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담장과 빼곡하게 늘어선 대나무, 고요히 흐르는 강에 따스한 봄기운이 내려앉는다. 역사와 힐링의 도시, 담양이다.
#수백 년을 거슬러
담양은 역사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천년고찰부터 조선의 가사문학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전시관, 기원전에 시작된 산성까지. 그저 관광명소를 둘러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시간 여행이 완성된다.
담양향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태조 7년인 1398년에 완성됐으며 정조 18년인 1794년 부사 이헌유가 여러 집사와 함께 중건했다. 이후 순조 때 재정비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동무, 서무, 명륜당 등. 위아래로 긴 부지를 갖고 있으며 경사가 심한 탓에 5단으로 다듬어져 있다. 가장 먼저 외삼문을 들어서면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뒤편의 내삼문을 지나 가장 안쪽에 닿으면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만날 수 있다. 내삼문 양옆의 200여 년 된 은행나무도 담양향교의 색다른 볼거리다.
시가문화촌
담양은 예로부터 가사문학이 뿌리내리고 꽃피운 도시다. 시가문화촌은 가사문학이 살아 숨 쉰 장소들을 죽녹원 한편에 모아 재현한 곳. 이곳에서 조선 중기 국문학사를 이끌었던 문인들의 터부터 담양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공간을 둘러보며 고즈넉한 시간 여행을 즐겨보자. 먼저 정자 재현 마당에서는 담양의 정자문화를 대표하는 7정자이자, 가사문학이 쓰인 터를 만날 수 있다. 면앙 송순이 벼슬을 버리고 잠시 고향에 머물 때 건립한 ‘면앙정’, 송강 정철의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송강정’, 계곡의 물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 같다 하여 이름 붙은 ‘명옥헌’ 등이 있다.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준공된 추성창의 기념관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켜낸 의병들의 순국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송당 소리전수관에서는 새타령의 귀재 이날치, 창작 판소리의 대가 박동실 등의 기록과 국악 관련 역사적 명소가 재현돼 있다.
금성산성
금성산 능선을 따라 지어진 산성으로 무려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 3km에 달하는 큰 규모로 전남 장성의 입암산성, 전북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처산성이라 불린다. 주변에 금성산보다 높은 산이 없어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지만, 한가운데가 움푹 팬 분지가 있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천혜의 요새지다. 1409년 입보(안으로 들어와 보호받는) 산성으로 개축됐으며 임진왜란 이후 1610년 파괴된 성곽을 보수했다. 이후 대장청을 건립하고 성첩을 세우면서 병영 기지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금성산성을 방문했다면 충용문까지 오를 것을 추천한다. 충용문에서 내려다보이는 담양의 자연 풍광이 일품이다.
명옥헌
‘명옥헌 정원 입구’라 적힌 비석을 지나면 커다란 팽나무가 자리한 후산 마을에 닿는다. 여기서 더 깊숙이 들어가야 숨겨진 명옥헌을 만날 수 있다. 명옥헌의 정원은 위 연못과 아래 연못, 정자로 이뤄져 있다. 정자는 가운데 방을 두고 사방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루높이가 높은 편이라 아래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비교적 자그마한 규모의 위 연못은 한가운데 바위가 섬처럼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명옥헌을 꾸민 이는 오명중. 아버지인 오희도가 천연두를 앓다 죽자 아버지가 살던 이곳에 터를 잡고 정자를 지은 뒤 위, 아래 두 곳에 연못을 팠다.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의 산실’이라 불리는 담양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 과거 대나무처럼 올곧은 선비 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 시대 사림士林들이 불합리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시를 노래했는데, 국문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사문학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본관에는 다양한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해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문학관 주변으로 식영정, 소쇄원 등 가사문학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명소들이 모여있다.
#지금, 담양은
죽녹원
대나무의 도시, 담양에서도 가장 많은 대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 2005년 개원한 죽녹원은 약 31만 m2의 광활한 면적에 빽빽한 대나무 숲길이 여럿 있어 제대로 된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운수대통길, 사색의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길, 추억의 샛길, 성인산 오름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등 총 8개 길이 펼쳐져 있으며, 각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함께 걷는 이에 따라 골라 걸을 수 있으니 재미도 있고 의미도 남다르다. 길 중간중간에는 대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가거나 대나무숲 사이로 스며든 봄바람을 즐기기에도 좋다. 죽녹원 근처에 제2의 백남준이라 불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이남아트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담양 국수거리
여행자들이 담양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담양국수거리다. 담양을 가로지르는 관방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구수한 국물 냄새가 출출해진 여행자들의 발길을 끈다. 담양은 예로부터 죽세공품이 유명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죽물시장이 활발했는데, 저렴한 가격과 뜨끈한 국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죽물시장은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국수거리에는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 국수의 매력은 깊은 감칠맛과 중면으로 살린 쫄깃한 식감. 여기에 저렴한 가격도 한몫한다. 국수는 물국수와 비빔국수, 두 종류가 있으며 사이드 메뉴인 육전으로 국수 면을 싸서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
영산강 문화공원
따스한 봄 햇살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좋은 여행이었다’고 끝맺지 말 것.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번져오면 담양 도심의 매력은 배가 된다. 대나무밭을 배경으로 ‘천년담양’이라는 글자에 불빛이 들어오면, 건너편 영산강 문화공원은 서서히 오색찬란한 조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관전 포인트는 공원 입구에 자리한 거대한 초승달. 달이 노란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면 마치 하늘에 떠있던 달이 잠시 내려앉은 듯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달 아래, 영산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는 또 다른 매력을 빛낸다.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선 나무에 무지갯빛 조명이 길을 화려하게 밝히는 것. 그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책로 곳곳에서는 바닥을 밝히는 분홍빛 하트와 다양한 캐릭터도 만날 수 있다.
해동문화예술촌
특별한 공간을 찾는다면 해동문화예술촌을 추천한다. 담양 시내 한복판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건축물과 오색빛깔 벽화, 단정한 외관의 성당이 모여 있어 눈길을 끈다. 과거 주조장이었던 공간을 문화 예술공간으로 개조해 오픈과 함께 담양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본래 1950년대부터 막걸리와 탁주를 만들던 담양읍의 가장 큰 주조장이었는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막걸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2010년 폐업하게 됐다. 널찍한 건물과 터만 봐도 당시 해동주조장의 규모와 막걸리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주조장의 건물들은 현재 전시, 교육, 체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각 누룩 창고, 농기구 창고, 축사, 직원 숙소 등으로 운영하던 곳인데, 그 흔적이 남아있어 과거 공간을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전시장에서는 과거 해동주조장의 이야기를 시대별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막걸리와 탁주의 재료부터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