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기증받은 남편·기증한 아내…"새 삶 선물해 보람"
사망한 남편은 시신 기증…4대가 시신·장기기증 등록도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남편이 신장을 기증받기도 했고 저처럼 기증한 사람이 적지 않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해보질 않았어요. 생명을 나눠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어 보람이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생존 시 신장 기증(살아있는 이가 신장 두 개 중 하나를 기증하는 것)인인 황인원(75)씨는 지난 1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신장 기증 30주년 기념패'를 받았다.
황씨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에 관심을 가진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시신이 세상에서 그저 없어지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이다.
경인교대 동기로 만난 고(故) 안희준 씨와 결혼한 후 남편이 신우신염을 앓으면서 황씨의 마음 한편에는 장기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자리했다.
그러다 1991년 황씨는 한 신문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를 통해 국내 최초로 생존 시 신장기증이 이뤄졌다는 기사를 읽은 뒤 곧장 본부 사무실을 찾아 장기기증을 등록했다. 본부에 등록된 이가 10명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같은 해 겨울방학 신장병을 앓던 남편은 교사 연수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황씨는 "그 시절이 가장 마음 아프고 슬펐던 때"라고 기억했다.
AB형인 황씨는 O형인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해줄 수 없었고 남편과 같은 혈액형인 황씨 여동생이 나섰지만 조직 검사 결과가 맞질 않아 손쓸 도리가 없었다.
본부를 통해 신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남편은 1993년 9월 기적적으로 수혜자를 만났다.
"이름도 기억해요. 40대 초반 주부였던 이윤자 씨. 병원에서 한번 보고 통 얼굴을 보질 못했네요. 참 좋은 분이었어요."
이씨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기증에 나선 순수 기증인이었다. 그렇게 신장 이식만이 답이었던 남편이 이씨를 통해 새 삶을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황씨도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수혜자를 적극 찾아 나섰다.
이듬해인 1994년 황씨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4년 넘게 혈액 투석을 받은 학생이었다.
황씨는 "수술하면서도 걱정하거나 두려움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아이들도 아빠가 신장을 기증받았다보니 말리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언젠가 제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그 학생이 대학생이 돼 엄마랑 같이 인사를 왔어요. 학생 엄마가 '덕분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컸어요'라고 하더라고요. 훌쩍 크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벌써 30년이 지나 그 학생도 40대가 됐을 텐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신장을 기증받고 매일 운동하며 소중한 두 번째 삶을 이어가던 남편에게는 또다시 불행이 닥쳤다. 신장암과 임파선암에 이어 혈액암까지 걸린 남편은 2년의 투병 끝에 2010년 8월,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생전 뜻에 따라 황씨는 남편의 시신을 상지대에 기증했다.
황씨는 "남편은 기부, 후원에 앞장서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방학도 없이 보냈다"며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따뜻한 세상을 나누려는 황씨의 마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초등 교사로 일했던 황씨는 3년 전부터는 인천 부평구에서 '다문화가정 자녀학습 도우미'로 파키스탄 등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황씨의 가족은 4대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을 이어갈 예정이다. 2004년 세상을 떠나면서 시신을 기증한 시어머니에 이어 자녀와 중학생인 손자도 장기기증 등록을 마쳤다.
황씨는 "나중에 장기를 건강하게 기증하기 위해 매일 운동도 하고 있다"며 "신장이 좋지 않아 투석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힘들다.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많이 기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지난해 말 기준 178만3천284명(전 국민의 약 3.4%)으로 수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2013년 2만6천36명에서 지난해 5만1천876명으로 10년 만에 약 2배로 늘었다. 본부는 매일 7.9명의 환자가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황씨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이 아름다운 실천으로 밝고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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