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오피스' 한컴이 MS를 상대하는 법 'SDK'
토종 오피스 소프트웨어(SW) 기업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가 완성형 패키지가 아닌 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장악한 오피스 시장 공략에 나섰다. SDK는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 OS) 또는 프로그래밍 언어 제작사가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툴이다. 개발자나 기업은 SDK를 활용해 필요한 SW를 개발할 수 있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1일 주주들에게 발송한 '2024년 상반기 주주서한'을 통해 완성형 SW 패키지가 아닌 SDK를 판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한컴은 당초 공공기관 및 기업들을 대상으로 구축형 오피스 SW를 판매했다. 지난 수년간 PC에 설치하는 것이 아닌 인터넷에 접속해 이용하는 클라우드형 오피스 SW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한컴도 클라우드 오피스 SW '한컴독스'를 내며 대응했다. 한컴은 국내·외 오피스 시장에서 선전하며 고객수를 늘렸다. 하지만 MS의 벽은 높았다. 특히 글로벌 시장은 이미 MS 오피스를 이용 중인 기업들을 공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때 한컴은 MS오피스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능들 중 일부만 활용하는 기업들에게 주목했다. MS오피스의 모든 기능이 필요한건 아니지만 일부만 떼어 쓸 수 없기에 기업들은 MS오피스를 구매해 사용했다. 이에 한컴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오피스와 관련된 다양한 기능을 갖춘 SDK를 별도로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기업들은 자사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갖춘 SDK를 구매해 SW로 만들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비용을 절약하고 업무 효율성도 높일 수 있었다.
완성형 패키지 대신 SDK를 활용해 자체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절 클라우드 환경을 경험한 기업들은 클라우드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 클라우드를 이용 중인 기업들은 SDK를 활용한 자체 SW를 마련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각 기업들이 자체 개발인력이나 개발 파트너를 보유한 업무 환경도 SDK 보급에 한 몫했다. 한컴은 이미 약 90% 완성된 SDK를 보급하면서 기업들이 보다 쉽게 필요한 SW를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한컴의 SDK 전략은 하나둘씩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SaaS 기업 케이단모바일(KDAN Mobile)과는 SDK를 활용해 대만 오피스 소프트웨어 '케이단오피스(Kdan Office)'를 공동개발했다. 케이단오피스는 한컴이 공급한 SDK를 기반으로 케이단모바일이 대만 자국의 상황 및 요구사항에 맞게 인터페이스를 설계·개발한 제품이다. 한컴이 해외 시장에 SDK를 수출한 첫 사례다. 한컴은 국내 금융사들에게는 AI 기반 SDK '한컴OCR(광학식문서판독)'을 공급했다.
한컴은 올해 중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적용한 SDK를 선보일 계획이다. 기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사용자의 질문에 대답해주거나 문서작성을 도와주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SDK다. 검증된 사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에 광범위한 데이터를 학습한 일반 생성형 AI 챗봇보다 신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컴이 올해 중으로 출시할 제품은 △질의응답 솔루션 '한컴 도큐먼트 QA' △지능형 문서 작성 도구 '한컴 어시스턴트' 베타 버전 △AI 자동문서 기능을 추가한 '한컴독스 AI'의 정식 버전 등이다.
한컴은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SDK를 지속 업데이트하면서 유지보수 비용을 받을 수 있다. 지속적으로 SDK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 이는 한컴에게 고정적인 매출로 이어진다. 한컴은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마련할 수 있다.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