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여름. 그 끝자락에서

비엔나의 여름이 끝나간다. 다음 주부터는 날씨가 한결 시원해진다는데, 아니다.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추워질 예정이다. 이번 주까지는 30도 초중반을 웃도는 마지막 여름인데, 주말이 지나고 비 소식이 있고, 다음 주에는 20도 초반으로 뚝 떨어진다고 한다. 가을이다.

올해 비엔나의 여름은 유독 더웠다. 작년에도 만만치 않은 무더위였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더웠던 느낌이다. 그래도 작년 여름에는 에어컨 없는 대중교통 안에서도 견딜 만했다. 올해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는데 에어컨이 없는 구형 지하철을 탔다가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내려버리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려 탄 적도 있다.

여름 동안 선풍기 없이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더위를 안 타는 체질도 아니다. 처음으로 독일에 갔을 때, 그늘에서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여름 하면 곧 그늘이었는데, 따뜻한 커피도 잘 마시며 지냈었는데.

선풍기를 처음 산 건 비엔나 8년 차 되던 해였다. 하얀색 플라스틱 선풍기를 튼다는 것은 곧 무더위를 뜻하는 말이었다. 저렴하게 사서 잘 쓰다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한겨울에도 얇게 입고 산다. 덕분에 남편과 함께 산 이후로 겨울에 난방을 튼 적이 없다. 나는 추우면 그냥 옷을 껴입었고 남편은 싸늘한 공기를 즐겼으니. 그런 남편에게 요즘 비엔나의 여름은 쥐약이다. 잠깐만 나가도 햇볕이 이글이글하니 실내만 찾아다니게 될 정도다. 그래서 이젠 집에 선풍기 두 대와 냉풍기 한 대가 생겼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냉풍기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할 정도로 그간 못 느낀 무더위를 몰아서 느끼는 중이다.

녹아내릴 정도로 무더웠지만, 해가 길고 그만큼 생기가 넘치는 비엔나이기도 했다. 눈부시다 못해 찡그려지는 햇볕이라도 비엔나의 이번 여름은 빛나고 화사했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 맺혀있었고, 여행을 온 사람들은 파란 하늘에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 듯한 구름을 보면서 너무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발 내뱉곤 했다. 그 덕에 나도 하늘 한 번, 구름 한 번 다시 올려다보는 여름이었다.

작년 이맘때는 긴팔 옷을 입었는데, 올해는 몇 주 더 반팔을 입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공기가 한결 시원해지고, 밤새 틀어대는 선풍기도 슬슬 끄고 자도 무리 없을 것 같다. 옷장에서 긴팔을 꺼내는 가을이다. 그러면서 슬슬 짧아지는 여름 해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마지막 여름이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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