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속의 신성, 북인도를 걷다] 1. 나마스떼, 생애 한 번쯤은 인도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장 통로를 걸었다. 공항의 긴 벽면에는 손들이 걸려 있었다. 다섯 손가락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고 구부러진 동작들이 정지된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금속으로 빛나는 손들을 처음엔 단순히 장식인 줄 알았다.

공항 밖으로 걸어 나오자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매캐한 냄새와 향료, 먼지를 비롯한 수많은 입자가 피부에 닿았다. 그 중 어느 하나도 낯익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모두가 뚜렷했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존재했다.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공기 속을 걷는다'라는 감각을 배웠다. 델리의 먼지는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수천 년의 시간, 수백 종의 신, 셀 수 없는 손의 흔적이 뒤섞인, 살아 있는 숨결이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델리의 도로로 들어서자 소리가 한꺼번에 덮쳐왔다. 경적, 외침, 급정거 음, 규칙 없는 규칙, 혼돈의 리듬. 인도는 그 리듬에 맞춰 숨 쉬고 있었다. 도로에는 차와 릭샤, 오토바이, 사람, 소, 개가 서로를 피해 지나갔다. '피한다'기보다는 몸을 기울여 스치듯 통과했다. 경적은 '위험하니 비켜라'의 뜻이 아니라 '나, 여기 있다'의 표시였다. 그 소리가 공항 벽의 무드라와 닮아 있었다. 한 동작, 한 제스처마다 제 뜻을 품고 있듯 각각의 경적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길에는 손으로 쪼갠 망고 향 같은 향이 기름 냄새와 섞여 있었다. 낯선 향이지만 묘하게 매혹적이었다. 먼지가 섞인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웃고, 손짓했다. 나는 잠시 멈춰 그들을 바라봤다. 이 나라에서는 멈추는 것도 움직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움직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내 곁을 지나가며 흐르고 있었다. 인도는 한 문장으로 가둘 수 없는 땅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스며들어 와 끝내 견디게 만드는 나라. 나는 이제 막, 그 혼돈의 첫 숨을 들이켰을 뿐이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아홉 시간의 비행, 아홉 겹의 피로. 하지만 인도는 우리보다 세 시간 반 뒤의 시간 속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의 절반을 잃는 대신 세 시간 반의 시간을 '얻었다.' 그 여유는 여행이 나에게 주는 첫 선물처럼 느껴졌다.

인도는 헌법이 인정한 22개의 공용어 위로 천 개가 넘는 언어들이 흐른다. 수많은 언어는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있는 소리로 퍼져나간다. 그 안으로 한 발을 들어서면 언어와 종교, 삶의 방식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흩어지며 끝내 하나로 묶이지 않는 속살을 어설프게라도 볼 수 있다. 여행 전에 알아본 그 많은 정보는, 이 땅에 발을 디딘 순간 쓸모가 없어졌다.

나는 호텔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델리의 새벽은 이상하도록 느리게 깨어났다. 호텔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경적은 밤을 떠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선 터미널의 복도 안에는 요가 동작을 하는 인물들이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조각상은 국내선 쪽 환승 동 안의 예술 설치물로, 인도 사람들의 신체적 수행과 영적 의미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정지된 몸들인데도 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요가를 지속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조금 알 것 같았다. 몸이 곧 언어이고 동작이 곧 명상인 셈이다.(사진 6. 요가 동작 조각상)
인도 현지 가이드가 짜이 한 잔을 건넸다. 잔의 표면이 뜨거웠고, 차는 달고 맵고, 묘하게 부드러웠다. 짜이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침묵의 간격을 메우는 일상의 의식 같았다. 그때 가이드가 주머니에서 몇 장의 지폐를 꺼냈다. 파랑과 갈색 노랑 빛의 잉크색이 물든 지폐에 간디가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모든 돈을 통과해 여전히 이 나라 사람들에게 존재하고 있었다.

한 시간 반 후 비행기는 바라나시의 공기를 가르며 내려앉았다. 창문 밖으로는 서서히 밝아오는 강가에 빛이 퍼지고 안개에 젖은 대지가 보였다. 바라나시, 수많은 생과 죽음이 스쳐 간 장소. 나는 아직 땅을 밟지도 않았는데 어딘가로부터 오래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침 식사의 짧은 휴식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델리에서의 첫 숨이 '현실의 공기'였다면 이제 바라나시의 공기는 '시간의 숨결'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곧 그 강에 도착해, 불과 물이 만나는 곳으로, 신과 인간이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리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북인도를 걸으면서 먼지와 향이 섞여 있는 그곳의 공기로 숨을 쉬었고, 무심히 나를 비추는 햇살을 맞이했다. 나는 그곳의 깊은 눈빛 사이에서 내 안쪽이 조금씩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멀어져 있던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그 때부터였다.
<글·사진=신미송 굴포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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