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범죄 흡사한 비리도 봐주기 만연…농협중앙회 강호동 방만경영 논란
사문서위조·불법대출·조직적 은폐 직원에 감봉·견책 솜방망이…“형사고발 시스템 갖춰야”
연이은 금융사고로 금융권 전반에 걸쳐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유독 농협중앙회만 대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중앙회의 관리·감독을 받는 지역 단위 농협에서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금융사고와 관련한 내부통제 문제에 관해 집중 질타를 받은 이후에도 ‘불법’에 가까운 부정 대출 행위를 벌인 직원에게 정직·감봉·견책 등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권 안팎에선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내부통제 능력이나 의지에 의심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심각한 일탈 행위에도 가벼운 처벌 일색…농협직원 범죄·비리 도구 전락한 농민들 재산
22일 농협중앙회 농·축협 제재내용 공시에 따르면 최근 경기 안중농협에서 직원 6명이 고객과의 사적금전대차를 통해 부당대출을 실시한 사실이 적발됐다. 사적금전대차는 내부 규정을 위반하고 고객에게 사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심각한 비위행위다. 은행의 운용 자금 대부분이 고객의 예치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객 돈을 직원 마음대로 빌려준 것으로도 해석된다.
비리 행위가 적발된 직원들은 기존 담보물로 추가대출을 심사하면서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하자 과거 대출상담을 했던 제3자 소유 부동산을 전산 상 허위로 담보등록한 후 대출을 실행했다. 또한 연체된 부당대출금액을 대출브로커를 이용해 상환하고 타행대출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이를 변제 하는 등 범행 수법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제3자 소유 재산을 함부로 담보로 활용하고 사문서 위조에 조직적 은폐 시도까지 벌인 이들에게 농협중앙회가 내린 처벌 수위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6명 중 징계해직 처벌을 내린 직원은 고작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정직 6월(1명) ▲감봉 3월(1명) ▲견책(3명) 등의 중·경징계를 받았다.
충남 대전충남양돈농협 신대전지점에서는 직원 4명이 대출이 불가능한 고객에게 대출을 허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심지어 이들은 임대차계약서에 대한 현장조사 절차를 건너뛰기도 했다. 농협중앙회는 비리를 저지른 직원 4명에게 ▲정직 3월(1명) ▲감봉 6월(1명) ▲감봉 3월(1명) ▲견책(1명) 등의 처벌을 내렸다. 징계 처벌 결정이 내려진 시점은 지난달 31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농협중앙회의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지적이 나온 이후였다.
문제는 농협중앙회가 정직·감봉·견책 등의 처벌을 내린 직원들의 행위는 범법 행위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금융권 임직원이 불법 대출에 관여한 경우 형법 제356조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다. 업무상 배임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만약 범죄액수가 5억원을 초과한다면 특별법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제3조 제1항이 적용돼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때 범죄액수가 5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라면 특경법 제3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달한다. 살인죄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19~2024.8) 농·축협 금융사고 현황’에 따르면 기간 내 발생된 금융사고 건수는 280건, 사고액은 1119억원 등이었다. 이 중에는 특경법이 적용돼 징역형을 받는 사고액 5억원 이상의 금융사고도 여럿 존재한다. 농협중앙회가 강력범죄 수준의 행위에도 정직·감봉·견책 등의 가벼운 처벌만을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농협에서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은 배경에는 농협 특유의 ‘봐주기 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중앙회장의 방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역 조합장이 관리·감독의 총책임자인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 하에서는 농협중앙회장이 각 지역 농협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17년 만에 지역 조합장들이 참여하는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강호동 현 농협중앙회장 하에서는 이러한 기조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농협은 전국 지역의 협동조합을 통해 규모가 커진 은행이기 때문에 타 시중은행보다 온정주의 문화가 크다”며 “지역 농협 특성상 지점의 인원 규모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5명이 넘는 직원이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지점 내 도덕적 해이가 이미 심각 수준에 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농협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중앙회 역시 관리·감독 부실의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쉬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내부 직원의 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형사고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사안과 관련,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지역농협 제재와 관련해 중앙회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이다”며 “내부 징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설정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모두 각 조합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사 처벌의 경우에도 중앙회가 아닌 각 지역농협에서 회의를 거쳐 진행되는 구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