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도 이 말은 통한다.
“한 선수를 키우려면 온 관심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날고 기던 선수도 프로 세계에서는 아이다. 힘도 실력도 경험도 부족하다.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뛰기 위해서는 걸음마를 하면서 힘과 실력을 키우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걸음이 더딘 이도 있고,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이도 있다. 옆에서 어떻게 돌보면서 키우느냐에 따라서 그 속도가 달라진다.
KIA 외야수 박재현이 선배들과 코칭스태프의 관심 속에 프로 세계에서 진짜 걸음을 내디뎠다.
“꿈같다. 계속 꿈같으면 좋겠다”고 웃는 박재현. 그럴 만도 하다.
지난 시즌과는 전혀 다른 무대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박재현에게는 경기장에 오르는 순간순간이 꿈같다.
깨어버릴까 두려운, 꿈 같은 현실이기도 하다.
2024년 11월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 ‘인천고’ 박재현을 처음 만났다.
KIA가 신인드래프트에서 세 번째로 호명한 박재현은 마무리캠프를 통해 프로 데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많은 선수 중에서도 유독 박재현이 눈에 띄었다. 수비 훈련을 할 때도, 타격 훈련을 할 때도 러닝을 뛸 때도 박재현은 웃고 있었다.
낯선 선수들 사이에서 처음 접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 힘들 만도 했지만 박재현은 모든 순간 웃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체가 재미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눈에 띄었던 박재현은 2025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신인 선수가 됐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시작한 프로야구 선수 박재현의 삶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무난한 사람들 틈에서 유난한 박재현은 다른 면에서 눈에 띄는 선수이기도 했다.
겸손이 미덕인 나라에서, 톡톡 튀는 성격과 플레이는 눈에 띄었다.
기대감 속에 시작했지만, 기대했던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박재현의 눈에 띄는 모습은 오히려 단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날 것의 신인 선수는 그렇게 숨이 죽었다.
박재현의 첫 프로 시즌은 타율 0.081로 끝났고, 그는 ‘팔푼이’가 됐다.
지난 2월 챔피언스필드에서 2년 차 박재현을 다시 마주했다.
고향에서 비시즌을 보냈다는 박재현은 몸무게를 불렸다고 했다.
몸무게를 늘리고 힘을 키우고 있다던 박재현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는 그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캠프 연습경기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1루 베이스를 향해 한국시리즈 마지막 주자인 것처럼 전력으로 뛰는 모습뿐이었다.
열심히는 뛰었지만 시범경기의 타율은 0.158이었다.
개막 엔트리에는 이름은 올렸지만, 선발 투수가 들어올 때 엔트리에서 제외될 우선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박재현은 버텼다.
그냥 엔트리에서만 버틴 게 아니라 라인업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팀 타선의 동반 침체 속 기회를 얻은 박재현은 9번 타자로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그리고 지난 26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는 1번 타자로 프로 데뷔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것도 1회 시작과 함께 장식한 프로 데뷔 홈런. 타이거즈에는 없던 1회 리드오프 데뷔 홈런이었다. KBO에서도 11번째 기록이다.
박재현의 성장에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선배와 코칭스태프가 함께 만든 #컨택 #힘 #자신감.
박재현은 “작년에 비해 공이 중심에 맞는 게 가장 큰 것 같다”고 2026시즌 박재현을 이야기했다.
공보고 공치기. 말은 쉽다.
하지만 “캠프 때 고민이 많았다. 시범경기에서도 망가져 있었다”고 이야기한 박재현에게는 해럴드 카스트로가 큰 힘이 됐다.
이범호 감독과 김주찬 코치의 주문으로 박재현은 카스트로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컨택이 좋은 카스트로를 통해 박재현은 많은 것을 배웠다.
박재현은 “망가져 있었는데 카스트로가 많이 도와줬다. 컨택이 좋은 타자인데 진짜 많이 알려줬다”고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좋은 컨택을 바탕으로 힘을 더하면서 타구질이 좋아졌다.
그를 키운 또 다른 이는 주장 나성범이다.
지난 시즌 아마와 프로의 힘 차이를 느낀 박재현은 몸무게를 늘리고 웨이트에 신경 썼다.
비시즌에도 나성범은 박재현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힘을 강조했다.
스프링캠프에서도 외야에 성범스쿨이 열리곤 했다.
나성범은 박재현과 신인 김민규에게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얻은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줬다.
“훈육하는 느낌이다”라고 웃을 정도로 나성범은 KIA에는 드문 톡톡 튀는 야수 막내를 이리저리 챙기느라 바쁘다.
“팀 주축 선수이고, 베테랑 선배님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게 큰 복이다. 웨이트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고 말한 박재현은 ‘힘’의 힘을 느끼고 있다.
“예전이면 힘이 없어서 뒤로 갔을 타구가 파울 홈런이 되기도 한다”라던 박재현은 며칠 뒤 진짜 홈런을 쳤다.
힘을 키우고 훈련을 하면서 몸과 기술이 성장한 박재현.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변화도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프로에 와서 외야수로 자리를 옮긴 만큼 박재현은 초보 외야수다.
하지만 빠른 발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면서 좋은 수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연훈 외야 수비 코치는 “도전하라”로 강조한다.
어려운 타구를 잡아봐야 성장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존이 넓어진다는 게 김연훈 코치의 설명이다.
박재현은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잡으려고 시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연습 때도 누가 봐도 안타 타구를 따라가서 잡아보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공을 쫓아다니면서 박재현은 자신이 설정했던 한계를 깨고 점점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실패를 통해서도 성공을 통해서도 박재현은 배우고 있다.
손승락 수석코치의 ‘120% 컨디션론’도 박재현에게 싸움 본능을 키웠다.
현역 시절 와일드한 폼으로 타자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공을 던졌던 손승락 수석코치의 조언은 “그라운드에서는 내가 최고”였다.
박재현은 “코치님이 컨디션 안 좋을 때도 컨디션이 120%인 것처럼 마운드에 올라가셨다고 했다. 야구장에서는 가장 컨디션이 좋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최고라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로 향하면서 박재현은 자신의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야구는 기세다.
물론 박재현의 고민처럼 아직 경기 수도 적고 갈 길은 멀다. 프로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박재현은 자신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격려 속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프로에서 첫 홈런을 친 날에도 박재현은 조금 더 차분해진, 더 의젓해진 모습으로 팀이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홈런을 친 타석보다 그렇지 못했던 이후 타석이 더 박재현에게는 더 중요한 의미가 됐다.

박재현은 “홈런은 쳤지만 못한 것 같다. 뒤에 타석에서 아예 출루가 없었다. 연장전에서 너무 쉽게 죽었다”며 “‘홈런 치고 스윙 커지네’ 이럴 수 있으니까 정확하게 치자고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컨택이 안 된 것 같다. 홈런 칠 때 느낌, 기분으로 쳤어야했다”고 돌아봤다.
걸음마 첫발을 내딛는 게 어렵다. 다음 걸음을 위해 넘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붙잡고 일어서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걷고 달리게 된다.
박재현은 먼저 시행착오를 경험한 선배들의 이야기와 관심 속에 배움을 얻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데뷔 홈런과 아쉬웠던 무승부를 통해 박재현은 또 하나 배웠을 것이다.
결국 야구는 선수 자신이 한다는 것. 자신의 것을 자신 있게 할 때 비로소 박재현의 야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