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가 좋아한 통계학자

/ 뉴시스

셜록 홈즈라는 탐정의 머릿속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고뭉치 범죄자들을 바삐 좇는 와중에도 그는 상당히 다양한 교양을 쌓는다. 홈즈는 담뱃재와 구두 밑창의 종류 등 범인 추적에 도움이 되는 잡다한 지식들을 습득한 한편, 괴테와 발자크 등 고전을 즐겨 읽고 회화와 음악, 연극을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천문학·현대문학과 같은 ‘최신 학문’과는 담을 쌓았다는 이중적인 면모도 있다.

그런 홈즈가 드물게 존중을 표한 동시대의 지식인이 있다. 1838년에 태어나 만 36살에 유명을 달리한 윌리엄 윈우드 리드가 그 주인공이다. 일반적으로 그는 역사학자이자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홈즈는 특이하게도 그를 ‘통계학자’로 소개한다.

<네 사람의 서명>과 윈우드 리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 네 편 뿐인 장편소설 중 하나인 <네 사람의 서명>에는 홈즈의 인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조수인 왓슨, 그리고 다른 경찰들과 잠복근무를 서던 중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나눈 대화가 그것이다.

“저들은 더럽기 짝이 없는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어떤 불멸의 불꽃이 하나씩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나진 않을 겁니다. 뭐, 거기에 어떤 선험적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란 참 불가해한 존재이지요!”

“어떤 사람은 인간을 가리켜 짐승의 내부에 숨은 영혼이라고 했네.”

나는 말했다.

“그런 주제에 관해서라면 윈우드 리드의 책이 볼 만하지.”

홈즈는 말했다.

“그는 개체로서의 인간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지만 군중 속의 인간은 수학적 확실성이 된다고 했네. 예를 들면, 우리는 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는 없어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있지. 개체는 다양하지만 확률은 일정하다네. 이것이 바로 통계란 것이지. 그런데 저게 손수건 아닌가? 저쪽에서 뭔가 하얀 걸 흔들고 있는 것 같은데.”

아서 코난 도일, <네 사람의 서명>, 황금가지, 백영미 옮김

셜록 홈즈가 동시대의 지식인들에겐 지독하리만치 관심을 두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윈우드 리드를 인용한 <네 사람의 서명> 속 구절은 확실히 이질적이다. <셜록 홈즈의 세계>를 저술한 마틴 피도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홈즈에게 독서는 지식인임을 드러내는 또 다른 상징이었다. 윈우드 리드의 <인간 수난사>를 제외하고 그는 몇 백 년 된 책이 아니라면 영어로 된 책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중략) 리드와 신문을 제외하면 홈즈의 현대 영어 독서는 백과사전이나 지명사전을 들춰 보는 정도였고, 겸손함이 부족한 탓에 자신이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 참고 서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홈즈가 왓슨에게 추천했던 <인간 수난사>는 1872년에 발간됐다. 당시 홈즈는 18살이었으니(홈즈의 출생연도는 1854년으로 추정된다) <인간 수난사>를 읽기엔 다소 어린 나이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책 자체는 당대 지식인 계층에서 나름의 반응을 이끌어냈으니, 홈즈가 윈우드 리드의 저서를 접할 기회는 충분했을 것이다.

영국 런던의 셜록 홈즈 동상 / 픽사베이

대수의 법칙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윌리엄 윈우드 리드는 엄밀히 말해 통계학자는 아니다. 그는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였고, 25살의 나이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지도를 만든 탐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 수난사>의 다음 문장(아마도 홈즈가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통계학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잘 담아내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자연법칙의 결과물이다. 변덕이나 충동에 의한 행동들조차도 통계학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의지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자적 관점에서 인간은 수수께끼지만 전체로서는 수학 문제와 같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유롭지만 종으로서는 필연성의 자손일 뿐이다.

윈우드 윌리엄 리드, <인간 수난사>

개개인의 인간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지만 한 집단, 나아가 인류라는 종 전체는 수학적 확실성을 가진다는 윈우드 리드의 말은 통계학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법칙인 대수의 법칙(또는 큰 수의 법칙)을 연상케 한다.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들의 평균이 전체 모집단의 평균을 따르며, 더 많은 표본들의 평균(표본 하나하나의 크기가 아닌, 표본평균을 얻기 위해 사용한 표본들의 개수)을 낼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대수의 법칙에 대한 모든 설명이다. 그러나 중심극한정리와 정규분포 등 통계학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 원리들은 모두 이 짧은 법칙에서 출발한다.

홈즈가 ‘군중 속의 인간’을 수학적 확실성에 비견한 것은 통계 자료를 사회 법칙으로 간주했던 아돌프 자크 케틀레(벨기에의 천문학자·사회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윈우드 리드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케틀레와는 차이를 보인다.

SF문학계의 거장 로버트.A.하인라인의 단편 속 등장인물인 조 젯슨은 홈즈·리드와 정확히 같은 의견을 갖고 있지만, 보는 방향은 정반대다.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통계적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 조 젯슨은 홈즈와 반대 방향에서 대수의 법칙을 설파한다. 사람 한 명을 분석할 때 통계자료는 힘을 잃는다는 그의 말은 집단에 대한 통계로 개인을 재단하려는 시도에 대한 경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젯슨은 기차 여행 도중 샐리 로건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그는 그 여자가 마키아벨리의 교활함과 올리버 웬델 홈즈의 대범한 고결함을 한데 섞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나는 그가 그렇게 칭찬을 쏟아내는데 깜짝 놀랐다. 젯슨이 종종 정치에 끼어든 여성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잘 모르는 거야, 아치.”

그가 설명했다.

“샐리는 여성 정치인이 아니야. 그저 정치인일 뿐이고, 자신의 성별에 신경 써주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의사당에서 가장 강력한 협잡꾼과도 맞서서 주먹다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여성 정치인에 대해 하는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야. 통계학적으로 보면 말이지. 하지만 한 명의 여성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로버트.A.하인라인, <하인라인 판타지>, 시공사, 조호근 옮김

/ 시사위크

#문학이사랑한통계 #셜록홈즈 #통계

Copyright © 모리잇수다 채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