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영광·곡성군수 재선거…너도나도 현금성 공약 ‘남발’
100만원 vs 120만원, 민주·혁신당…막걸리·고무신 선거 ‘부활’?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10·16 전남 영광·곡성군수 재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현금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 '선심성 공약(空約)' 논란이 일고 있다. 후보마다 현금성 지원 공약과 이를 실현할 재원 마련 방법도 내걸었지만 어떤 곳보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면서다. 두 지역 군수 재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군민 1인당 100만원이 넘는 연간 지원금을 약속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재선거가 2야(野)간 '고인물' '상한물' 등 가시 돋친 설전에 이어 '쩐의 전쟁'으로 과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지역 정치권 일부에서는 야권의 선거 수준이 1950년대 '고무신 정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기본소득의 맛' 으로 정치적 텃밭이라고 불리는 호남 지역 유권자들을 현혹하거나 기만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 의문…'선심성 공약(空約)' 논란
4일 지역 정가에 따르면,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포장지만 다를 뿐 일제히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장세일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영광사랑지원금 연간 10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는 군민 행복 지원금 12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내년 설날부터 일괄 지급을 강조하고, 추가로 군민 가운데 65세 이상 1만5488명을 대상으로 연 150만원의 간병비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석하 진보당 후보는 군민 거주수당 100만원을, 무소속 오기원 후보는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 매월 10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8월 기준 영광군 인구(5만1432명)에 민주당의 기본소득 100만원이 지급되려면 514억원이 든다. 진보당 이 후보와 무소속 오 후보도 같은 규모다. 심지어 조국당의 120만원은 617억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민주당 장 후보는 당 정책협약을 통해 영광을 기본소득 실현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조국혁신당 장 후보는 한빛원전이 내는 지역자원시설세를 이용할 계획이고, 진보당 이 후보는 평균 사용률 20% 미만의 기금을 재조정해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원으로 지목한 한빛원전 지방세는 이에 미치지 못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다. 한빛원전이 내는 지역자원시설세는 약 500억원이다. 따라서 한빛원전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충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법 개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빛 원전에서 걷는 원전세(지역자원신설세)는 목적세여서 사용처가 제한된 데다 이미 다른 사업에 쓰던 예산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영광군은 원전이 있어 그나마 재정이 나은 형편이지만 지금도 중앙정부 도움 없이는 공무원 월급을 주고 사무실을 유지하는 등 일상적인 행정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올해 3월 기준 전국 229개 기초단체에서 영광과 곡성의 재정자립도는 163위(11.7%)와 172위(9.3%)다.
곡성군수 후보들도 '기본소득' 밥상에 올려
곡성군수 재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대동소이했다. 당론을 따른 국민의힘 후보만 제외하고 전체 군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지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조상래 민주당 후보는 이재명 당 대표가 "영광과 곡성군에 기본소득을 시범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데에 따라 기본소득 50만원 지급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혁신당 박웅두 후보는 연 100만원 기본소득 전체 군민 지급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자당의 영광군수 후보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약속했다.
최봉의 국민의힘 후보는 '국민의 세금을 이용한 현금 살포 공약'이라는 현금성 지원 공약에 비판적인 당론에 따라 현금성 지원 공약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저출산 극복을 명분으로 출산지원금 1억원 상향을 약속했다.
민주당 조상래 후보는 예산확보방안으로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지방정부의) 예산을 아껴 분기별로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안' 수준으로 예산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혁신당 박웅두 후보는 전남도와의 협약으로 지방소멸 대응 실험 차원에서 예산협조(도비)를 구하고, 지방소멸 기금과 각종 수당의 재조정을 통해 예산(군비)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후보마다 현금성 지원 공약과 이를 실현할 재원 마련 방법도 내걸었지만 '마른 수건 짜기'가 일상인 재정이 극히 열악한 지자체에서 실현 가능성은 극히 의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지자체 재정이 매우 열악한 전남에서도 더 상황이 나쁜 곡성군의 경우 인구수가 현재 약 2만7000명임을 고려하면 50만원 지원 시 135억원, 100만원 지원 시 270억여원 등의 예산확보가 필요하다.
"현금 살포가 지원금으로 '둔갑'…1950년 '고무신 정치' 수준"
특히 재정자립도가 전국 하위인 전남에서 연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여기에 투입하려면 지역사회를 위한 다른 일반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어 '아랫돌 빼서 윗돌 쌓기'일 뿐이라는 비난도 사고 있다. 전남 정가 한 인사의 말이다.
"양당은 예산을 아껴 쓰고, 지역 내 원자력발전소가 내는 기금 등으로 재원을 확보하겠다지만, 매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예산을 갑자기 아껴 쓰기 쉽지 않고, 기본소득이나 지원금으로 돈을 쓰면 그만큼 다른 용처에 쓸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정이 열악해 공약을 이행하려면 중앙정부 교부세 일부를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돈 뿌리기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다. 현금을 지원금으로 '봉투갈이'했을 뿐 과거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던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역 정치권의 다른 관계자는 "지지율이 박빙인 상황일수록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더 남발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의 미래 비전 제시와 함께 현실에 맞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공약을 발굴해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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