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가 42번 교체됐는데 제작비 8배 벌어들인 영화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 3000만 달러 제작비로 전 세계 2억 5400만 달러를 벌어

사진=유니버설 픽처스(미국)

주연배우가 촬영 도중 42번 교체된 영화가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배우가 너무 빨리 자랐기 때문이다. 주연이 돼지였다. 1995년 개봉한 '꼬마 돼지 베이브'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3000만 달러짜리 제작비로 전 세계 2억 5400만 달러(한화 약 3674억 원)를 벌었다. 제작비의 8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셈으로, 투자 대비 수익률로만 보면 같은 해 개봉작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적이다.

새끼 돼지는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몇 주만 지나도 몸집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제작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18주 된 새끼 돼지들을 6개 그룹으로 나눠 훈련시킨 뒤 그룹별로 3주씩 촬영하고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에는 AI 기술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영화 속 베이브가 일관된 크기로 보이려면 비슷한 체형의 새끼 돼지를 계속 새로 투입하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 캐릭터를 42마리가 나눠 연기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된 '102 달마시안'에는 무려 285마리의 달마시안이 동원됐는데, 어미 달마티안은 구입 후 16주간 훈련시켰고 생후 6~8주짜리 새끼는 주인 동의를 받아 2주 훈련 후 3주 촬영하고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촬영이 끝난 뒤 베이브 역의 돼지들이 도축됐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제작사는 촬영 시작 전부터 돼지 주인에게 "베이브 역을 맡은 돼지는 절대 도축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뒀고, 영화에서 하차한 42마리는 모두 농장으로 보내져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 복지 개념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제작사가 촬영 전 도축 금지 계약서를 챙겼다는 건 당시로서는 꽤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2025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이 역대 최고치인 29.2%를 기록했지만, 돼지를 반려동물로 들이는 가구는 여전히 극소수다. 미니돼지조차 성체가 되면 60kg에 달하니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30년 전에 이미 돼지를 도구가 아닌 존재로 다뤘다.

'매드맥스' 감독이 돼지 영화를 만든 이유

'꼬마 돼지 베이브'의 제작과 각본을 맡은 인물은 조지 밀러다. SF 액션 대작 '매드맥스' 3부작을 만든 감독이 왜 돼지 주인공의 가족 드라마 각본을 썼는지 의아할 수 있다. 밀러는 '매드맥스' 이후 1992년 실화 기반 드라마 '로렌조 오일'을 연출하며 장르의 폭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연출은 크리스 누난이 맡았고, 밀러는 제작자이자 각본가로 참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흥행에 고무된 밀러는 1998년 속편 '꼬마 돼지 베이브2'를 직접 연출했다. 1편의 3배인 9000만 달러(한화 약 1301억 원)를 쏟아부었지만 흥행 수익은 6900만 달러(한화 약 998억 원)에 그쳤다.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손실로 마감됐다. 이후 밀러는 '해피 피트'(2006)가 나오기까지 8년간 감독 공백을 가졌다. 1편에서 현명하게 연출을 누난에게 넘겼던 선택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속편이 증명한 셈이다.

실제로 '꼬마 돼지 베이브'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건 밀러의 각본만이 아니었다. 제작 방식 자체가 독특했다. 조련사들이 훈련시킨 실제 동물들로 1차 촬영을 마친 뒤, 동물들의 눈매와 입 모양을 CG로 보정해 표정에 생동감을 입혔다. 1995년 기술력으로 구현한 방식임에도 지금 다시 봐도 어색함이 거의 없다. 돼지 외에도 개, 고양이, 양, 오리 등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동물이 저마다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작동한다.

역할을 거절했다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배우

농부 호겟을 연기한 제임스 크롬웰은 처음에 이 역할을 고사했다. 이유가 명확했다. "동물들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인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는데, 설득의 논리가 재미있다. "영화가 망하면 동물 탓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크롬웰은 'LA 컨피덴셜', '딥 임팩트', '아이, 로봇', '스파이더맨3',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등에 출연한 198cm의 배우다. 그런 그가 밥을 안 먹으려는 돼지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찍었고, 그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양치기 개 렉스의 목소리는 휴고 위빙이 담당했다.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반지의 제왕'의 엘론드, '퍼스트 어벤저'의 레드 스컬로 익숙한 배우가 이 영화에서는 꿈을 잃은 개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렉스는 극 초반 베이브를 탐탁지 않게 여기다가, 자신이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을 베이브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직감하면서 태도가 달라진다. 대사 한 줄 없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그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꼬마 돼지 베이브' 이전에도, 이후에도 꾸준히 나왔다. '하치 이야기'는 10년간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린 일본의 실화를 리처드 기어 주연으로 영화화했고, '파퍼씨네 펭귄들'은 짐 캐리가 살아있는 펭귄을 유산으로 받는 가족 코미디로 1억 8700만 달러를 벌었다. 2006년 국내에서 개봉한 '마음이'는 81만 관객을 모았고 2010년 속편도 69만 명이 찾았다. 동물이 언제나 따뜻한 존재로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에서 식인상어는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그 두 마디짜리 시그니처 음악은 지금도 역대 공포영화 음악 중 가장 강렬한 것으로 꼽힌다.

'꼬마 돼지 베이브'가 30년 뒤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동물이 귀여워서가 아니다. 그저 가축으로만 여겨지던 돼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서서히 달라지는 과정을 보여줬고, 그 변화를 설교 없이 담아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이 처음 조사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지금, 이 영화가 먼저 그 시선을 갖고 있었다.

'꼬마 돼지 베이브' 3가지 관전 포인트

첫째, 베이브를 연기한 돼지가 총 42마리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장면마다 "이건 몇 번째 베이브일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편집과 CG 보정이 얼마나 정교하게 이어붙였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둘째, 제임스 크롬웰이 역할을 거절했다가 결국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배우라는 맥락을 알고 보면 그의 연기가 다르게 보인다. 198cm의 근엄한 농부가 돼지 앞에서 춤추는 장면의 무게가 달라진다.

셋째, 1995년 CG 기술로 동물의 눈과 입을 보정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면, 30년 전 장면임에도 어느 부분이 실제 촬영이고 어느 부분이 후반 작업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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