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연구소] 가족 간 상속 분쟁 年 5000건 시대 | 유언 작성법·유류분 모르면 분쟁… 가정불화 막는 증여·상속법
박모(44)씨는 지난해 추석 명절에 어머니를 찾았다가 형제들과 재산 문제로 다툼을 벌였다. 3남 중 둘째인 박씨는 3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병간호에 적극나섰다. 반면 장남은 사업이 바쁘단 이유로 병원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전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은 장남에게 재산의 60%를 물려주기로 했고, 나머지는 어머니와 두 아들에게 균등 상속했다. 장남은 아버지 사망 후 차례나 제사에 자주 불참했다. 지난해 추석,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서 만난 형제들은 재산 문제로 언쟁을 높였고, 결국 박씨와 그의 동생은 형을 상대로 재산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모 등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두고 가족이 소송을 벌이는 재산 분쟁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동안 상속 분쟁은 주로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평범한 가족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법원의 상속 분할 처분 8년 새 3배 급증
가족이 상속재산 분할에 합의하지 못해 법원의 처분으로 상속분을 정하는 ‘상속재산의 분할에 관한 처분’은 2014년 771건에서 2022년 2945건으로 세 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법이 정한 비율대로 재산 상속이 이뤄지지 않아 벌어지는 ‘유류분반환청구소송’ 은 831건에서 2035건으로 2.5배 늘었다. 지난해에만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의 법적 분쟁이 4980건이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민사소송을 포함하면 상속재산 분쟁은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상속재산 분쟁을 최대한 피하려면 부모 등 피상속인이 생전에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언을 준비하고, 유류분 제도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의 유언과 관계없이 특정 상속인이 보장받는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을 말한다. 부모가 재산을 특정 가족에게 모두 상속한다든가,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미리 작성했더라도 재산의 일정 부분은 상속인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피상속인이 생전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족이 일조했다는 점을 인정해 주겠다는 취지다.
민법 제1112조는 상속인의 유류분에 대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에게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에게는 3분의 1을 남겨두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내와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A씨가 유산으로 9억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가정하자. A씨는 죽기 전 9억원을 모두 장남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A씨의 배우자는 법정상속분(3억원)의 2분의 1인 1억5000만원, 차남과 딸은 법정상속분(각 2억원)의 2분의 1인 1억원씩을 각각 받을 수 있다.
만약 장남이 아버지 재산 9억원을 모두 차지했다면, 다른 가족은 장남을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피상속인이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유서를 남겼어도 마찬가지로 유류분 소송이 가능하다. 따라서 가족 분쟁의 불씨를 남기지 않으려면 피상속인은 최소 유류분에 맞게 재산을 상속해야 한다.
형제·자매 상속 유류분 인정 민법 조항, 위헌 결정
최근 유류분 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전까지는 고인의 형제·자매까지 유류분을 인정해줬다. 이에 오랜 기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형제·자매가 고인 사망 후 유가족에게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헌재는 또 학대와 유기 등을 한 ‘패륜 가족’ 은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유가족 사례처럼 연락이 두절됐던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보상금을 요구하거나, 부모에게 불효를 일삼던 자식에게도 재산을 물려줘야 하는 불상사가 사라지게 됐다는 의미다. 헌재는 다만 부모, 자녀, 배우자의 유류분(민법 1112조 1~3호)에 대해선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결정했다.
피상속인이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면 상속이 복잡해진다. 가족이 재산 분할에 합의하지 못하면 대부분 소송으로 이어진다. 가족 간 재산 분쟁을 최소화하려면 피상속인은 생전에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제대로 써둘 필요가 있다.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언은 △자필증서 △ 녹음(또는 녹화) △공정증서 △비밀증서 △ 구수(口授) 증서 등 다섯 가지뿐이다. 또한 유언 내용엔 본인의 성명과 유언 날짜, 유언의 취지 등을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이를 갖추지 않으면 민법에서 인정한 유언이라도 법적 효력이 없다.
대표적인 유언인 자필증서는 다른 유언과 달리 증인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유언자가 유언을 직접 자필로 작성하고 연월일, 주소, 성명을 기재해 날인을 하면 된다.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생전 의사 표현이 명확할때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판명되면 대부분 법적으로 인정된다.
공정증서는 유언자가 유언을 말하면 공증인이 이를 받아 적어 공증을 받는 방식이다. 이때 유언자와 증인 두 명이 참석해 공증인이 제대로 유언을 받아 적었는지 승인하고서명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지만, 공증을 받았기 때문에 소송 시 재판부는 특별한 검증 절차 없이 해당 유언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녹음(녹화)도 가족이 아닌 제삼자 증인이 필요하다. 비밀증서는 유언인이 유언을 비밀로 하고 싶을 때, 구수증서는 유언인이 질병 등으로 직접 유언을 남기기 힘든 특수한 상황에서만 이용한다.
유언이 형식을 제대로 갖췄어도 법적 효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자필증서라도 유언인이 고령이고 유언 작성 몇 개월 후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로 유언을 무효로 판결한 판례도 있다.
유언대용신탁 증가 추세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늘면서 법 대신 금융권 신탁을 활용해 자신의 재산을 유족에게 배분하도록 한 ‘유언대용신탁’도 증가 추세다. 고객이 사망 전에 미리 금융사 등에 재산을 맡기고 사망 후 배우자‧자녀 등에게 이전하는 상품이다. 재산 이전 방법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째 아들에겐 50세까지 매달 100만원씩 지급하고, 51세에 남은 상속분을 모두 상속하라’ ‘둘째 딸에겐 상가 건물만 상속하고 현금 상속은 하지 말라’고 지정해 둘 수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민·신한· 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3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2020년 말(잔액 8800억)과 비교하면 3.5배가량 증가했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유류분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재판에선 유언대용신탁 재산이 유류분 반환 대상인지를 두고 판결이 엇갈렸다. 그러나 최근엔 유언대용신탁 재산도 유류분 반환 대상이라는 쪽이 힘을 받고 있다. 신탁할 때도 유류분을 고려해 재산을 분배해야 뒤탈이 없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