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이그의 “머리 박아” 이정후의 확실한 MLB 가산점

파란만장했던 다저스 시절의 푸이그

야시엘 푸이그의 첫 직장은 LA였다. 거기서 가장 존경한 인물이 있다.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다. 지난 10월, LG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서다. SNS에 '#winforvin'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빈(스컬리)을 위해 승리하겠다’는 의미다. 지난 8월 타계했을 때도 그랬다. 애틋한 글을 올렸다. 추모의 마음을 담았다.

그의 별명은 야생마다. 고인이 지어줬다. 거침없는 질주가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다른 특성도 연상된다. 좌충우돌, 통제불능, 사고뭉치…. 뭐 그런 말들이다. 그만큼 파란만장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아니겠나. 불과 20대 초반이었다. 가장 핫한 스타가 됐다. 어깨뽕이 잔뜩 들어갔다.

덕분에 잦은 풍문에 등장한다. 도를 넘는 행동, 동료와 갈등, 지각…. 근무 태도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다. 상대의 면면도 화려하다. 잭 그레인키, 저스틴 터너, 클레이튼 커쇼, 돈 매팅리 같은 굵직한 인물들이다. ▶버스 짐 칸 문을 안 닫아서 ▶전용기에 엄한 사람을 태우겠다고 고집 피워서 ▶저런 선수와는 한 팀을 하기 싫어서 ▶걸핏하면 출근시간에 늦어서 ▶기타 등등의 이유 때문이다. 때로는 언쟁, 때로는 멱살잡이까지 갔다.

결국 정리 대상으로 분류됐다. 다저스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이 팀, 저 팀. 가는 곳마다 순탄치 않았다. 저니맨 생활이 계속됐다.

“신인들 X가리 박아” 정후가 알려줬어요

지난 9월 말이다. 고척 돔이 손님을 맞았다. 새로 지명된 새내기들이다. 덕아웃 앞에서 신고식이다. 선배들 앞에 12명이 도열했다. 깍듯한 소개가 이어진다.

“안녕하십니까. 원주고등학교 포수 겸 투수 김건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충암고등학교 포수 김동헌입니다.” “경남고 투수 박윤성입니다.” (이하 생략)

지켜보던 선배의 한 마디다. “노래 한 곡 씩 하자.” 삐딱한 모자의 이정후다. “형, 마이크 좀 빌려줘요.” 김웅빈이 배트를 내민다. “캠프 가면 이런 거 200번씩은 해야 해.” 시킨 자의 일갈이다. 쭈뼛쭈뼛, 머뭇머뭇. 어색하고, 민망한 몇 분이 흘렀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사회자의 일단락이다. “그럼 여기까지~. 상견례를 마치겠습니다.” 그러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웨잇, 웨잇(Wait, wait).” 영어의 주인공이 앞으로 나온다. 방망이 지팡이를 삐딱하게 짚고, 거드름을 약간 섞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헤이, 루키스(신인들).” 그러더니 갑자기 정겨운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X가리 박아.” 좌중이 빵 터졌다. 푸이그였다.

잠시 후 방송사에서 마이크를 내밀었다. 천진한 표정으로 이렇게 밝힌다. “(이) 정후가 시켰어요. 군대에서 쓰는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물론 루키들에게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예요.” (군기반장 푸이그)

키움 히어로즈 유튜브 캡처

“그는 이미 MLB에서 뛰어야 할 선수다”

야생마의 KBO 출발은 부진했다. 2할 초반으로 타율이 떨어졌다. 홈런은커녕, 삼진 먹기 바빴다. 다양한 변화구에 냅다 선풍기만 돌렸다. 타순도 오락가락이다. 4번에서 2번, 어떤 때는 8번까지 떨어졌다. 중도 교체설까지 나왔다.

그러나 살아났다. 시즌 중반을 넘어선 시점부터다. 뒤에는 ‘절친’이 있었다. “정후가 가장 친한 동료다. 그가 많은 도움을 준다. 홈런을 치면 서로 먼저 나가서 세리머니한다. 고척돔 수비에 고생할 때도 여러가지를 알려줬다. 함께 뛰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야시엘 푸이그)

팀 내에서도 인정한다. “푸이그가 초반 헤매고 있을 때 여러 선수들이 도움을 줬다. 특히 이정후가 함께 붙어 다니면서 잘 챙겨주고 있다. 심지어 타격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걸 또 푸이그가 잘 받아들이고 있다.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홍원기 감독)

푸이그는 이미 절친을 빅리그 레벨로 인정한다. “그는 KBO는 물론,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유형의 타자다. 이런 스타일을 본 적이 없다. 정교한 타격과 대담한 플레이를 한다. MLB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가도 괜찮다. 아니, 이미 MLB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다. 다만 규정상 뛰지 못할 뿐이다.”

아시아 출신 타자들이 실패하는 이유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A의 얘기다. “투수와 달리 야수는 협업이 중요하다. 그라운드에서 뿐만이 아니다. 덕아웃, 클럽하우스에서도 선수들과 유대감을 쌓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시아 출신 선수들은 그런 점에서 핸디캡이 크다. 언어와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

다시 A의 견해다. “한국이나 일본 출신 투수들이 ML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반면 타자쪽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적응에 애를 먹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런 점 때문에 구단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정후처럼 클럽하우스 케미가 뛰어나고, 리더십을 갖춘 선수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플러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인이 분명하다.”

이미 본인이 선언했다. 올 시즌 끝나고 진출하겠다고. 여기에 구단도 화답했다. 가도 좋다고. 이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했다.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기대가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