실제 삶, 보자마자 놀란 이유

[리뷰:포테이토 지수 83%] 구원자이자 파괴자, 끝없는 연쇄반응 겪는 '오펜하이머'

세상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파괴자.

구원자가 어떻게 파괴자가 되고, 파괴자가 어떻게 구원자가 될까. 그것이 오펜하이머라면 이제 납득이 될 것이다.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불을 훔쳐 인류에게 불의 이점과 해악을 안긴 프로메테우스는 이후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인류에게 핵을 가져다준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시키고 핵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했지만, 핵 전쟁의 위험을 안겼다. 그는 1950년대 미국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광풍의 희생양이 되며 고통을 겪었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의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토대로 하는 영화 '오펜하이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년~1967년)의 삶을 다룬다.

시·공간을 새롭게 엮으며 '플롯의 마술사'라는 수식어로 매 작품 압도적인 연출력을 선보였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20세기 가장 문제적 인물로 손꼽히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연대기를 영화 역사상 최초 흑백 IMAX 카메라 촬영, '제로 CG'로 완성, 이번에도 '영화적 경험'을 안긴다.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오펜하이머'는 뜻밖의 곳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바로 2011년 방송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낭독한 독후감 때문이었다.

당시 하하는 책 초반부에 나온 그의 가정사와 학력 등을 언급한 뒤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를 반복했고, 이 영상은 영화 개봉과 맞물려 꾸준히 소환되며 마치 유행어처럼 소비됐다. 2023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하하는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를 말할 수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내놓는 12번째 장편 영화다.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극 중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을 위해 진행되었던 비밀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물리학자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영국과 독일 등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로 하여금 독일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안기며 맨해튼 프로젝트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펜하이머는 핵실험이 끝난 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해 말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고 말이다.

영화는 18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선택과 딜레마를 복잡하게 얽힌 상황과 인물 그리고 다양한 상징으로 그려냈다.

오펜하이머의 시점은 컬러로, 미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AEC) 창립 위원이자 오펜하이머와 대립을 이루는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회고는 흑백으로 펼쳐지는 연출은 새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루이스 스트로스를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핵분열의 연쇄반응은 원자폭탄의 원리가 된다. 내면의 수많은 분열을 겪으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개발 후에도 끝없는 내면의 연쇄반응을 겪는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고,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영웅이 됐다. 미국 정부에게 "최고의 패"를 준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으로 "모든 전쟁이 종식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의 참상은 그를 핵무기 회의론자로 돌아서게 만든다.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 나선 미국은 강력한 수소 폭탄을 개발하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이를 막고자 했으나,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으며 원자력에너지위원회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다. 불법 도청과 사찰 등으로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20세기 프로메테우스 그 자체다.

'오펜하이머'는 '제로 CG' 프로덕션을 통해 장면 하나하나에 사실감을 더했다.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다크나이트' 3부작은 물론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 수많은 수작(秀作)을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역사가 스포'인 인물을 예측 불가한 전개와 구성으로 엮으며 다시 한번 놀라운 '놀란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다만 오펜하이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거나 매카시즘 등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기 벅찰 수 있다.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인 킬리언 머피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군축의 아버지(군비를 팽창하지 않고 축소하는 일)로 일컬어지는, 모순과 딜레마로 가득 찼지만 인간적인 오펜하이머의 서사를 깊고 무해한 눈빛으로 납득시킨다.

아이언맨 슈트를 벗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일그러진 내면을 소름 돋게 표현한다.

실제 변덕과 자기주장이 강했다고 알려진 오펜하이머 아내 키티는 에밀리 블런트가 맡았다. 오펜하이머를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그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독특한 매력이 돋보인다.

이 밖에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케이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데인 드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이 즐겁다.

키티 오펜하이머 역의 에밀리 블런트.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