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산업 패러다임 전환] ① '치킨집'보다 쉬워진 화장품 브랜드 창업…
격변하는 뷰티 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조명합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이 중소규모 업체들의 '인디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들 업체간의 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제공)
"화장품 업체 창업이요? 요즘은 치킨집 차리는 것 보다 쉽죠"
국내 화장품 산업이 기존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대기업 위주의 시장에서 중소규모 업체들의 '인디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들 업체간의 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유통 채널이 다변화되고, 화장품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업체들의 공정 기술도 발전하면서 "화장품 브랜드 론칭이 '치킨집'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이에 새로운 브랜드가 매일 같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패키징·마케팅만 잘 하면 '대박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국내 화장품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폐업하는 업체도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디브랜드 전성시대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화장품 업체) 수는 2013년 3884개에서 2022년 2만 8015개로 늘어났다. 뷰티업계에서는 화장품 업체가 지난해 10월 3만 2000개를 넘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 만들어낸 브랜드 수가 1개 이상임을 감안하면 현재 인구 약 5000만명의 국내 시장엔 최소 3만개 이상의 화장품 브랜드가 공존하는 셈이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의 양강 체재에서 인디브랜드들의 '무한 경쟁' 구도로 변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뷰티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3조 6740억원, 2조 8157억원으로 전년 대비 11.1%, 12.3% 줄어들어든 반면, 중소·인디브랜드 화장품 비중이 80%에 달하는 CJ올리브영의 매출은 지난해 3조 8612억원으로 39.0% 증가했다. 젬페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뷰티 브랜드 인기 상위 50개 제품 가운데 66%가 중소 화장품 업체 제품이었다. 중소 화장품 업체들의 강세로 화장품 수출도 크게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화장품류 수출액은 23억달러로 전년 대비 21.7% 증가했다.
그래픽=박진화 기자
진입 장벽 낮아진 화장품 브랜드 론칭
화장품 업체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화장품 공정이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로 발전한 덕분이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화장품 ODM 업체들이 자동화 공정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하나의 생산라인에 여러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출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화장품 브랜드 론칭에 필요한 초도생산량도 줄어들었다. 한 관계자는 "적은 금액으로도 신규 화장품 브랜드를 누구나 론칭할 수 있게 됐다"면서 "자기 자본 없이도 와디즈 등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초기 자금을 마련한 신규 창업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 ODM 기업들은 B2B(기업간거래) 화장품 솔루션을 마련해 신규 창업자들의 화장품 브랜드 론칭을 돕고 있다.
이는 곧 창업자가 화장품 기능과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자신만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게됐음을 뜻한다. 특히 예전과 달리 화장품 매장에 제품을 입점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제품을 등록할 수 있는 오픈마켓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화장품을 판매할 수 있게되면서 유명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등이 자신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통해 개인 화장품 브랜드를 직접 론칭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메조미디어의 '화장품 업종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소비자가 화장품 구입 시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광고는 2019년 오프라인 화장품 매장(26.1%)에서 지난해 온라인쇼핑몰(41%)으로 바뀌었다.
오프라인에선 CJ올리브영의 성장세가 인디브랜드 창업 열풍을 이끌었다. 2019년 주요 화장품을 CJ올리브영과 같은 드럭스토어에서 구매하는 비율은 27.7%였지만 지난해엔 61%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중소 화장품 업체들 가운데 '메가 브랜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조선미녀' 브랜드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은 '맑은쌀선크림'으로 미국 현지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 선크림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매출은 2020년 1억원에서 지난해 2000억원까지 급등했다. 또 비모뉴먼트의 비건 화장품 브랜드 '달바' 매출은 2020년 475억원에서 지난해 2008억원까지 늘었다.
이미 포화상태..줄폐업도 이어져
하지만 현재 국내 화장품 시장은 포화 상태다. 중소 화장품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매년 줄폐업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폐업한 중소 화장품업체 수가 2021년 약 500여 개에서 지난해 3000여 개를 넘겼을 것으로 추산한다. 대부분 화장품 업체가 자체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는 탓에 제품이 획일화 됐고, 판매 경쟁력에 있어 브랜딩과 마케팅에만 의존하다보니 생명력을 지속하지 못하고 수많은 업체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준히 키우려는 업체보다 트렌드에 편승에 '한탕'하고 빠지려는 업체들이 대부분인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지금의 '인디브랜드' 열풍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뷰티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기존 대기업 위주의 시장에서 중소규모 업체도 '스타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시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긍정적이지만 중소규모 업체들이 일시적인 열풍을 넘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브랜드를 키우지 못하고 탄탄한 내실도 다지지 못한다면 인디브랜드 열풍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