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 1억으로 올리면 이런 일 벌어집니다

예금자 보호한도가 1억 원으로 조만간 상향될 전망입니다. 한도를 5천만 원으로 정했던 2001년 이후 23년만의 한도 상향입니다. 법안이 시행되면 은행이 망하더라도 예금보험공사에서 1억 원까지 예금의 반환을 보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변화이기도 합니다. 흩어진 자산을 편리하게 관리할 수도 있고, 금융기관 선택의 폭도 넓어지죠. 뱅크런의 위험성도 감소하니 금융시장 안정에도 일부 기여할 전망입니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할까요?

예금자보호제도란?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기관의 파산 등으로 인한 예금의 지급불능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193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제도로, 한국에선 1995년 제도가 마련되어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능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본 구조는 보험입니다. 금융기관에선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설립된 예금보험공사에 예금보험료를 납부하고, 예금지급불능 시 예금보험공사가 피해를 입은 고객에게 금융기관 대신 예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을 ‘부보금융기관’이라고 하며, 은행·증권사·보험사·종합금융사·상호저축은행 등 5개 금융업권이 해당합니다. 현재 보호한도는 금융회사별로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해 5천만 원입니다.

이 한도의 상향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입니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으로 파산한 가운데, 국내에서 새마을금고까지 휘청이면서 보호한도 상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총선을 앞둔 여야가 공히 예금 보호한도 상향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고. 여야합의를 거쳐 사실상 통과가 확정됐습니다.

2001년 기준 지금까지… 상향 필요성 있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그 기준이 오래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5천만 원’ 기준은 2001년에 마련되었는데요,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23년에는 GDP(국내총생산)가 2.9배, 예금 규모는 5.3배로 늘었습니다.

금융소비자에겐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여러 금융기관에 나뉘어 있던 예금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죠. 가령 4~5억 원을 예금한 경우, 10여 개 금융기관에 일일이 나누어 예금해야 했으나, 이제는 5개 기관에 압축해서 관리하면 됩니다.

고금리 상품도 지금보다 맘 편히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저축은행도 은행별로 1억 원 까지 보장을 받을 수 있으니, 예금 금리가 낮은 시중은행을 떠나 제2금융권으로 떠나는 행렬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지난해 10월 금융위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예금보험제도 개선 검토안에 따르면 보호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할 경우,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이동하면서 저축은행 예금이 16~25% 가랑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다 되는데 굳이?’ 예보료 소비자 전가 우려도

다만 시장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마냥 반기는 기색은 아닙니다. 자금 이동으로 인한 금융 불안의 가능성과 함께 편익이 일부 예금자에게만 집중되는 반면 부담이 전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도 아닙니다. 금융위는 “5,000만 원 이하 예금자 비중이 98%로, 이미 국제예금보험기구협회 권고비율(90~95%)을 상회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습니다.

제도 개선에 의한 편익이 전체의 2%에 불과한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에게 집중된다는 것인데요. 반면에 예금자보호한도가 늘면서 인상되는 예보료 부담은 대출금리 등의 형태로 전체 금융소비자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저축은행은 벌써부터 달갑잖은 기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출을 확대하지 못하는 가운데 예금이 늘면 비용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미 저축은행은 예보료율이 0.4%입니다. 0.08%인 은행의 5배에 달합니다.

일각에선 특별히 금융소비자의 관리 편의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미 핀테크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제공되어 예금의 분산 예치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익적으로는 예금을 ‘부분보호’하는 취지를 불필요하게 해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액을 보호하면 예금자들은 위험평가 없이 고금리를 좇을 수 있게 되고, 금융회사도 이에 편승해서 무리한 투자를 하다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편익은 적은데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만 높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23년 만의 변화를 앞둔 예금자 보호제도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금융환경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다만 지금은 법사위가 바빠서 정국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시행 소식을 듣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