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공사장의 오랜 숙원, 차세대 하이브리드 굴착기 한국 스타트업이 개발

하이브리드 중장비 개발한 레디로버스트머신 정태랑 대표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정태랑 대표. /더비비드

건설 현장의 상징과도 같은 굴착기는 핵심 장비이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매년 굴착기 한 대에 지출해야 하는 연료비는 약 7000만원에서 1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장비 가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의 20~30%는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레디로버스트머신 정태랑(40) 대표는 전자유압 시스템에 이 문제를 풀 열쇠가 있다고 봤다. 중장비 연비 절감 기술을 토대로, 다양한 친환경 솔루션을 개발했다.

◇볼보가 반한 한국 엔지니어

정 대표는 볼보 재직 당시 ‘볼보그룹 기술상’과 ‘특허상’을 모두 받았다. /정태랑 대표 제공, 더비비드

정 대표는 볼보그룹 창원 연구소에서 10년간 전자유압 제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전자유압은 기계 레버를 직접 조작해야 했던 전통적인 유압 제어 방식을 전자 기술과 소프트웨어 명령 체계로 전환한 기술이다.

볼보에서 전자유압 기술을 처음 접한 그는 굴착기 붐(Boom, 굴착기의 팔 부분) 낙하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해 연비를 개선하는 기술을 볼보 하이브리드 굴착기에 적용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전 세계 볼보 사업부를 통틀어 부여하는 ‘볼보그룹 기술상’과 ‘특허상’을 모두 받았다. 두 상을 모두 받은 최초, 최연소 한국인 엔지니어다.

항상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 재직 중 부산대에서 로봇융합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중장비 유압으로 저명한 스웨덴 린셰핑대 전자유압 실험실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박사 논문은 학술지 ‘오토메이션 인 컨스트럭션’(Automation in Construction)에 게재됐다.

◇떨어지는 에너지까지 돈으로, 굴착기 연비를 뒤집다

전자유압과 에너지 회수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 중인 정 대표. /더비비드

이론과 실무를 두루 섭렵하고 나니 움직이는 모든 중장비에서 낭비되는 에너지가 아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압(Hydraulics)은 제한된 면적에 압력을 가해 큰 힘을 발생시키는 기술입니다. 현존하는 기술 중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어 굴착기, 트랙터, 지게차 등 모든 중장비에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 다만, 유압 장치는 에너지 낭비가 심합니다. 예컨대, 붐이 내려갈 때 실린더에 가득 찬 압력이 밸브를 통해 유압 탱크로 빠져나가는데요. 압력이 풀리면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천만원에 달합니다.”

이에 버려지는 에너지 회수하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관련 논문이나 특허도 많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상용화에 난항을 겪었다. “낙하하는 에너지는 이론적으로는 회수 가능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떨림 없이 장비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조작하는 기계 제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지나치게 큰 축압기(Accumulator, 생성된 유압 에너지를 저장하는 압력 탱크)의 부피도 상용화를 가로막는 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자유압이 도입되면서 정밀한 조작이 가능해 졌어요. 축압기의 부피도 대폭 줄였죠. 전자유압 기술이 중장 사용 중 낭비되는 에너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겁니다.”

연비 절감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굴착기가 작업을 위해 붐을 내릴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중장비 내부로 회수해서 엔진을 구동하거나 붐을 다시 들어올릴 때 재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굴착기 팔이 아래로 내려올 때 발생하는 위치 에너지로 붐 실린더를 압축하고, 강한 압력을 가진 유압 오일을 생성합니다. 생성된 유압 오일은 축압기에 저장되고, 스마트밸브가 오일의 흐름을 정밀하게 조절합니다. 이후 붐을 들어 올릴 때 이 에너지를 방출해 엔진을 보조해서, 엔진의 부하가 줄어듭니다.”

에너지 회수 시스템은 디젤, 전기, 수소 등 에너지 원천과 상관없이 유압으로 힘을 내는 모든 중장비에 도입 가능하다. “굴착기뿐만 아니라 트랙터, 지게차의 연비도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죠. 내연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처럼, 요즘 에너지 원천을 전환하려는 시도가 활발한데요. 저는 에너지를 애초에 ‘덜’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비 30% 개선, 더 이상 에너지 먹는 하마가 아니에요

레디엑스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레디로버스트머신

2022년 레디로버스트머신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엔 연비 개선 솔루션 ‘레디엑스’(READiX)로 출발했다. 레디엑스는 기존 중장비에 탈부착 가능한 굴착기용 에너지 회수 시스템 키트다.

