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한 사람의 이름이 철학의 한 시대를 가로지른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라는 한 도시에서만 평생을 살았고, 규칙적인 산책으로 도시의 시계를 대신할 만큼 정직한 삶을 살았다.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늘 조용히 책상에 앉아 인간 이성과 도덕의 질서를 고민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차가운 이성의 철학자라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의 철학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인간을 위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은 나를 늘 새롭게 감동시킨다.”
그는 이 말을 『실천이성비판』의 마지막에 남겼다. 이성은 단지 계산하고 분석하는 차가운 도구가 아니라, 삶을 옳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내면에서 빛나는 어떤 별빛이었다. 그에게 도덕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그것을 그는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이라 불렀다. 조건 없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옳은 행동을 하라는 명령. 타인을 단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는 명령. 이 명령은 칸트 철학의 심장과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년의 저작 『윤리 형이상학 정초』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시키는 ‘신(Gott)’의 개념을 볼 때마다, 그의 철학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과 따뜻함이 드러난다고 느낀다. 칸트는 이 책에서 “선한 의지”만이 도덕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좋은 유일한 것이며, 그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옳은 일을 선택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이 옳은 삶이 현실에서 반드시 보상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평생 도덕적으로 살았지만 불행하게 죽는다. 어떤 이는 부정하게 살면서도 성공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령은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운 요구일 수 있다. 칸트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 끝에, 실천 이성은 신과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을 '가정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도덕적 세계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우리 마음속 마지막 믿음의 형상이다.
그 신은 무고하게 고통받은 자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게 해주는 장치다. 비극 이후에도 여전히 옳은 것을 믿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칸트는 이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그 신이 **존재하리라고 ‘믿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 신은 고통을 없애주는 신이 아니라, 고통을 견딘 삶이 의미 있었음을 약속해주는 신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마지막 신 개념이야말로 칸트 윤리학의 숨겨진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통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자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옳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위한 작은 등불이다. 칸트는 철학자였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고, 그 안에서도 끝내 인간다움을 붙잡고자 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윤리학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너무 많은 부조리와 마주하며 살아간다. 정직했던 사람이 끝내 무너지고, 악을 행한 자가 웃으며 살아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매일 본다. 어떤 정의는 외면당하고, 어떤 진실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끝없는 고독을 견디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고독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삶. 사랑도, 명예도, 이해도 없이 떠나간 수많은 얼굴들. 그래서 칸트는 신을 남겼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옳음을 택한 사람들의 눈빛이, 얼마나 고요하고도 깊은지를. 그 눈빛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는 신을 필요로 했다. 그 신은 도덕을 보상하는 신이 아니다. 다만 고통받은 선이 끝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선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가 완전히 혼자가 아님을 믿게 해주는 마지막 약속이다.
칸트의 철학은 그래서 차갑지 않다. 오히려 그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도덕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삭이듯 남겨둔 말이 바로 이것이다 — “당신의 고통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이 세계는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글쓴이 - 영원
그냥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연구하다 보니 그냥은 못 살게 된 막학기 대학생입니다. 무엇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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