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비춰지는 지역과 부동산 편

- 나종익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동산과 지역 이야기 3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헤어진 님을 찾아 떠나는 한 여인의 노래로 잘 알려진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은 음반 판매 약 100만 장에 빛나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이다. 헤어진 님을 찾아 경부선을 타고 울부짖는 가사가 이 노래의 키포인트다. 심지어 2절에서는 개성, 해주, 청진, 평양까지 찍고 오는 대담함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가 자주 보고 듣는 대중문화에는 여러 지역이 등장한다. 때로는 해당 지역의 민원 때문인지 드라마나 영화에 가상의 지역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지역 혹은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동산과 지역이야기’의 세번 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자료 나종익(유한회사 메타포홀딩스 대표이사)

재건축에 성공한 윤수일의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윤수일의 대표곡 <아파트>의 도입부다. 1980년대 윤수일 씨가 서울 강남에 들어서던 아파트를 보면서 직접 작사·작곡했다고 한다. 강남에 갈대숲이 있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강남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갈대숲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 핫한 블랙핑크 로제의 <APT> 덕에 재건축에 성공한 윤수일이다.
조금 더 그 시기의 강남 지역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자. 1978년 봄, 주인공인 현수(권상우 분)는 말죽거리(양재역 사거리 일대) 근처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영화에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메이킹필름을 보면 현수의 어머니는 강남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강남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많은 이들이 강남으로의 진출을 꺼렸던 것을 보면 상당한 혜안을 가진 어머니를 둔 현수다.
강남 지역은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다. 브라운아이즈의 <비 오는 압구정>에서는 술에 취해 연인을 기다리는 곳으로,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에서는 연락이 안 되는 여자 친구를 맞닥뜨린 곳으로, 버벌진트의 <좋아 보여>에서는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나는 곳으로 강남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도 강남의 위세는 대단하다. 공영방송에서는 대체로 시도하지 않았던 시즌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주배경은 서울 강남구 삼정동(삼성동이 모티브)의 헤라팰리스라는 곳이었다. 삼정동 헤라팰리스는 공급면적 297㎡가 80억원에 팔리는 어마어마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극중에서 심수련(이지아 분)의 딸로 등장하는 민설아(조수민 분)는 성동구 성수동2가의 재개발 지역인 보송마을에 사는 것으로 나온다. 보송마을은 추후에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민설아 일가는 엄청난 보상금을 획득하기도 한다. 보송마을은 강남구의 구룡마을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이나 드라마에서는 성수동으로 나온다. 그리고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세계를 그린 드라마로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의 끝판왕을 보여준 <스카이캐슬>에서도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타운하우스는 서초구 우면산 인근으로 보인다. 강남은 강남인가보다.
출처 : https://blog.naver.com/wink_ink/223664301143
‘곡성谷城’에서 촬영한 영화 <곡성哭聲>
강남처럼 화려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상당한 임팩트를 주는 곳이 강북에도 있다. 바로 도봉구 쌍문동이다. 쌍문동은 강남 못지않게 애니메이션부터 OTT까지 다양한 곳에 등장하는 핫한 동네다. 대한민국의 대표 애니메이션인 <아기공룡 둘리>와 <영심이>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은 1980~90년대 쌍문동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인 고길동 씨의 자택이 쌍문동에 위치했고, <영심이> 역시 쌍문동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1980년대 쌍문동의 모습을 제대로 고증하며, 많은 이들을 노스텔지어에 빠지게 했다. 또한, 세계 드라마사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오징어게임>
시리즈의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분)과 그의 동네 친한 동생으로 열연한 조상우(박해수 분)의 출신지 역시 쌍문동이다. 성기훈의 말에 따르면 조상우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동네에서는 ‘쌍문동의 자랑’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지난 2022년에 지자체별 서울대학교 입학생 수를 살펴보면 도봉구는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14위(22명)를 기록했다. 해마다 약 10~20명의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고 가정했을 때 쌍문동 전체에서 약 5등 정도 안에 들어야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이니 조상우는 동네에서 충분히 자랑거리로 불릴 만했을 것이다.
한편, 총수 일가의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 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민도준(송중기 분)은 할아버지인 진양철 회장(이성민 분)의 고민을 해결해준 대가로 분당 신도시 부지(약 5만평)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분당의 현재 가치를 잘 아는 민도준으로서는 현금보다는 땅으로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을 것이다. “거는 그 옛날에 옹기나 짓던 별 볼 일 없는 땅 아닌가. 분당 땅이 그리 갖고 싶드나”라고 말하는 진양철 회장도 분당의 미래는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쿠팡플레이 <소년시대>에서는 1980~90년대의 충청남도 아산시와 부여군을 배경으로 설정했고, 영화 <써니>의 배경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이었다.
<곡성>처럼 대놓고 지역명을 적은 영화도 있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미스터리하게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영화에서 나오는 내용이 오컬트적인 요소가 강해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곡성哭聲’의 한자를 병기하고 ‘영화는 곡성 지역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내용이다’라는 문구를 삽입한 채 상영할 수 있었다. 곤지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곤지암> 역시 개봉에 앞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는 “곤지암 일대가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제목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다.