산업 현장의 많은 이들은 생소한 기술에 거부감을 보였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현장의 해결사를 자처했다. “현재 공장 2곳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1공장은 정비 공장입니다. 수익과 무관한 작은 호스 터짐 등 사소한 고장까지 직접 해결해주며 신뢰를 샀죠. 공학 박사 출신 엔지니어가 작은 공장까지 해결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나 봅니다. 사람들이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레디로버스트머신가 개조한 하이브리드 굴착기. /레디로버스트머신
트랙터의 경우 생산 라인에 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레디로버스트머신

레디엑스 판매 과정에서 접수한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유명 브랜드의 장비에 저희가 개발한 키트를 붙이니 ‘CS는 누구의 몫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볼보, 캐터필라 등 주요 중장비 회사와 정비 협약을 맺었습니다. ‘키트가 장착된 장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자주 들었어요. 여기서 착안해 중고 장비를 매입해 정비한 뒤 키트를 붙여서 재공급하는 리마스터 중장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중장비 종류별로 전략을 달리하며 비즈니스를 영리하게 설계했다. “굴착기 구조는 제조사와 상관없이 대동소이해서 크게 어려울 게 없었지만 트랙터는 제게도 생소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농기계 제조 대기업과 협업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업과 기술검증(PoC)을 통해 에너지 절감 효과까지 증명했습니다. 트랙터의 경우 생산 라인에 에너지 회수 시스템을 공급하는 비포마켓(Before-Market) 공급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할 구상입니다.”

사이트 솔루션을 통해 작업 현장의 데이터를 파악해,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레디로버스트머신

현장의 볼멘소리가 대박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다. “창업 초반에, 전국의 폐기물 처리장과 고철 처리장을 다녔는데요. 이들은 기름값보다 중장비가 중간에 멈추는, 소위 차가 ‘퍼지는’ 상황을 더 걱정하더군요. 실제로 중장비가 고장나면 하루 수천만원의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사업부인 ‘사이트 솔루션’(Site Solution)을 신설했습니다. 키트를 통해 수집한 연료 소비량, 가동 시간, 위치 등 장비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면 AI가 현장의 상황을 진단하는 솔루션인데요. 굴착기가 멈추지 않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현장 운영 효율을 높이는 ‘제로 다운타임’ 기능이 사이트 솔루션의 핵심입니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세계관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압 중장비를 친환경화 할 수 있다. “저희 솔루션 도입 시 굴착기 연비는 20~30% 개선됩니다. 1년에 굴착기 연료비로 1억원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3000만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죠. 트랙터의 경우 연비를 최대 40%까지 향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솔루션을 구독, 렌털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하고 있는데요. 서비스를 운영하며 취득한 데이터는 모두 저희 몫입니다. 저감 데이터를 토대로 탄소 거래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발은 현장에, 눈은 다음 단계로”

정 대표는 창업 초반부터 끊임없이 현장을 누볐다. /레디로버스트머신

변화에 느리고 보수적인 중장비 산업의 문을 두드린 결과는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2022년 시드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같은 해 스트롱벤처스, 프라이머, 더벤처스 등으로부터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2024년 퀀텀벤처스코리아, 한국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스트롱벤처스 등으로부터 74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배치 6기 기업으로 선정됐다.

기술력도 공인받았다. 2024년 대한민국 엔지니어상을 받았고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PCT 특허를 포함해 10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현대제철과 각 지역의 고철 및 폐기물 처리장 등에서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솔루션을 도입했다. 2023년 2억원대에 불과했던 연매출은 2024년 12억원, 2025년 14억원으로 성장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이미 전년도 연간 실적을 초과했다. 일본 시장을 필두로 해외에 진출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 중인 정 대표. /더비비드

중장비 분야의 기후 대응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에 맞춰, 전기 굴착기의 한계인 짧은 가동 시간을 극복하는 고효율 배터리식 모델 론칭을 준비 중이다. “시중의 전기 굴착기는 하루에 4시간도 못 쓸 정도로 가동 시간이 짧은데요. 굴착기가 하강할 때의 붐 에너지에 더해 개발 중인 붐이 상부를 선회할 때 낭비하는 에너지까지 회수하면 에너지를 최대 40~5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유압 효율을 높인 뒤 배터리를 탑재하면 가동 시간이 긴 전기 굴착기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빠르면 내년 출시를 목표로 배터리 기반 전기 굴착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당면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엔지니어와 창업가로서 거둔 성취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엔지니어 시절 기술상을 목표로 달린 적은 없어요. 맡은 업무를 묵묵히 하다 보니 성과가 따라온 거죠. 창업 후에도 고객의 작은 요청을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며 성장했습니다. 거창한 비결과 계획만이 창업의 동력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하면 다음 기회가 열리는 것 같아요. 발은 현실에 두고 눈은 다음 단계를 상상하는 것. 지금까지의 저를 지탱한 힘입니다.”

/진은혜 에디터

Copyright © 더 비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