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부터 돔페리뇽까지...샴페인에 얽힌 일화들 (1)

이철형 / 와인소풍 대표

알렉산드르 2세에게만 납품하기 이해 개발된 '루이 로드레 크리스탈'
빅토리아 여왕이 사랑한 '페리에 주에'
해리 왕자 결혼식에 사용된 '폴 로저 브뤼 리저브'

샴페인을 사랑한 셀럽(유명인) 시리즈를 이어 가보자.

와인 상식 시험 문제에 반드시 등장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모든 와인병 바닥에 오목한 부분 즉 펀트(Punt)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이다.

이 문제가 만들어지게끔 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다.

샴페인 상식 자가 진단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의 크리스탈(Cristal) 샴페인은 1876년 로마노프 왕조의 알렉산드르 2세(Tsar Alexander II, 1818~1881)에게만 독점적으로 납품하기 위해 개발된 샴페인이다.

알렉산드르 2세는 가족 이외에 황제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술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판단, 믿을만한 사람을 술관원에 따로 임명했다. 그의 지위가 아주 높았는데 국무총리급에 버금가는 자리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의 가족들의 신뢰를 받는 사람만 기미상궁이 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의심이 많았던 왕실인사들은 안심하지 못했다. 와인 병 바닥의 움푹 패인 곳, 펀트(Punt)에 작은 흉기를 숨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병 바닥을 펀트 없이 평평하게 만들고 병 색깔도 당시 유행하던 초록색병이 아니라 투명한 병으로 샴페인을 만들어 납품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조건을 맞추기 위해 크리스탈로 병을 만들었는데, 결국 샴페인 이름도 크리스탈이 불리게 됐다.

러시아 황실에만 공급되던 크리스탈이 일반에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24년부터라고 한다. 일반인 판매를 시작한 이유는 1917년 발생한 볼세비키 혁명으로 팔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인 한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볼세비키 공산 혁명 덕에 오늘날 크리스탈 샴페인을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크리스탈은 왕실에 납품됐던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빈티지가 좋은 해에만 만든다.

병 숙성 기간도 최소 6년이다. 삼폐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최소 기간이 36개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배나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크리스탈 샴페인은 샤르도네 40%와 피노누아 60%를 블렌딩해 만든다. 병 속의 효모 앙금을 제거하는 데고르주망 후에도 병속에서 추가로 8개월을 더 숙성시킨다.

당연히 이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포도는 그랑크뤼 등급의 밭에 수확한 녀석들이다.

황실 샴페인 하면 영국 황실도 빼놓을 수가 없다. 병속 2차 발효를 발명한 것이 영국의 화학자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선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은 페리에 주에 (Perrier-Jouet)를 사랑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1861년 영국황실이 이 샴페인에 대한 황실 보증서를 발행을 정도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후기와 에드워드 왕 시대의 초기를 ‘라벨 에포크(황금기 La Belle Epoque)라고 부른다. 그래서 페리에 주에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라는 이름을 가진 샴페인을 출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벨 에포크 시대는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료시점부터 1914년 세계 1차대전 발발 직전까지의 유럽 태평성대 100년을 의미한다. 이 시기 유럽은 패션, 정치, 경제, 문화가 획기전인 발전을 이뤘다.

영국 황실에는 또 다른 샴페인이 존재한다.

비운의 왕비 다이아나가 낳은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자가 결혼할 때 사용된 샴페인 폴 로저 브뤼 리저브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그의 대학동창이자 평민 출신인 케이트 미들턴 결혼식, 그리고 해리 왕자와 미국 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 폴 로저 브뤼 리저브 논 빈티지(Pol Roger Brut Réserve Non Vintage)가 사용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 샴페인에 황실 보증서를 발행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