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랑한 화가’ 기리는 미술관서… 200살 은행나무 독살 논란
제거 민원 기각 뒤 훼손…구청 대응도 도마
시에 보호수 지정 요구…제도 공백 지적도

서울 부암동의 한 유명 미술관이 담장 옆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자연을 주요 화두로 삼았던 화가를 기리는 미술관이 수령 200년 가까운 나무를 훼손하려 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 앞에서 은행나무 독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술관 측의 공식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단체와 주민들에 따르면 논란은 최근 한 지역 주민이 은행나무 잎이 비정상적으로 누렇게 마른 것을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후 경찰과 함께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지난달 22일 녹색 작업복을 입은 남성들이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나무 뿌리 주변에서는 수간주사 캡 여러 개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제초제 주입을 의뢰한 인물은 환기미술관 관계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술관 측은 경찰과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업체를 통해 나무 밑동에 11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투입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연담은작품전시하면서나무독살했다니위선적"
논란이 더욱 커진 것은 환기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 거장 김환기 화백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김환기 화백은 '나무와 이야기하는 예술가'라는 의미의 '수화(樹話)'를 호로 사용했을 만큼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에서는 "김환기 화백이 살아 있었다면 담장을 없애고 나무를 지켰을 것", "자연을 담은 작품을 전시하면서 실제 나무는 독살했다니 위선적"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은행나무가 미술관 소유 부지에 위치한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사유지라어렵다"… 종로구대응에도비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나무의사' 우종영 국가유산청 수목 수리기술자는 "은행나무는 제초제에 특히 취약한 수종"이라며 "제초제 피해를 입은 경우 즉시 대량의 물을 주입해 독성을 희석해야 하는데 초기 대응이 늦어져 안타깝다"고 밝혔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100년, 200년을 살아온 나무를 독살했는데 '사유지라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 지금 도시 나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은 환기미술관 측에 공식 사과와 함께 나무 응급조치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한편, 종로구에는 해당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보존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