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지식의 상관관계: 누가 정책을 만드는가

미셸 푸코 (1926-1984)

마찬가지로 권력의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는 경우에만 지식이 존재할 수 있다거나, 지식은 권력의 금지 명령이나 요청, 이해관계를 떠나서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전통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권력이 광인을 만든다거나 거꾸로 권력을 버리는 것이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의 하나라는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권력은 어떠한 지식을 창출한다는(단순히 지식은 권력에 봉사하기 때문에 지식에 혜택을 주는 것이건 또는 지식은 유익하기 때문에 그것을 응용하려는 것이라는 그 이유 뿐만 아니라) 점이며, 권력과 지식은 상호 직접 관여한다는 점이고, 또한 어떤 지식의 영역과는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적 관계를 상정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권력과 지식’의 이러한 관계들은 권력의 제도와 관련해서는 자유로울 수도 있고,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인식 주체를 바탕으로 하여 분석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고려해 두어야 할 것은 인식하는 주체, 인식되어야 할 대상, 인식의 양태는 모두가 권력-지식의 기본적인 관계와 그것들의 역사적 변화의 결과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권력에 유익한 지식이든 볼복종하는 지식이든 간에 하나의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활동이 아니라 권력-지식의 상관관계이고, 그것을 가로지르고, 그것이 조성되고, 본래의 인식형태와 가능한 인식영역을 규정하는 그 과정의 싸움이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2003. p. 59.,


정책은 정부나 국회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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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실에서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 어떤 의제를 설정하고, 정치가 그걸 부추겨요. 본인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서 전문가 집단을 이용하는 거죠. 정책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왜곡되다 보니 사회적인 공론장의 역할이나 사회적 합의의 기능이나 위상이 축소된 측면이 있죠.

가령 산업재해나 노동시간의 문제,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문제에 관해 공론장에서 이야기하겠죠. 제 생각에는 어떤 계층에는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조금 소득 보조를 해줘야 한다든지 하는 의견이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A라는 의견이 다른 B, C, D보다 공감이 크다고 치면요. 그 A라는 의견, 아이디어가 첫 번째죠. 그다음에 정책을 마련하고 것, 즉 돈 받고 일하는, 가령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로 정책 틀 내에서 주어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어떤 걸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요.

법 개정이 필요하면 법 개정도 해야 하고, 그런 구체적인 걸 고민하는 게 전문가 역할인데 마치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본인들 이해관계도 얽혀 있기 때문에…

거대한 착각, 정책 아이디어는 아무나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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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걸 전문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거대한 착각이에요. 연구하고 정책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건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드는 거예요. 아이디어는 사회적 공론장에서 만들어야 하는 거죠.

다양한 아이디어는 사회적 공론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고요. 그렇지 않다면, 왜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고, 논의가 필요하고 그러겠어요.

정책 적용과 실현은 그야말로 국가 조직, 관료, 정책 조직들이 하는 거죠.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재원을 조달할 건지, 어떤 행정 기제를 통해서 이 정책을 집행할 건지, 이런 걸 고민해야죠. 집행 과정에서 중요한 건 국민이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 글은 이상헌(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과 진행하는 슬로우뉴스 '제네바 인터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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