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 김건희 ‘대통령 놀이’, 이게 나라냐
올 것이 왔다. 보수의 말도 험해진다. 닷새 전 동아일보 이기홍 대기자는 “김건희 수렁, 사법심판대 서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썼다. 사과로 문제를 풀 단계가 지났고, 언제라도 탈탈 털릴 사법처리를 지금 밟으라 했다. 7일자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도 윤석열 대통령이 실기하고 들끓는 민심과 충돌하면, “김 여사 문제가 윤 대통령 문제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칼럼엔 김건희가 공기관 인사에 관여한 걸 접한 일화, 수석들 앞에서까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했다는 목격담이 실렸다. 내가 들은 여러 조각의 김건희도 ‘거기서 거기’, 별반 다르지 않다. 공직 인사에 뒷말 남긴 ‘김건희 라인’이 한둘이고, 부처·공기관·금융사 입찰에 김건희의 코바나컨텐츠 전시·후원사가 콧노래 부른 게 또 한두 번인가. 정권이 반환점도 채 돌기 전, 김건희가 엎질러 놓은 물, 밀담·뒷거래·낙하산이 뒤엉켜 쏟아지는 세상을 마주했다.
또 봐도 놀랍다. 2022년 1월, 김 여사와 유튜브 ‘서울의소리’ 기자가 52차례 나눈 통화록이 까졌다. 김 여사는 “내가 정권을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유튜브 채널이 있고, “여기서 지시하면…” 캠프가 다 조직된다고 했다. 기자에겐 “(경선 중인)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 더 나올 거”라 했고, 관리할 유튜버를 알려달라 했다. 1인칭(내가·여기서) 어투엔 권력욕이 넘치고, 눈엣가시 정적은 공격하라 시켰다. 대선 후보 윤석열이 “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분칠한, 그 ‘처’가 아니었다. 그날 공격받은 홍준표가 페이스북에 독설을 썼다 지웠다.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
그 우려대로다.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는 거침없다. 아니, 더 세졌다. 겁이 없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주포들’을 대통령 취임식에 불렀을 게다. 공사 구분이 없기에, 대통령 전용기에 민간인 태우고, 디올백 선물을 챙겼을 게다. 과시욕이 남달라, 밤중에 요란한 마포대교 순시를 갔을 게다.
그뿐인가. 김건희에게 “김영선 공천을 얻어냈다”는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대통령에게 3억6000만원어치 대선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불법 정치자금도 뇌물죄도 될 수 있는 불씨다. 용산 관저 드레스룸과 사우나는 어쩌다 자격 없는 ‘김건희 친분’ 업체(21그램)가 증축했을까. 도이치 주범 이종호는 왜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를 VIP(김건희)에게 하겠다 하고, 대통령은 왜 임성근 수사에 격노했을까. 의문의 꼭짓점엔 다 김건희가 있다. 그러고 보면, 걸그룹 블랙핑크와 동행하려 한 방미 행사가 뒤틀려 국가안보실장과 의전·외교비서관이 줄낙마할 때도, 용산엔 ‘V2 격노설’이 파다했다. 국정농단이 별다른 것인가. 비선 권력이 공식 직함도 없이, 공적 시스템 밖에서, 인사·선거·국사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집권까지 김건희 지분이 크고 그걸 행사할 자격이 있다고 우긴다는 거 아닌가.
용산은 오늘도 갈팡질팡이다. 정치브로커가 ‘(내 입) 감당되면 (감방에) 집어넣으라’ 겁박해도, 대통령실 답은 두루뭉술하다. 그 많던 고소고발도 없으니, 어떤 스토리가 있고 무슨 약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개 사과’와 ‘손바닥 왕(王)자’ 소동에서 봤듯이, 진위와 자초지종도 대통령 부부에게 바로 묻지 못해 우왕좌왕한 대선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여당에선 “먼저 사과라도…” 하잔 말이 움트고, 개혁신당에선 “김건희법 만들자”는 소리가 나온다. 다 섣부르다. 사과도 매도 처음이 쉽다. 20개 허위 경력·학력이 문제가 됐을 때, “아내 역할만 충실하겠다”던 그였다. 사과는 어떤 일 있었고(진실), 뭘 잘못했고(인정), 어떻게 하겠다(약속)고 해야 한다. 타이밍만 재는 용산엔 지금 그런 믿음이 없다. 새 법은 뭘로 만들 건가. 김건희로 인해 청탁금지법·검찰수심위가 무너졌고, 그를 방어막 치다 검찰·경찰·감사원·권익위·방심위가 길을 잃었다. 김건희법과 사과는 국감 후, 특검으로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뒤, 시민이 하랄 때 하는 게 맞다.
‘그림자 권력’ 김건희는 세 얼굴이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화 입을 ‘윤석열의 역린’이고, 보수 분열의 씨앗이고, 성인 65%가 특검법을 찬성하는 ‘공공의 적’이다. 10월 정치가 요동친다. 김건희 육성까지 예고된 국감에선 ‘스모킹 건’이 나올까. “나라와 당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한동훈의 착점은 어딜까. “이게 나라냐.” 사면초가 차오를 용산궁에 더 버틸 힘이 있을까. 없다. 버티면, 보수 민심도 터진다. 나라도 정권도 ‘망조’ 들게 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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