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다운 집으로]가족돌봄아동 민준이네, 동생들 돌봄에 꿈은 사치된 열네살

주하연 기자 2026. 5. 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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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고장난 어두운 집서
일나간 엄마 대신 돌봄맡아
식사·집안일 모두 민준이몫
꿈 키울 수 있는 환경 절실
본보·초록우산 연중캠페인
▲ 고장난 조명조차 교체하지 못해 늘 어두운 민준이네 집.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민준이(가명·14)의 하루는 학교가 끝난 뒤 다시 시작된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거실과 주방 불부터 확인한다.

형광등이 고장난 지 오래됐지만 교체하지 못한 탓에 집 안은 늘 어둡다. 민준이는 동생들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며, 어린 동생들이 안전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살핀다. 어느새 익숙해진 일상이다.

민준이 가족은 어머니와 세 남매가 함께 사는 한부모 가정이다. 부모의 이혼 이후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겼고, 양육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올해 2월부터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고, 보호자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남인 민준이가 자연스럽게 돌봄의 역할을 맡게 됐다.

어머니는 빠듯한 형편 속에서도 늘 아이들을 먼저 생각한다. 제한된 생활비 안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우선 챙기지만, 돌봄 공백 속에서 아이들이 라면이나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적지 않다.

현재 가족은 LH 전세임대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주거환경까지 충분히 돌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 방에는 수납공간이 부족해 짐이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 있고, 오래된 책상은 파손된 상태 그대로 사용 중이다. 거실과 주방 형광등도 고장난 채 방치돼 있다. 식탁이 없어 작은 상을 펴놓고 식사하는 날도 많다.

특히 민준이의 남동생은 시각장애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적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휴대전화를 가까이에서 장시간 사용하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여동생 역시 성장기에 필요한 균형 잡힌 식사와 안정적인 돌봄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머니가 일을 나간 뒤 동생들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책임지는 일은 이제 민준이의 몫이 됐다. 현실 속에서 민준이는 어느새 '아이'보다 '돌보는 사람'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족돌봄아동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돌봄과 생계를 가족 내부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책임을 짊어진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이러한 가족돌봄아동 가정을 위해 주거환경 개선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안전한 조명 교체, 학습과 생활을 위한 가구 지원, 정리 수납 환경 개선 등은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아이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기반이 된다.

민준이 가족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가족이 밝은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편히 쉬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 그리고 아이들이 생계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꿈과 학업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시간을 뒤로 미루고 있는 아이들이 더 이상 어른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도록,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주하연기자 joohy@ksilbo.co.kr

※울산지역 주거빈곤아동 주거비 지원 문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울산지역본부(275·3456) 전화 혹은 QR코드로 접속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