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으로 시작했고 끝났다…타이베이 뒤흔든 AI 스타[이상현의 전자수첩]
AI 플랫폼 넘어 하나의 브랜드 된 CEO…컴퓨텍스 주인공은 ‘젠슨 황’
[편집자 주] 반도체부터 다양한 가전 신제품, 전자 산업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수첩에 옮기듯 기록하는 코너입니다.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궁금했던 신제품의 후기나, 기술·산업의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올해 컴퓨텍스 2026의 주인공은 인공지능(AI)도, 데이터센터도 아니었다. 전시장과 타이베이 시내 곳곳에서 가장 자주 마주한 이름은 엔비디아가 아닌 젠슨 황이었다.
컴퓨텍스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황 CEO의 존재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목과 도심 곳곳에는 엔비디아 광고가 걸렸고, 현지 언론들은 그의 일정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행사장 안에서는 황 CEO가 어느 부스를 방문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라기보다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다.
올해 컴퓨텍스 현장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 역시 황 CEO가 등장한 무대였다.
황 CEO는 행사 개막 하루 전 열린 ‘GTC 타이베이 2026’ 기조연설에서 AI 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AI는 이제 수익 창출 도구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생성기”라고 말했다.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이해하고 추론하며 행동하는 에이전틱 AI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했고,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과 AI 에이전트 생태계 전략도 공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영향력이 기조연설장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엔비디아 생태계였다. 폭스콘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과 엔비디아 플랫폼 기반 AI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웠고, 페가트론은 부스 중앙에 베라 루빈 NVL72 플랫폼을 배치했다. 에이수스 역시 AI 슈퍼컴퓨팅 전시 공간을 마련해 베라 루빈 기반 시스템을 소개했다.
겉으로 보면 각기 다른 기업들의 전시였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엔비디아 플랫폼과 연결돼 있었다. 컴퓨텍스가 원래 PC와 부품 전시회로 출발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올해 행사의 무게중심이 얼마나 크게 이동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컴퓨텍스가 노트북과 그래픽카드, 소비자용 전자기기의 경쟁 무대였다면 이제는 AI 데이터센터와 서버, 네트워크, 전력 인프라가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엔비디아가 있었다.
황 CEO의 영향력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SK하이닉스 부스에서 나왔다.
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등 경영진과 함께 전시관을 둘러본 뒤 HBM4E 웨이퍼에 “Please Make More(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라고 적었다. 차세대 AI 가속기에 탑재될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그만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였다.
192GB 소캠(SOCAMM) 제품에는 “LOVE SOCAMM”이라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짧은 낙서처럼 보일 수 있지만 AI 시대 공급망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수록 엔비디아에는 더 많은 GPU가 필요하고, GPU에는 더 많은 HBM이 필요하다. 황 CEO의 한마디에는 현재 AI 산업의 현실이 단적으로 느껴졌다.
황 CEO는 기조연설에서 베라 루빈 플랫폼이 이미 생산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히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메모리가 탑재된다고 소개했다. AI 반도체 경쟁이 결국 메모리와 패키징, 서버, 네트워크를 포함한 공급망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상현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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