초호화 캐스팅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주인공들이 적지 않은 대사를 제주도 방언으로 연기했던 드라마였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했던 다른 작품들은 관광지들 위주로 그렸으나 <우리들의 블루스>는 왜곡되지 않은 진짜 제주도민들의 삶을 보여주며 노희경 작가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수작이다.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던 우리의 터전
1968년 발표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을 비둘기의 입장에서 쓴 시집이자 대표 시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성북동 비둘기>의 도입부이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곳은 과거 채석장이 있었던 북정마을이라는 곳이다. 북정마을은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달동네라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재개발이 어려워 아직도 19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북정마을, 과거 서울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분이라면 가볼 만한 곳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이야기는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서도 잘 묘사돼 있다. <원미동 사람들>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갖가지 막장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실제 원미동에 막장 인간 군상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워낙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존재했을 법한 캐릭터들을 한곳에 모아놓다 보니 원미동이 피해를 본 느낌도 없지 않다. 현재의 원미동은 당시의 원미동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변했기 때문에 원미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는 해마다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가 봉평이기 때문이다. 평창군은 <메밀꽃 필 무렵> 덕분에 이효석문화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이효석문화마을에서는 고증을 토대로 이효석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곳을 가볼 수 있고, 근대 모더니즘 문학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실도 만날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메밀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효석문화마을과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케이스가 경기도 양평군에 있다. 바로 황순원문학관이 있는 양평 소나기마을이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군이고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경기도 광주로 피란을 갔으며, 1.4후퇴 때 부산으로 갔다고 한다. 그의 이력에서 양평군에 관한 이야기는 보기 힘든데, 왜 양평에 문학관이 있을까? 정답은 소설 속에 있다. <소나기>의 주인공 소녀가 이사 가는 곳으로 양평이 나오기 때문이다. 소설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 지역인데, 양평군이 재빨리 이것을 캐치하고 지역 내에 문학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황순원문학관이 양평에 있을 이유가 없지만, 딱히 양평에 없을 이유도 없다. 양평이 아니고서는 남한에 황순원문학관을 지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양평군은 황순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혼자 나가서 쟁취한 꼴이다.
잘 만든 노래 하나 열 앨범 안 부럽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가 공개되고 인기를 끌면서 실제 여수시의 관광객이 굉장히 늘었다고 한다. 실제 여수의 어떤 식당에는 ‘여수를 먹여 살린 장범준님 방문 시 당일 모든 테이블 공짜’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고 하니 여수시에게 장범준은 거의 예수님에 버금가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여수의 주요 관광지 입장객 수는 많아야 700만명 수준이었는데, <여수 밤바다>가 발표된 2012년에 갑자기 1,500만명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노래가 나온 3월을 기점으로 달마다 관광객 수가 2배씩 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2012년 여수엑스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여수의 바다에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은 노래의 영향이 컸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여수시에서는 장범준 씨에게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노래 하나로 지역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게 된 대표적인 케이스인 것이다.
<여수 밤바다>가 여수에게 낭만적인 이미지를 선사했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강남을 세계적인 지명으로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 통계에서도 드러나는데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Visit Korea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 곡을 접한 외국인 중 91%가 실제로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는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강남구는 싸이에게 감사패를 수여했고, 강남구 홍보대사로까지 임명했다. 강남역에는 <강남스타일>의 대표 안무인 말춤 동작의 조형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물들어 왔을 때 노를 잘 저은 강남구이다.
노래방 1위를 밥 먹듯이 한다는 <안동역에서>로 안동역의 명예 역장이자 안동시 명예시민이 됐다는 가수 진성의 고향은 안동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전라북도 부안군이다. 구 안동역에는 <안동역에서> 노래비가 있고, 진성의 고향인 부안군에는 진성거리와 진성공원이 있는 것을 보면 진성은 두 지역 모두에서 사랑받는 가수임에 틀림없다. 한편, 개가수(개그맨+가수의 합성어)의 대표주자 격인 UV의 유세윤 씨는 지난 2011년 <이태원 프림덤>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노래가 많은 인기를 끌자 용산구청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가수에게 잘 만든 노래 하나는 열 개의 앨범이 부럽지 않다. 특히, 특정 지자체를 언급한 노래가 인기를 끌게 되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지자체들 역시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지역 행사에 초청하며,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게 하기도 한다. 전국에는 약 280여 개의 지자체가 있다. 진성, 싸이, 장범준에 이어 특정 지역을 떡상시킬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
대중문화는 우리의 일상과 지역을 잇는 강력한 매개체이다. 노래 한 곡,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장면이 때로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관광객과 경제적 활력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흥미로운 일화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대중문화와 지역 간의 상호 작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현명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정체성과 대중문화가 만나 서로를 풍요롭게 할 때 단순한 유행을 넘어 문화와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지역은 콘텐츠에 영감을 주고, 콘텐츠는 지역에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앞으로도 이런 선순환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