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명사 인텔, M&A 먹잇감 전락...AI 대응 실패가 최대 패착

송경재 2024. 9. 2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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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라의 인텔 본사 앞에서 지난달 1일(현지시간) 직원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한때 반도체 대명사였던 인텔은 거듭된 경영전략 실패 속에 이제 인수합병(M&A) 먹잇감을 전락했다. 신화 연합

전 세계 거의 모든 PC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하며 한때 반도체의 대명사였던 인텔이 이제 인수합병(M&A) 먹잇감 신세가 됐다.

인텔은 20일(현지시간) 퀄컴으로부터 인수제안 타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사이 시가 총액이 3분의1 토막 난 인텔은 M&A 대상을 물색하던 반도체 업체에서 이제 다른 반도체 업체에 흡수될 운명이 됐다.

잇단 경영전략 패착과 인공지능(AI)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인텔을 나락으로 몰고 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 뚜껑에 못이 박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 소식통들을 인용해 최근 수 주일에 걸쳐 휴대폰 반도체 업체 퀄컴이 인텔에 M&A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56년 역사의 인텔이 퀄컴에 흡수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반도체 업계 베테랑 애널리스트인 CFRA 리서치의 앤젤로 지노는 “지난 2~3년 사이 AI 전환은 인텔의 관 뚜껑에 못을 박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평가했다.

지노는 “인텔은 (AI 시대에 적응할) 제대로 된 능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인텔은 팻 젤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지휘봉을 잡기 전부터 이미 쇠락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젤싱어가 막대한 비용이 드는 파운드리 전략을 내세우고, 이것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한차례 타격을 입었고,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에 두 번째 타격을 입으면서 비틀거리고 있다.

젤싱어는 막대한 돈이 드는 구조조정 전략을 추진했지만 AI를 내다보지 못해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그 후폭풍으로 인텔 주가는 닷컴 거품 붕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0년 초에 비해 70% 가까이 폭락했다.

같은 기간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는 18배 넘게 폭등했다.

세계 최고 기업이었지만…

인텔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던 기업이다.

인텔 CPU는 전 세계 거의 모든 PC와 서버에 쓰이며 시대를 풍미했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하청 생산으로 업계 구조가 변화하는 와중에도 설계와 생산을 병행하는 몇 안 되는 반도체 업체였고, 그러면서도 설계와 생산 양면에서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젤싱어가 지휘봉을 잡은 2021년 인텔의 이런 활력은 사라졌다. 인텔은 고밀도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아시아 경쟁사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인텔 최초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젤싱어는 인텔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어했다.

TSMC, 삼성전자 추격에 나섰고, 이들이 장악한 파운드리 시장에도 진출했다.

젤싱어는 취임 직후 글로벌파운드리스를 약 300억달러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했을 정도다.

결국 젤싱어는 파운드리 업체 타워반도체를 50억달러 넘게 주고 인수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중국 규제당국의 제지로 이마저도 무산됐다.

그는 지난주 자사 파운드리 부문도 분사를 선언했다. 파운드리 사업은 사실상 접은 것이다.

CPU에서 GPU로

인텔의 턴어라운드 전략은 시대도 잘 못 만났다.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중심이 CPU에서 그래픽반도체(GPU)로 이동한 것이다.

턴어라운드가 지지부진하고, 비용 부담이 높아지자 인텔은 2022년부터 직원 수천명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배당도 줄였다.

그래도 부족했다.

젤싱어는 지난달 1만5000명을 추가 감원하고, 내년에 100억달러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배당도 중단했다.

젤싱어는 “AI 붐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급속하다”면서 자신의 판단 실수를 시인했다.

너무 늦었는지도…

번스타인 리서치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인텔이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 기술이 성공하더라도 실제 턴어라운드가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곤은 인텔의 CPU 시장은 당분간 반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AI 반도체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CPU를 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텔의 턴어라운드 전략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인텔은 이 전략이 성과를 낼 때까지 먹고 살 방편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지금 턴어라운드 전략을 멈추기에도 이미 늦었을 수 있다고 비관했다.

한편 퀄컴이 인텔을 인수하면 휴대폰 반도체에서 PC, 서버용 반도체 등으로 사업 영역 확대가 가능하다.

다만 미국을 비롯해 각국 경쟁당국이 반독점을 이유로 합병을 가로막을 여지는 충분하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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