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조용한 생존경쟁의 비밀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하라”

잡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잡초들은 각각의 전략에 적합한 자신 있는 장소에서 살아간다. 예를 들어 발길에 자주 밟히는 장소에는 밟히는 데 자신 있는 잡초가 산다. 그리고 밟히는 과정을 통해 번식의 목적을 이룬다. 또 풀베기를 당하는 장소에서는 풀베기에 자신 있는 잡초가 자란다. 풀베기를 당하면서 자신의 씨앗을 퍼트린다는 목적을 이룬다. 그리고 위로 뻗을 수 없다면 누워 뻗으며 자란다. 혼자 할 수 없을 때는 조력자를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까지 있다. 즉, 잡초는 그 수만큼 다양한 전략을 펼치며 존재한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이 아니어도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 쉽사리 눈에 띄는 초록 식물들이 있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들도 있고, 여름이면 더 울창해지는 나무도 있지만 어느 건물 구석진 곳이나 아스팔트 틈 사이에도 초록을 빛내며 피어난 식물, 바로 잡초다.
사람들은 흔히 쓸모없는 것을 비유할 때 잡초 같다고 한다. 그런데 그 쓸모의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그저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게 아닐까? 잡초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 하나의 식물 종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아주 쉽게 자라는 풀도 아니다.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당당함을 갖춘 것이 바로 ‘잡초’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을
기회로 바꾼다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다. 그가 식물 연구에 들인 노력과 시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최근 저서 《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들의 전략》(나무생각 刊)에서 잡초를 신비한 식물이라고 평한다. 잡초는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길가나 공원, 논밭 등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생명체가 소멸하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건 당연한 현상이 아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그런 잡초들의 생명력에 주목했다. 그리고 잡초들이 사는 환경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잡초가 사는 장소는 언제 밟힐지 알 수 없고, 또 언제 뽑혀 나갈지도 모르는 곳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제초제가 뿌려질 수도 있고, 기계에 의해 잘려 나갈 수도 있다. 인간의 입장이라면 이런 안전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잡초는 그런 혹독한 환경을 오히려 즐긴다. 아니,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그런 환경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화려하게 살아남는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는 잡초의 입장에서 황금 같은 기회였다.

테스트를 통과한 벌에게만
꿀을 준다

사람들은 대개 개미를 하찮은 존재로 보지만 사실 개미는 곤충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개미들이 집단으로 공격하면 어떤 곤충도 당해낼 수 없다. 그런 개미가 먹이 저장소로 접근하는 곤충들을 닥치는 대로 쫓아내 결과적으로 살갈퀴 근처에는 해충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살갈퀴는 달콤한 꿀을 미끼로 해서 개미를 ‘보디가드’로 고용한 셈이다.

광대나물의 꽃은 옆으로 피어 위쪽 꽃잎이 꽃을 숨기듯 가리고 있다. 그리고 아래쪽 꽃잎에는 둥근 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무늬가 테스트다. 이 무늬는 “여기로 오세요”라는 사인이다. 이쪽으로 가면 벌은 옆을 향해 피어 있는 꽃 속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리나 등에는 광대나물의 꽃 위쪽에 앉는다. 그리고 꽃의 입구를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떠나버린다. ‘옆을 향해 핀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른 곤충을 배제하는 것이다.

벌의 활동이 우수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벌은 다른 곤충보다 머리가 좋고 꽃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은 식물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녀도 같은 종류의 꽃을 오가지 않으면 식물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광대나물의 꽃가루가 민들레에 운반된다면 씨앗은 만들어질 수 없고, 제비꽃의 꽃가루가 광대나물에 운반되어도 역시 후손을 남길 수는 없다. 같은 종류의 꽃을 돌아다니는 벌은 광대나물의 입장에서 매우 고마운 존재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도
강인하게 적응

바랭이는 줄기가 쉽게 찢긴다.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에 마디가 있다. 이 마디마다 새로운 뿌리와 새로운 싹이 나온다. 바랭이를 낫으로 베어낸 뒤 잘린 줄기를 방치하면, 거기서 바랭이는 다시 자라난다. 경작을 당하거나 잘려도 살아남아 증식하는 바랭이는 잡초 중에서도 변화를 이겨내는 강인함이 매우 뛰어나다.
저자는 “땅이 갈리거나 풀을 베는 행위가 이뤄지는 밭은 잡초 입장에서도 위험한 환경”이라며 “밭에서 사는 잡초는 사실 잡초 중에서도 선택받은 엘리트”라고 했다.

질경이는 사람에게 밟히기 쉬운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질경이의 씨앗은 비가 내려 물에 젖으면 점액질을 내어 바닥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사람이 그 위를 지나면 씨앗이 신발 바닥으로 옮겨 달라붙는다. 민들레의 씨앗이 바람에 운반되듯이, 질경이의 씨앗은 사람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신발에 달라붙은 씨앗이 이동하다 떨어지는 장소 역시 사람에게 밟히기 쉬운 장소다. 이런 식으로 질경이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분포한다. 아마도 길에 자라난 질경이들은 모두 밟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생존 비법

잡초는 ‘밟혀도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잡초 같은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라고 말하며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잡초의 실제 모습은 다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유일한 목표는 생존이다. 생존해서 자손을 퍼트려 멸종하지 않는 것이다. 잡초야말로 그 본능에 가장 충실한 생물이다. 누군가 잡초는 밟아도 밟아도 일어선다고 했다. 하지만 잡초도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생존에 불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잡초는 환경에 최대한 전략적으로 적응하는 아주 똑똑한 식물이다. 잡초의 기본 전략은 이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곤란과 역경을 도움이 되도록 바꾼다. 잡초 입장에서 역경은 기회다.

현대사회는 사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시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변화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잡초는 오히려 그런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기회로 바꾸어 성공하고 있다.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들의 전략 | 이나가키 히데히로 | 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