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째 자리 지켜온 성남 ‘안나의 집’…“빠른 시대 변화에 취약계층도 다양화, 사회가 품어야”

김태희 기자 2026. 5. 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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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종 신부(사진 오른쪽)가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안나의집’을 찾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태희기자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안나의집‘에서 앞치마를 한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외쳤다. 30여 명 자원봉사자들은 무료급식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가며 한 명씩 눈을 마주 보고 인사했다.

급식소를 찾은 이들 대부분은 노년층이었지만, 40·50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30대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취약계층에게 매일 오후 3시 30분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는 안나의집은 “사랑합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배식을 시작한다. 안나의집 대표 김하종 신부는 이런 일종의 의식을 “우리가 당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임을 말하며 존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날 메뉴는 밥과 콩나물국, 나물, 김치, 돼지고기볶음이었다. 기부받은 케이크도 한 조각씩 식판 위에 놓였다. 72석인 무료급식소는 배식 시작 20여 분 만에 빈자리 없이 가득 찼지만 줄은 여전히 길었다.

안나의집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노숙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김 신부가 1998년 설립한 시설이다. 이탈리아에 한국으로 온 김 신부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34년째 성남에서 약자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김하종’이라는 이름은 존경했던 김대건 신부의 성에다 ‘하느님의 종’에서 따서 지었다. 약자들을 위해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 신부는 2015년 특별귀화자로 선정돼 한국 국적을 받기도 했다.

김 신부는 세월이 흐른 만큼 안나의집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김 신부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정말 다양해졌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취약계층이 더 힘들다”며 “최근에는 홀몸노인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노숙인만 받았지만,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신부님 저도 먹고살기 정말 힘든데 왜 안되나요’라고 말하더라”라며 “이후 급식소를 찾은 이들 모두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따로 선별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하종 신부가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안나의집 무료급식소에서 배식하고 있다. 김태희기자

사회가 변하면서 노숙인 대상 무료급식·자활을 주요 사업으로 했던 안나의집도 주요 지원 대상을 바꿨다. 현재 안나의집 사업 예산 중 70%는 가정 밖 청소년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안나의집이 직간접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청소년은 140명에 달한다.

안나의집이 운영하는 성남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가 실시한 ‘성남 및 경기광주지역 위기청소년 실태조사’(성남지역 9~24세 1000명 대상)를 보면, 가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년은 2010년 1.2%에서 2024년 15.8%로 10배 이상 훌쩍 증가했다.

김 신부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가정을 떠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사회는 이들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안나의집도 최근 고물가·불경기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안나의집운영비는 45%가 정부 지원으로, 55%는 후원으로 채워지고 있다. 다만 최근 후원이 눈에 띄게 감소하며 안나의집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신부는 “후원자 중 개인 후원자가 대부분인데 저에게 직접 전화한다”며 “주로 ‘요즘 너무 어려워서 후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봉사를 계속 이유는 뭘까. 김 신부는 “사회는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지 않나.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긴다.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 같은 사람이 나서 돕지 않는다면 사회는 더 어려워 질 것”이라며 “힘이 닿는 데까지는 계속해서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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