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앞두고 '택진이 형' 어디에?
엔씨소프트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21일 인공지능(AI)과 게임 개발조직의 분사를 결정하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 3월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도입하고, 지난 8월 김 대표의 아내(윤송이)와 남동생(김택헌)이 맡던 해외법인장 자리에 전문경영인을 앉히는 등 컨트롤타워를 새로 정비한 김 대표가 회사분할과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 자리에선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셈이다.
김 대표는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 '택진이 형'으로 불리며 친근한 최고경영자(CEO)로 얼굴을 알려왔다.
엔씨소프트가 21일 오전 8시 개최한 임시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 출석한 이사는 총 7명 중 5명. 박병무 공동 대표를 비롯해 사외이사 백상훈, 정교화, 최영주, 이재호 등이 참석했다. 이사회 의장을 박 대표가 맡은 반면, 김 대표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엔씨 이사회는 단순·물적 분할을 통해 4개의 자회사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신설 회사는 게임 개발 스튜디오 3개, 인공지능(AI) 기술 전문 기업 1개 등 4개의 비상장 법인이다.
최근 아마존게임즈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에 출시한 'TL'을 비롯해 'LLL', 'TACTAN'(택탄) 등 주요 게임의 독립개발 체제를 구축하고, AI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김 대표는 빠졌던 셈이다.
지난 6월 엔씨가 QA(품질 보증) 사업과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을 물적분할한다는 안건을 다룬 임시 이사회를 개최할 때는 김 대표가 의장을 맡았고 박 대표도 출석했었기에 더욱 의아한 행보다.
실마리는 김 대표의 활발해진 대외 활동에 있다. 실제로 올해 3월 엔씨가 개최한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 대표는 해외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는 미국 구글 본사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고 김 대표는 구글과 AI, 클라우드 분야에서 협업한다는 소식을 안고 왔다.
이번에는 구체적 행선지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이유가 제시됐다. 엔씨 관계자는 "김 대표의 불가피한 해외 출장이 있어 이사회 참석이 어려웠다"며 "창업자이자 대표로서 역할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행보는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안방 살림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일본, 미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바쁘게 오가며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점과 닮은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에서 김 대표의 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느냐"며 "엔씨라는 기업이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커지면서 각 분야 전문성, 효율화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을 시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동고동락했던 임직원들 내보내는 결정을 주저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이날 엔씨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인력 재배치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QA 사업 등을 분사하면서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없던 문장이다.
엔씨는 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레터에도 구조조정 사실을 알렸다.
이날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 명의로 작성된 글을 보면 "오늘 이 편지를 쓰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회사의 개편방향은)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될 인력 감축을 포함하고 있다"며 "많은 시간을 같이 해온 분들께는 매우 죄송한 일이지만 지금은 회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한 순간"라고 털어놨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인간적 미안함 반, 바쁜 대외일정 반 아니겠냐"며 "중요 의사결정 자리에 빠져있었던 게 직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 두고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엔씨는 오는 11월28일 임시 주총를 개최해 회사 분할과 신설 회사 설립을 확정한다. 각 신설 회사의 분할 기일은 내년 2월1일이다.
김동훈 (99r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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